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책 릴레이 1. 아무튼 여름, 김신회 
















여름에 읽어야지 했던 김신희의 '아무튼 여름'을 읽었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고, 여름을 싫어하다, 참을만하게 되었는데, 여름은 겨울이 오기 두 계절 전의 의미 정도였다. 버티면 겨울이 오는. 굳이 하나 더 하면, 미스터리 소설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미디어의 꼬임에 세뇌당한 계절. 


 

"여름은 적당한 것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끓게 만든다. 

나는 여름이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 서한나 <피리 부는 여자들> 에서- 


아무튼 여름은 서한나의 여름으로 시작한다. 


여름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그러나 . 



"그러나 해가 갈수록 여름이 난폭해지고 있다. 한여름에 바깥 기온은 41도도 되고 43도도 된다. 집을 나설 때마다 모자나 손수건부터 챙겨야 하고 두시간에 한 번씩 선크림을 덧발라야 한다. 얼굴은 금방 벌게지고 그 위로 땀은 비오듯 흐른다. 아무리 얇은 옷으로 골라 입어도 땀으로 푹 젖기 일쑤고, 열대야에 숨이 막혀 잠을 설친다. 세계 곳곳에서 더위 때문에 죽은 사람들 소식도 들린다. 그럴 때면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게 맞나, 그만 우겨야 되나 싶다. " 


열돔과 이상고온에 대한 뉴스들을 올리며, 이래도 여름이 좋아? 여름 좋다는 사람들 나와봐. 이래도 여름이 좋냐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변명이었을까. 그만 우길까. 하고 시작하지만, 처음 뿐이고, '아무튼 여름'이라는 멍석을 깔아준 자리에서 저자의 여름 예찬은 시작된다. 


겨울은 구질구질해서 옷도 사기 싫다는 여름 예찬자와 딱 그 반대에 서 있는 나는 책이 아니면 그를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여름이 견딜만해진건, 포기에 가깝지만, 에어컨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서는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게 되었고, 땡볕에 나갈일이 없게 된 지금은 에어컨 켜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난 것과 여름 이불을 꺼내 보는 것 외에는 크게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여름은, 더위는 코로나에 더해 나가지 말아야 할 핑계를 더 해주고. 관리비 내역서를 좀 더 스릴 있게 받아보는 것.  

  

"여름은 매번 내게 대단한 걸 가져다주지 않는다. 덥고, 지치고, 체력은 점점 후달리고,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사건도 딱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치만.. 계속 여름이 좋으니 어쩜 좋을까.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그 마음을 글로 써온 시간 역시 여름을 기다릴 때처럼 설레고 가슴 벅찼다. 매일 아침 작업방으로 출근해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퇴근하고 나서도 다음 날 아침이 기다려졌다. 내일이면 또 좋아하는 여름에 대해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여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여름을 좋아하는 것을 정말 온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는구나. 잘 배웠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름에 좋았던 것들은 있다. 남들 다 가는 여름 휴가를 남들 다 가는 때에 가는 것을 싫어해서 여름이 끝날 때 즈음, 가을이 오기 직전에 가곤 했었고, 그건 모조리 여름의 기억으로 남았다. 


"평소 ㅇㅇ보존의 법칙을 굳게 믿는다. ㅇㅇ 안에는 분노, 억울함, 인내 혹은 결핍이 들어갈 수도 있다. 살면서 경험한 결핍은 그 사람 안에 평생 일정하게 남아 있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른이 된 내가 나서야 한다. 여전히 나는 구멍 난 여름휴가의 추억을 메꾸면서 산다. 그래서 여름이라는 계절을 이토록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여름 이야기에는 여름 여행 이야기가 많다.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여름은 여행으로 가득차 있다. 내게는 결핍을 채우려는 것보다는 아마, 지금을 위해 많이 미리 쌓아 둔것이 아닌가 싶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을 읽고 있다. 재난발생지를 여행하는 이야기인데, 어떤 여행책보다 더 지난 여행을 진하게 떠올리게 해서, 지난 여행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고, 우연찮게도 그 여행은 모두 여름이었다. 


나는 겨울을 정말 좋아하는데, 겨울에 남은 여행은 삿포로, 오타루, 비에이 밖에 없다는 것이 좀 억울해진다. 


여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름 책은 좋다. 

여름책을 한 권씩 찾아 읽다보면, 여름이 가겠지. 싶어서 시작한다. 여름책 릴레이. 

여름이 가면, 내가 좋아하는 겨울이 코앞이다. 좋아하는 것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할 생각이 안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만들어야지. 겨울의 좋은 기억. 


일단 이 여름을 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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