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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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표지의 우아한 제목,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이혼을 했다'

 

라는 첫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40대 이혼남이 된 출판사에 다니는 남자가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고, 스토리가 있는 오래된 집을 구하고, 그 집을 고치며, 고양이를 만나고, 전 애인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남자 이야기를 많이 읽어왔던 내 세대의 독자들은 (아니, 어떤 세대인들) 남자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력이 탁월한데, 그 중에서도 일본중년남에 대한 감정이입을 잘 한다. 왜? 하루키가 있어서. 현실에서 보는, 그리고, 현실을 극대화한 남자 작가들의, 아니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남녀작가들의 한국남자 주인공들에 비해 하루키는 얼마나 산뜻했던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고, 마라톤을 하며,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위스키를 마시고, 양배추 샐러드 등등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 남자. 최근에야, 여고생 젖가슴 이야기 좀 그만하란 말이야. 질색하게 되었지만, 여튼, 지난 과거의 책읽기에 일본중년남, 그러니깐 20대부터 나와 함께 나이 들어와 이제 중년남이 된 그들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하다.

 

청소 하는 이야기, 밥을 해 먹는 이야기들이 너무다 싶게 디테일하게 나와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여자고 남자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 자신을 위해서. 그런 이야기들에 늘 홀린다.

 

"오늘은 다진 고기를 재료로 쓴 음식이 먹고 싶다. 만두를 잔뜩 빚어 저녁으로 먹을 분량만 내놓고 냉동하자. 두부와 토마토, 물냉이를 넣은 중국식 계란탕, 갓 지은 밥, 오늘 저녁은 그렇게만. 내일 아침은 버터를 듬뿍 바른 하얀 식빵에 계란 프라이, 온야채 샐러드. 밀크티가 제일 맛있는 계절이 돼서 기쁘다. 점심은 갓을 넣은 볶음밥에 꿀에 절인 매실 장아찌, 계란탕 나머지. 저녁은 가나가 가르쳐준 주점까지 걸어가서 파와 뱅어 샐러드, 새끼 양고기 구이, 돌김 리소토를 먹자."

 

이런 걸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좋다. 마음과 몸과 통장의 여유가 있어야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의 여유가 일본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에게는 늘 갖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하고 있을 때, 어느 분이 이 책을 읽고 행복해졌다고 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한동안은 집 꾸미고, 음식 만들고 뭐 그런 잔잔한 이야기들만 나오고, 뭔가 이 허영심에 가득찬 된장남... 이야기에 질릴까 말까 했지만, 뒤로갈수록 맘이 따셔지고, 울고, 웃고, 행복하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일본의 요즘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부모세대 부양 이야기. 점점 늙어가고, 나를 돌보지 못하게 될 때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가족의 해체에서 시작된다. '이혼을 했다.' 라며.

 

하나뿐인 아들은 미국에 가서 일찌감치 독립했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부는 헤어져 남자는 혼자의 삶을 준비하고,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전애인, 전애인은 남자가 구한 오래된 집 근처에 아버지와 살고 있다. 굉장히 깔끔하게 룸메이트처럼 살고 있던 아버지와 딸은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변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여자를 돕는다. 남자의 도움이 필요한 여자. 이런 그림은 아니다. 여자는 독립적이고, 신파는 없다. 그렇게 할법한 조치들을 취하고, 현실은 더 그악스러울텐데. 싶을 정도로 담백하다.

 

남자가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 후미와 관계를 맺는 이야기. 가나 (전애인)와 그의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이야기, 그리고, 그제야 안 아들의 미국에서의 새로운 연인 이야기까지. 팬시한, 그러나 중년의 팬시함이라서 뭔가 상큼함과는 거리가 먼 오래묵은 이야기 같았는데, 맘에 젖어드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의 나라서 더 와닿았던 부분들이 많았다. 여러 부분에서. 서너가지쯤? 그래서 이 책이 맘에 많이 남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와 아버지와 그리고, 오래된 집의 주인인 소노다 메아리씨까지 모두모두 응원한다. 잘 되었음 좋겠다.

 

그들은 우아하지 않은 삶도 우아하게 견뎌낼 것 같다.

 

굳세고, 강하고, 안전한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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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니나 2018-10-03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 저도 읽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