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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의식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함정임 옮김 / 현암사 / 2021년 6월
평점 :
"여기 내 책 중에서 인쇄되기 전에 당신이 읽지 못한 첫 번째 책이 있습니다. 어쩌면 유일한 책일 것입니다. 이 책은 모두 당신께 바치는 헌정인데,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보부아르의 이름만 보고 사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읽다보니 보부아르의 이야기가 아닌, 사르트르의 이야기였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한 글이다. 그렇게 보부아르의 이야기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던 책은 사르트르의 이야기였고, 보부아르의 이야기로 맺는다.
책은 1970년에서 1980년 사르트르가 죽는 해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1970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가구들에 자꾸만 부딪쳤다. (...) 아주 조금 마셨음에도 비틀거렸다. (...)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담배를 아주 많이 피웠고, 술을 아주 많이 마셨다.
사르트르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비틀거려서 실비와 함께 부축해야 했을 때, 보부아르는 집으로 돌아와 일기에 쓴다. "집으로 돌아오자, 밝았던 스튜디오 색깔이 바뀌어 보였다. 벨벳 양탄자는 죽음의 의복을 연상시켰다. 살아가는 것이 이런 식이다.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위협은 머리 위에서 어른거리고, 인생은 괄호 속 여담 같은 것."
새벽에 일어나 전날밤의 트위터를 보니, 통가 해저에서 일어난 화산폭발로 옆나라인 일본이 쓰나미 경보로 급박한 상황이었고, 섬에 사는 나는 통가의 해저 화산폭발 전에 해저지진이 일어났었고, 그것이 전조였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며, 얼마전에 처음으로 실감했던 지진을 떠올렸고, 통가와 일본을 걱정하며,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소식도 함께 찾으며 불안해 했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다음에 어디로 이사갈지, 집들을 구경하며, 바닷가는 좋긴한데, 좀 별로지, 근데, 바다뷰가 좋아보이긴 한다. 생각했던 것이다. "위협은 머리 위에서 어른거리고, 인생은 괄호 속 여담 같은 것"
이미 여기저기 아팠던 사르트르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내가 상상한 것은 사르트르 간병 이야기였으나, 책은 사르트르가 죽어간다는 명제 외에는 전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로 진행된다. 사르트르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라벨은 뗄 수 없는데, 그의 몸이 노화와 병으로 점점 그 기능을 잃어가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불의에 항의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책을과 잡지를 만들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사랑을 하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노년의 모습이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읽게 되어서 노년에서 죽음까지의 그간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이 마구 흔들렸다.
나는 늘 내가 내 정신이 아니게 되면 내가 죽는 순간을 정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없다. 한 순간에 살아 있는 나이다가 죽어 있는 내가 되겠지만, 온 정신으로 살아가다가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끝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 끝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망의 시간들이다.
정신과 몸 어느 것이 먼저 사그라드는지, 그것은 각자의 기질에 달려 있는 것일까? 살아 온 경험에 달려 있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할 일을 했고,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몸의 이곳 저곳이 제 기능을 하지 않게 되어서도 굳건한 정신이 계속해서 꺼지지 않고 불타올랐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계약 결혼' 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51년간 함께 했고, 부부이되 우연히 찾아오는 사랑 또한 각자 즐기기로 했다. 여름 바캉스와 부활절, 겨울에 늘 여행을 다녔다. 여행 이야기가 병원 가는 이야기보다 많이 나온다. 걸음을 못 걷게 되어도, 눈이 반 실명 되어도 계속 여행을 다니고, 카페를 가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이고, 여행의 즐거움 뭘까. 진지하게 계속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사르트르가 아파서 혼자 둘 수 없을 때, 보부아르가 독박간병을 한 것도 아니다. 보부아르의 양녀, 사르트르의 양녀, 그리고, 사르트르의 젊은 여자친구들이 돌아가며 그를 돌보았다.
책은 사르트르의 병에 대한 기록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행복, 그리고,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 이 세 가지가 같이 간다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다.
사르트르가 자신의 병과 노화에 겸허하고, 인정 또는 체념하며,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끝까지 인정하기 힘들어했던 것은 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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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력은 영영 회복될 수 없는 걸까?" 그 말이 내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찢어놓아서 나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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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년에서 죽음까지 중, 최악의 시나리오가 정신은 있고, 몸은 안 움직이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삶의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디오북에 익숙해지자고, 오디오북들을 듣는 습관을 기르려고 하고, 제법 좋아지긴 했지만, 역시 종이책이 가장 좋고, 책을 읽는 것을 듣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카테고리이지 않나 생각 들 뿐이다. 사르트르의 눈이 읽고 쓸 수 없어졌을 때, 보부아르가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사르트르는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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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오. 난 절대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죽음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소."
" 그렇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소... 글을 썼고, 살아왔고, 후회할 것은 아무것도 없소."
" 내가 늙었다는 기분이 안 들어요."
" 날 흥분시키는 대단한 것이 더 이상은 없소. 내가 조금은 그보다 윗길에 있는 것이오." 그의 말 전체를 통해 드러난 것은, 그가 현재를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과거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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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시에 자도 아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자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걸 좀 더 늘리면, 할 일을 했고, 잘 살았고, 그런 과거에 만족하고, 행복하기에 아쉽지 않은 삶이 되는 걸까?
사르트르의 이야기에 몰입하다, 마지막 페이지의 보부아르의 말에서 이 책은 보부아르의 책임을 기억한다.
죽음이 임박한 사르트르에게 그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한 회의. 사르트르는 늘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리면 '알고' 싶다고 했는데, 보부아르는 그 사실을 숨겼다. 사르트르가 취할 어떤 방법도 없었고, 더 잘 치료받을 수도 없었으며, 그는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몇 해는 임박한 죽음에 무지함으로써 덜 우울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부아르 또한 사르트르처럼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 나의 침묵은 우리를 갈라놓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나의 죽음이 우리를 결합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이 그토록 오랫동안 일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답다."
보부아르는 이 책으로 사르트르에게 작별 의식을 치루었다. '작별 의식' 이라는 말은 어느 날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농담처럼 건넨 인사였다. 그 작별의 의식을 이어받아 50여년을 보낸 동료이자 친구이자 연인과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하고, "사르트르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헌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