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보이지 않는 것과 싸워야 합니다. 싸운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엉키고 부딪쳐, 서로가 서로를 열렬히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일입니다. 충분히 먹은 뒤 대상과 나 사이에 알이 슬 때까지 기다리고, 그 알을 부화시키는 일입니다. 언어는 잠든 고양이처럼, 혹은 밤의 등고선처럼 당신 발아래 엎드려 있을 것입니다. 척추를 둥글게 하고 예민한 발톱을 숨긴 채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능숙하고 노련한가에 따라 언어는 자신을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이 언어를 믿지 못한다면 언어 또한 당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뛰어나가는 말들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잡아서 축 늘어진 언어를 종이에 데려오지 말고, 그냥 따라가세요. 마구 달려 함께 뒹굴고 춤추기 바랍니다. 언어를 의식하지 말고, 언어가 되세요. 활달하게 춤추세요. 그리고 다음날, 그리고 다음날,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세요. 냉정한 시선으로 아름다운 장면만 골라 살려두고, 모두, 죽여버리세요. "  










박연준 책을 꽤 많이 읽었네. '소란'이 너무 좋았어서, 문장문장들을 다 꼭꼭 담아두고 싶었는데, 지금 읽으면 다를까. 

이제 더 이상 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장르소설을 좀 읽었잖아. 작년까지만해도 사회학 책 읽는 버릇이 안 들어서 잘 안 읽히고, 여러번 읽어야 알아먹겠다 했는데, 어떻게 이십여년간 미쳐서 읽던 장르에서 거의 전혀 읽지 않던 장르로 이렇게 휙 돌아설 수 있는걸까. 좀 못 믿겠지만, 그 예가 나라서 안 믿을 수가 없다. 


재미있는 책은 여전히 재미있지. 나는 소설을 참 잘 읽는 사람이었는데, 오랜만에 읽는 재미난 소설에서 느낀 기시감은 내가 작년에 '가부장제의 창조' 읽으면서 느꼈던 그것.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기까지 시간 걸리고, 읽는데, 좀 애써야 했다. 아예 못 읽게 되어버린건가?!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고! 


책 많이 읽는 사람이 빨리 읽고, 잘 흡수한다. 장르 소설만 그 규칙이 있어서 다른 책보다 서너배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이든 많이 읽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요즘 많이 읽은 분야는 심리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사회학 책들인데, 이 분야의 책들과 문학을 동시에 심취해서 읽을 수 있나 궁금해졌다. 뇌의 각각 다른 부분들이 담당할 것 같고, 그게 동시에 되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많이 읽으면 둘 다 잘 읽으려나 싶기도 하고. 


여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전혀 읽지 않던 분야의 책들로 독서지형이 변할 수 있다는 것. 

기존 읽었던 소설의 미소지니를 좀 못 참게 된 영향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독서 분야가 변했어. 


언젠가는 생물학 책들도 읽게 될 수 있겠지.. 


 다 못 이읽고 보내며.. 식물의 죽살이.. 







이전에는 못 읽었던 뇌과학 책도 너무 재미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뇌과학 책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박연준의 책들은 다 예쁘다. 이 책도 예쁘다. 안에 일러스트도, 상큼한 라임 표지도. 










" 그 시절 나는 밤낮으로 시쓰기에 매진했으니, 개인적으로 닥친 백스무 가지의 불행들은 견딜 만했다. 시에 대한 내 정염( 진정, 정염이었다) 에 소소한 불행들은 불타 사라졌다. 불행의 재를 찍어 시를 쓰던 시간들은 즐거웠다." 


" 당신, 이게 최선이야? " 슬쩍 물으니 영문을 모르는 당신, 아니, 누군가에게 자상해지는 일, 이게 최선이냐고 다시 묻는다. "이게 최선이야. 정말."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답하는 당신, 뒷모습. 그것도 위에 앉아서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별안간 짠진다. 그렇구나. 지금으로선 이게 당신의 최선이구나. 그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내겐 부족하지만 그에겐 최선인 상태가 있을 텐데, 몰랐다. 기준이 늘 나였기 때문이다. -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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