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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법
신숙옥 지음, 서금석 옮김 / 푸른길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신숙옥 교수의 이 책이 트위터에 뜬 걸 보니 재미있어 보였다. 처음 보는 저자인데, 책이 꽤 많이 나왔고, 모든 책이 절판이다. 알고보니, 극우 인사와의 토론 동영상으로 나도 봤던 그 분이다. 출판사에 문의 있었나본데, 판권소멸로 재계약, 재출간 계획은 없다고 한다. 알라딘 현재 중고가...
저자는 재일교포 3세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화를 내고 있고, 화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으며, 결코 화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화를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첫 챕터에 나온 '나는 매일 화내고 있습니다' 에 요약되어 나오는 저자의 하루는 요즘의 뉴스를 보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 뜨자마자부터 눈 감기전까지 화나는 일 투성이다.
저자는 도쿄에서 나서 자랐으며, 3대에 걸친 토박이다. 어느 영상을 보니, 시부야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조선인으로서 차별받고, 극심한 생활고로 어머니와 형제가 오사카의 친척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 때면 어머니와 둘이 오사카 거리를 걸었고, 그런 날 밤이면 어머니는 울면서 몇 번이나 두 손으로 어린 셋짱 (저자의 일본 이름 세스코) 의 목을 졸랐다. "세쓰코야, 나하고 죽자."
죽는 것은 싫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항상 "응."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난했고,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고, 밖에서는 북한에서 배신, 한국에서 배신, 일본의 외면, 무시. 안에서는 오빠만 아끼고 딸인 저자는 6살 때부터 일해서 번 돈을 모두 집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목을 졸랐지. 이 책을 다 읽어도 모르겠다. 어릴때부터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자란 저자가 어떻게 굳세게 자라 맨 앞에서 싸우는 행동하는 날카로운 지성이 되었는지.
작은 힌트들을 책에서 보지만, 무엇이 저자의 힘이 었는지 내내 궁금하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반응의 8-90 퍼센트가 항의였으나 끝날 즈음에는 90퍼센트가 지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처음에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 반드시 지지자가 나타난다. 익명으로 제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상대를 설득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상대편과 어떻게 빨리 손을 잡을 수 있는가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어떻게 화낼 수 있게 되었는가?
'연결' 을 통해서. 저자의 울분은 다른 재일 동포의 울분과 통하고, 동포 선배의 눈물, 부모의 눈물, 친구의 눈물, 조부모의 눈물, 여자의 눈물.. 들을 보아 온 경험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쌓아 올려지고 정리되어 자신 속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기준이 세월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으려면 옳은 것, 선량한 것, 아름다운 것, 공평한 것, 합리적인 것 등에 대한 가치관이나 기준이 자신 속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기준이 명확하면 할수록, 그 기준에서 벗어난 타인의 행위나 발언에 대하여 화를 낼 수가 있다."
저자의 기준은 '나보다 약한 사람,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준다. 도와준다'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경제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라면, 정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자를 구제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학문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폭력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등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는 기준이 "체험을 통하여" 하나씩 쌓아 올려져야 비로소 화를 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었고, 바람막이 또한 없었다. 사면초가 속에서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혼자서 세파를 헤쳐 나아가는 자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의 과거와, 그 세파를 헤쳐 나와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흔한 말조차 무겁고 단단하게 다가온다.
화의 유형에는 분화형, 불평불만형, 방화형, 현관매트형, 그리고 문제해결형이 있다.
이름 보면 대충 어떤 분노인지 알 수 있는데, 현관매트형만 말해보면, 분노를 참고 참고 참다가 터트리는 테러형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화는 '문제해결형' 으로 분노의 근본 원인을 찾아 신속하게 대응하는 유형이다.
" '화내는 것'은 언어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표현할 언어를 잃었을 때의 상태이다."
" '화내는 것'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이어 가기 위한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인간관계를 끊기 위한 것이다."
저자가 화내는 대상은 주로 '사회의 부정'에 대한 것이었고, 상대는 권력이거나 조직이었다. 마지막에야 맞서게 된 것은 가족과의 관계였다고 한다. 10대 무렵부터 집에서 경제적 기둥이었고, 쉴 사이 없이 일하며, 가족 여행이나 음식점 예약까지도 맡아서 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대신해 주지 않으며 정해진 음식점에 대한 불평은 모두가 했다고 한다. 부모는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화를 내는가? 저자의 답은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다.
모욕을 당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미 자신이 아닌 상태이고, 자신을 혐오하면서 자신을 위해 화를 낼 수는 없다.
화내는 법과 화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가 싶지만, 저자가 드는 사례들이 박력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기억해야지 했던 부분은 '사회에 대한 분노는 어떻게 표현할지' 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저자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무지' 가 된다.
무지와의 싸움은 시위와 집회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일부 엘리트만이 배워 무지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약자는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제 권력만이 적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에도 굉장히 와 닿는 말이다.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무지'한 사람과 이웃이, 약자를 배제시켜 가고 있는 현실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다문화공생의 정보(지식과 노하우 등)를 어떻게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할 것인가가,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없는 (선거권조차 없는) 나의 승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악의를 지닌 확신범을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대와 한시라도 빨리 손을 잡자. 그것이 안전망이 되기 때문이다."
1) '우'냐, '좌'냐 하는 과거의 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2) 공통점이 1퍼센트만 있다면 그 점을 지지한다 (비록 활동이 미숙할지라도).
3)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대도 환경도 변하고 있기에 선배 세대와 똑같이 싸울 수는 없다. 현재에 실패와 학습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싸워왔고, 싸우는 모습을 후배 세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차별과 싸우는 사회를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후배에게는 후배 시대의 환경과 가치관과 투쟁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선배, 즉 어른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뒤에 이어지는 저자가 직접 계획하고 운영했던 활동 사례들은 각각이 다큐나 영화로 만들어질법한 이야기들이다.
이시하라 도지사와의 투쟁, 우산 대행진, 다문화 탐험대, 일일 홈스테이, GOGO 기시모토 밥 딜런을 향하여 등이 그것이다.
오델로의 흑말을 백말로 뒤집듯,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그렇게 가장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미력해 보이지만, 주변을 끌어들여 권력과 권력을 따르는 '무지'에의 대항. 이 '화내는 법'은 신념을 가진 약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다."라든지 "강간하는 남자는 원기 왕성해서 좋다>"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내뱉는 ‘영감쟁이‘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인생이 300년이라도 짧다.
무지와 정열 때문에 차별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화석이다. 장식품으로 놓아둘 수밖에 없다.
악의를 가진 자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느니,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빨리 손을 잡는다. 손을 잡으면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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