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랑 복작복작 너덜이에서 한 해가 갔다.
일년 365일 중에 너덜이를 떠났던 날은 열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정신없이 어지러운 집안 꼴을 몇날 며칠이고 그대로 두고 보며
간장에 비벼먹이고 물에 말아 김치랑 밥 먹이면 양반이고, 가끔 굶기기도 하면서
한창 호기심 많은 첫째, 늦되는 둘째, 아직 어린 막내랑 하루종일 눈 맞추고 놀아주어도 모자라건만
별스레 대단하지도 않은 책을 붙안고 읽었다.
첫아이를 기를 때는 일년 내내 단 한권도 읽지 못했다고 기억하는데
아이들 팽개치고 책 읽은 나를 책망해야 할지 그래도 등 토닥여주어야 할지 헷갈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운명이니 사주니 하는 것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다. 새봄이 올 무렵까지 온 가족 사주를 안방 벽에 연필로 써 놓고 돌아봐가며 무척 열심히 재미있게 읽었고, 욕심껏 더 사들인 책은 아니나다를까 먼지 가득 앉은 채 책장을 지키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 재방송을 챙겨보다가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던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고 가슴이 아팠다. 소나무집 님 페이퍼에서 본, 바다를 바라보며 등을 보이고 선 장군의 뒷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김 훈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표지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들이길 망설였지만 그래도 박민규가 강력한 추천사로 붙드는 바람에 읽게 되었다. 헛웃음을 웃다가도 답답한 요즘 세상사를 생각하면 입맛이 썼다.
올해 가장 마음에 든 글이다. 그래도 뭐라고 독후감을 쓸 능력이 내겐 없다. 그저 줌파 라히리를 알게되어서 기쁘고 새해에 그녀의 글들을 한껏 기대하고 더 읽으려고 한다.
사들이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한 가득인데 여전히 다른 책들을 사고 싶고, 그래도 또 새로 산 책들 중 몇 권만 읽게 된다.
보관함에서 고르고 골라 망설이고 망설이며 주문한 것이건만 내 앞에 도착한 순간 읽는 순서가 밀린 책들은 어쩐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분명히 그 중에 펄쩍 뛸만큼 멋진 글들도 틀림없이 있을텐데도 말이다.
새해에는 그렇게 묵은 책들부터 돌아보아야겠다.
지금 무척 읽고 싶은 책 딱 한 두권만 더 주문하고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