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아이들이 아프다. 

아마도 사나흘 창문을 열어 둔 채 거실에 나와 잤던 까닭이려나? 

열이 오르고, 기운이 없어 늘어지고, 잠에 빠지고, 짜증과 어리광이 작렬한다. 

둘째는 눈이 충혈되고 코도 막히는지 말은 못하고 울음으로 하소연하고 

막내는 설사를 하느라 항문 주위가 발갛게 부어서 작은 몸을 움찔거린다. 

큰 딸은 기침도 콧물도 흘리지 않고 열도 오르지 않고  

자주 흘리는 코피만 가끔 흘리며 열심히 약도 먹어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뭏든 그래서 막내를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고 둘이서 하루를 났다. 

막내를 들여다보고 앉아서 토닥이고 책도 읽어주고 같이 놀아주어야 마땅했건만 

평소에는 먼지랑 티끌이 뭉텅이로 몰려다녀도 모른 척 하고 돌아보지 않던 마루를 쓸었다.  

청소기만 대충 돌려주어도 황송해 마지 않을 마루를  

두 손바닥으로 다 가려지는 작은 솔이 달린 키 작은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위~ㅇ! 해버리면 그런대로 잠깐 사이에 끝낼 수 있는 일인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발라드 채널을 틀어놓고, 앉은 채 나아가며 쓸기 시작했다. 

윙거리지 않는 건 저 노래소리를 살리기 위해서야 이런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 

자, 이제부터 도를 좀 닦아볼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하면서.. 

 

마루는 30평쯤 되지만 사방이 1터 정도로 보이는 한지장판을 발라놓아서 

한 칸 한 칸 쓸어나가면 어디까지 쓸었는지 분간하기 쉬워 좋았다.

 

처음에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쉬엄쉬엄 놀기 삼아 하려고 작정하고 시작했는데 

절반을 미처 다 못 쓸어낸 지점에서 이미 조바심을 내고 있는 나를 만났다. 

얼른 마저 쓸어내고 끝내버리고 싶어서 살려보겠다던 노래소리도 들리지 않고 

내 앞 뒤로 돌아다니며 낱말카드랑 장난감 따위를 흩뿌리는 아이도 보이지 않고  

양 손에 들린 한 뼘 반 남짓한 빗자루랑 꼭 그만한 크기인 쓰레받기만 온 눈에 가득했다.  

어찌 이리 일이 더딘게야?! 하여 짜증이 솟구쳤는데

그러다 한 순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도 넉넉하고 바쁜 일도 없고 꼭 그럴 필요가 없는 걸 왜 이리 서두르고 있나 싶었다.  

큰 숨을 한 번 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쓸어나가니 

이번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넓은 마루 끝에 다다라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에 꿈 속에서 자주 만나던 내 생각이 났다. 

숲 속 작은 집에서 면접관이 되어 나를 면접하던 나, 

저물녘 버스정류장에 오두마니 웅크리고 앉아 버스에서 내릴 나를 기다리던 나, 

슈퍼맨처럼 망토를 차려입고 내 한 손을 꼭 잡고 황무지 위로 날아오르던 나. 

 

둘째가 다니기 시작한 언어치료센터에 내걸어 놓았던 문구도 떠올랐다. 

아이들은 손톱이 자라듯이 자란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혀 자라지 않는 것 같지만  

또 어느 새 깎아주어야 할 정도로 자라있곤 하는 손톱처럼  

느리게 그래서 단번에 알아채기는 어려울 정도로 그러나 꾸준히 조금씩 잊지 않고  

그렇게 자라고 또 변하고 있으니 참고 기다려주시라 어머니들이여 뭐 그런 내용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비가 내린다. 

내일부터 며칠은 너덜이에서 아이들과 빈둥빈둥 뒹굴기로 했다. 

그 사이 열도 내리고 설사도 진정되고  

이제 남은 기침이랑 콧물이 멎고 기운을 차리도록 그렇게 놀기로 했다. 

큰 아이 혼자만 학교에 가라고 하면 조금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방치해 둔 방과 욕실과 겨울 운동화 여러 켤레와 집 안 곳곳에 무성한 거미줄과

부정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얇게 곰팡이가 핀 듯 끈적거리는 작지만 긴 마루와   

새어든 빗물에 젖어 씻어 널어야 할 장난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 다시 도를 닦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능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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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5 0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0-07-15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많이 아프면 엄마가 더 힘들어지지요?
둘째가 언어 치료 받으러 다니나 보네요. 조금씩 좋아질 거예요.
30평이나 되는 마루.. 라는 말에 깜짝 놀랐어요. 그 넓은 마루를 어떻게 건사하면서 살아요 그래? 열평도 안 되는 마루에도 맨날 먼지 굴러다니는데...

miony 2010-07-15 22:01   좋아요 0 | URL
저희 집 마루는 아니구요, 남편이 책임지고 관리하는 일종의 모임방이랍니다.
창피하지만 일 년에 하루도 제대로 닦지 않는답니다.
다녀가시는 분들이 쓸고 닦고 쓸고 닦고 그런 마루랍니다.^^

2010-08-02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