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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평점 :
" 와, 아주 예쁘잖아?" 로저가 가까이 다가서며 휘파람을 불었다. 환한 곳에서 다른 사람의 손에 안전하게 붙잡혀 있는 뱀은 아름다웠다. 은색이라기에는 검고 암회색보다는 밝은 몸뚱이에 번득이는 구릿빛 줄무늬가 길게 뻗어 있었다. 눈은 살아 있는 황옥 같았는데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길쭉하게 째진 다른 뱀들의 눈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리뷰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바로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2015년에 나왔다고? 아니, 나 2015년에 뭐 했길래, 이걸 이제 알고 이제 읽었지. 샤론 볼턴의 '희생자의 섬'도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더 더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잔뜩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동물 학대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안 덮고,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클래라는 영국 시골의 야생동물 수의사다. 얼굴 한 쪽을 뒤덮는 흉터가 있다. 사람들로부터의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들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와서 가능한 사람을 기피하고 살고 있다.
"한때는 그랬어요. 체스터 동물원에서 이랬죠. 내가 전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피곤해졌고요." (..)
대단해.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인에게 결례를 범하다니.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고슴도치, 토끼를 돌보는 일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궁금할까? 야생동물들에게는 뻔뻔하거나 호의를 품은 주인이 없으며, 수많은 방문객이 야생동물을 멍하니 구경하러 오지 않았다. 내게는 야생동물들을 돌보는 일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보장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렇듯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척 서투르니까.
어느날, 마을에 뱀이 나타난다. 전공이 파충류이고, 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은 그녀는 뱀을 잡고, 뱀을 구하고, 사람을 구하고, 뱀을 조사한다.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아주 많더라도 나쁜 한 사람 때문에 입은 상처가 더 클 수도 있는데, 상처를 주는 나쁜 사람들은 많고, 좋은 사람은 아주 적더라도 그 중간의 평범한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충분히 두껍고 단단한 방패를 세울만했던 클래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녀가 가장 잘 아는 그녀의 분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며, 소수의 좋은 사람과 몇몇의 보통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이건 진짜 시리즈 1에 나오는 소개인데! 왜 뒤에 이야기 더 없는지!
6백페이지가 넘는 책은 충분히 완결로 재미있지만, 역시, 클래라의 이야기를 더 봐야 한다는 절박감이 들 정도이다.
뭐만 하면 나가서 달리기 하는 클래라 덕분에 나도 책 읽다가 비 오는데, 달리기하러 나갈뻔. 클래라는 진짜 멋있는데, 야생동물 수의사라는 것도 멋있고, 주기적으로 야간 구조 요청 받고 충동하는 덕분에 캄캄한 시골에서도 빠르고 조용하게 길ㅇ르 헤쳐가고, 후각도 청각도 뛰어난 동물적인 감각을 지녔다.
"비결은 온전한 집중이다. 주위의 모든 것을 감지하고 수용하며 그 순간의 환경에 완전히 빠져들어야 한다. 왼쪽 어깨 위로 다가오는 퍼덕이는 소리, 발아래에서 부스럭대는 작은 생명체들의 움직임, 수여우의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한다. 언젠가 시도해보시라. 마음을 비우고 감각에 모든 것을 내맡겨보라. 밤의 생물이 되어본다면 대단히 흥분분되며 아주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가재가 노래부르는 곳에' 의 카야 생각도 좀 났고.
책 읽는 내내 클래라가 얼마나 꿋꿋하고, 용감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슈퍼히어로가 아니라도, 자신의 전문분야로 무장하고, 공포를 이겨내고 한 발 내딛는 용기 있는 클래라. 가장 어렵다는 자신과의 싸움에마저 이겨내는 클래라. 클래라가 새로운 도전을 한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