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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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유리잔이었다.

어쩌다보니 자주 홀짝이게 된 냉커피를 타기에 딱 알맞아 보이기에

씌어진 문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유리잔을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도서를 쓰윽 훓어보았다.

 

단숨에 눈길을 끄는 책은 없었다.

쓰윽 서너 번 되풀이하다 그냥 한 권 골랐다.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이다 보니 모든 작가의 이름들이 낯설었다.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아이들과 넘쳐나던 손님들과

하루가 도무지 정신없던 시절에도 읽던 날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엔 사서 재어두기는 커녕 구경만 하는 일도 드물다.

 

아뭏든 좋은 말로는 소박한 바램이요, 나쁜 말로는 어리석은 물욕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주문한 후에는 대충 잊고

도착한 날에는 유리잔부터 챙기고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서는 미처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그 하늘색의 채도와 명도에 감탄한 나는

모든 일에서 첫인상에 유난히 그리고 맥없이 휘둘리는 위인인지라

두 팔의 정적인 혹은 동적인 포즈와 소매 끝을 말아 쥔 손끝도 마음에 들었고

흰 색으로 씌어져 너무 한낮의 눈부신 또는 바랜 빛을 제대로 구현한 글씨도 마음에 든 나머지

이런 표지는 누가 만드나?

작가보다도 표지디자이너를 먼저 궁금해하며 책장을 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제주도에 시부모님도 계신다는 결혼한 아낙이

아무리 단편소설이라라지만 두 해 동안 9편의 글을 써서 묶어내었다는 것이 대단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냥 쓰윽 씌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그냥 사샥 써내려 갈 수도 있다는 걸

 

아뭏든 나는 재미있게 때로는 당혹스런 마음을 안고 재빨리 다 읽어버렸다.

딸은 엄마가 책 읽을 시간이 있었느냐고 놀라워했다.

대충 쓰윽 읽었건 졸아가며 읽었건 아뭏든 다 읽었다.

 

성석제를 읽으면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들이 겹쳐 떠오르고

권여선을 읽으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구석구석 한숨나는 현실이 어딘가 살아있을 듯 했는데

김금희를 읽으니 이건 일상의 탈을 쓴 기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내게는 무척이나 기이한 이야기들이었다.

성석제와 권여선에게 받은 느낌들이 적당히 뒤섞여 있다고나 할까?

 

권여선은 <평범한 세상이 김금희의 문장을 통과하면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정오처럼 익숙하면서도 이물스럽게 변한다.>고 말했다.

 

소설의 미덕이자 존재감이 복선과 반전에 있다고 한다면,

복선과 반전이 소설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김금희는 기본에 충실한, 존재감이 확실한, 소설가로서의 미덕을 갖춘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신문의 사회면을 뒤덮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지 날마다 확대 재생산되는 엽기적인 범죄들과

소통을 외면하고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일에도 이제는 게으를대로 게을러진 사람들과

그 속에 감추어지거나 감추어지지도 않은 채 난무하는 폭력과 공격성,

그 폭력이 몰고오는 두려움과 위압감, 무기력과 좌절감을 감당하느라

맥락없이 웃고 기억을 각색하고 환영을 만들어내는 그와 그녀들이
딴청을 피울 수 없게 너무 선명한 까닭으로

오히려 그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들여다보기가 힘이 든다

 

 

오랜 만에 어쩌다 읽은 소설 한 권이

내게 또 다른 우리 소설을 읽히는 동력이 되어서 일단 문학상수상작품집을 하나 주문했다.
내가 읽지 않던, 읽지 못하던 사이에

좋은 글을 써 온 또 다른 소설가들이 틀림없이 있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머지 않은 날에 김금희의 첫 소설집도 물론 읽어보고 싶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제목부터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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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16-07-1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을 너무 잘 쓰십니다. 좋은 리뷰 감사해요~! 저도 읽어볼게요.

2016-07-14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음 보내주셔요 하고 싶지만 지난 번 책들도 다 못읽었네요^^;;
리뷰 잘 읽었어요..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