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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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후 지식인 계층을 시골로 보내 농민에게 재교육 받게 하던 가혹한 시절,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두 친구는 각각 부모가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의사라는 이유로 산골 중에서도 산골인 '하늘긴꼬리닭' 산골로 배치받게 된다.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뤄는 자명종 시계를 가지고 있다. 산골 사람들이 모두 처음 보는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뤄의 재치로 나는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주석을 생각한다'는 엉터리 제목으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화형직전의 바이올린을 구한다. 

글을 다 깨우치고, 이제 뭔가 읽어보려는데, 산골로 쫓겨나서 똥이나 퍼야 했던 두 친구는 또 다른 친구 '안경잡이'에게 발자크를 받는다. '바-알-짜-케'. 중국어로 번역된 프랑스 작가의 이름이 네 개의 표의문자로 하나의 낱말을 이루었다. 번역의 경의로움인가! 갑자기, 앞의 두 음절이 주는 무거움, 그 이름이 불러일으킨 호전적이고 도전적인 울림이 사라졌다.각각이 약간의 의미를 내포한 아주 멋스러운 네 글자가 한데 모여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아내면서 몇백 년 동안 지하실에 보존된 술에서 나는 향기처럼 이국적이고 그윽한 맛을 풍기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꽁꽁묶여 꼼짝달싹할 수 없던 그 시대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두 친구는 발자크, 아니 바-알-짜-케의 경의로움을 접하고, 그시기에 산골에선 최고로 아름다운 바느질하는 소녀를 만난다.   뤄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멋진 도시여자애들처럼 변화시키고자 했다. 어떻게? 발자크로. 발자크를 읽어줌으로써, 바느질과 산골마을밖에 몰랐던 그녀에게 속됨과 기만과 격정과 욕망, 환상을 심어준다.

발자크는 말한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다' 라고. 사랑을 사랑한 소년과 남자 사이의 어설픈 녀석은 꿈을 사랑한 소녀에서 여자로 변한 그녀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암울한 시대의 짧고,아름다운 소설이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중국인이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나 있는 소설이지만, 이것은 프랑스 소설의 감수성이지 않는가. 그 묘하고 아름다운 부조화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라는 제목에서부터 잘 나타나있지만,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꼭 길 필요는 없다. 우리의 질풍노도시기가 그랬던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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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a🦊 2007-09-2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망설임없이 추천해주는 책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