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수요일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린 칠불사

 

중학교 새내기가 된 맏딸 아이 친구는

작년 봄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가시고 일주일이나 혼자 집을 지켰다.

우리 딸은 귀신나올 것 같아서 무섭지는 않냐고 물어보았다가

반 친구들로부터 온갖 야유를 받았다고 한다.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자유롭고 좋겠다고 다들 부러워했다나!

 

귀신 무서워서 집에 혼자 있지는 못하는 딸이지만 

두 동생과 함께라면 컴퓨터, 휴대폰, 드라마와 잠을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말리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 어느새 기꺼운 나이다.

그리하여 토요일마다 칠불사에서 김진무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불교이야기를 들으러

부부가 함께 길을 나선다.

 

강의를 듣고, 불경을 읽고, 참선까지는 아니라도 마음에 화두를 지니고 생각하고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정성을 들여도 뭔가 알듯말듯한 얘기들인데

그냥 한 달에 세 번, 강의를 하시는 여섯 시간 동안 귀 기울이는 것이 전부여서

눈에 띄게 쌓이는 것이나 잡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여시아문, 내가 듣고 이해한 바는 이러하다.

(불경은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어서 여시아문 하고 시작하는 글이 많다고 한다.)

 

나도 또 나를 둘러싼 세상도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하는터라

그렇게 변화하기 때문에 붙잡을 수 있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을리 없는

를 찾으려다보니 모든 것이 괴롭고

삶이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아서 해탈하면 고통스런 삶의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 극락왕생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우리 중생은 모두 이미 깨달은 사람들인데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괴로움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는 사실이다.

 

사물이나 현상은 변하고 변하는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가 작용하여 그 뜻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라고 불교에서는 강조하는데

여시아문,

세상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의지로,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강의를 듣고 있던 차에

온 더 무브라는 제목만으로도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글쓴이도 지각이란 

뇌에서 생리적으로 얻어낸 여러가지 정보를 총괄하여 

개개인이 경험을 통해 더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방향으로 선택적으로 구성하고

(마치 다윈의 자연선택설에서 그러했듯이)

잇따르는 정보를 받아들여 또 다시 재조직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지지한다.

                                                                          (445쪽~460쪽 뇌와 의식의 재발견)

 

글쓴이는 신경의로서 일흔이 넘도록 다양한 병증을 지닌 환자를 만나고

그런 인연들의 이야기를 모아 일반인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병례사를 썼고

(제목부터 특이한 그 책들을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랑하는 이들이나 공통관심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수 없이 편지를 주고 받았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바로 메모했으며 일기를 쓰고 또 썼다.

 

한편으로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고 달렸으며

말을 타거나,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리는데 도전했고

물을 만나면 헤엄치고 파도를 타고 스쿠버다이빙에도 몰두했고

심지어 마약에 빠져들었다가 정신분석상담으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또 회복 과정에서는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연구했으며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무척이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읽고도 믿기 어려울만큼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깊이있게 해내면서 살아온 올리버 색스의 삶은

글자그대로 온 더 무브였다.

그러나 쉬는 날 아이들을 데리고 방구석에서 뒹굴뒹굴거리는 게 전부인 나의 삶도 온 더 무브다.

째깍거리는 그 어느 한 순간도 온 더 무브가 아닌 순간이 없다는 게 부처님 말씀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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