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만만치가 않은 책이지만, 에코의 말솜씨에 그럭저럭 페이지가 넘어간다. 나는 분하게도 그럭저럭 읽어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읽는이의 내공에 따라서 정말 재미있게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하도 오래되서,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 모르겠는데, 이 책은 에코가 각종 심포지엄, 학회에서 발표한 글이거나, 특정 주제로 묶인 선집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나처럼 술렁술렁 책을 읽는 사람이 읽기에는 골치가 있는대로 아픈 책인 것이다. 심지어, 책 속에 나같은 독자에 대해 이야기한 챕터도 있다. '상호 텍스트적 아이러니와 읽기 층위들'이 그것인데, 그에 따르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알고 싶어 하'는 일차적 층위의 독자이고, '이차적 층위의 독자는 사건이 어떻게 이야기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번 읽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무한하게 읽어야 한다. 왠지 책을 휙휙 읽어나가는 일차적 층위의 독자인 내가 지극히 단순하고, 무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뒤에 '이차적 층위의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일차적 층위의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안 된다.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이차적 층위의 독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여러번, 또는 무한히 반복해 읽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책들과 문학에 관한 강의라는 것을 나처럼 단순히 에코의 이름을 보고 이 책을 살 독자들에게 미리 알리고 싶어서이다.

여러 글이 모여 있기에, 그럭저럭 머리 쓰며 읽을만한 재미있는 글들도 있다. <신곡>은 읽어볼 생각도 안 했지만, '<천국편> 읽기'는 꽤 재미있었고, '와일드 : 아포리즘과 역설'에는 재미있는 아포리즘과 역설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을 거꾸로 뒤집은 에코의 시도 또한 재미있었다. 에코의 전공이 기호학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바로크시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바로크 시인이나 바로크 시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생소할 수가 없었다. 

'발루아의 안개'에서 네르발의 <실비>라는 소설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재분석하고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실비>를 안 읽기도 했거니와 네르발이란 작가도 처음 들어봤고, 이와같이 소설 분석하는 것에 약하고 거부감 드는 관계로 차라리 슬슬 읽고 넘겼다. 네르발의 책을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는데, 읽고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일까 싶다.

'보르헤스와 영향에 대한 나의 고민'이나 마지막에 나오는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는 에코의 소설들이 인용되는 관계로 비교적 쉽고, 아니, 결코 쉽지는 않고, 흥미롭게 읽히는 챕터이다.

'반미 3세대에 걸친 미국의 신화' 같은 경우는 내게 아주 생소한 이탈리아에서의 반미 이야기라서, 지루와 재미 반반이었다.
의외로 '<시학>과 우리' 는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다. 추리소설의 플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단 '추리' 얘기만 나오면, 눈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전체적으로 반 정도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본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가 느끼는 것, 고민하는 것에 대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다음에 에코의 어떤 글을 읽더라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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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0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사람은 100%는 '본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겠군요..으흠.

turnleft 2007-09-0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재밌겠네요~

하이드 2007-09-08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꼭 한 번 더 읽어볼꺼에요. 집에 있는 에코책 다 집합시켜놓았습니다. ^^

mong 2007-09-0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쓰투를 날리며...
요즘 하이드님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라구요
군시렁 =3=3=3

하이드 2007-09-09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08-06-2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 그렇군요. 요즘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에도 눈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