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에 처음으로 유치원에 들어갈 때 

곰돌이 푸 그림이 그려져 있고 색깔도 분홍으로 고운 실내화를 샀다. 

입학식 날 가져갔더니 유치원엔 장판이 깔려 있고 화장실도 교실 안에 따로 있으니 

실내화는 필요없다고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게다가 교실도 현관 바로 옆이니 양말 차림으로 복도를 걸을 일도 없어서  

그런 줄 알고 지낸 2년 동안 발 크기도 커지고 하여 

한 번도 제대로 신어보지 못한 실내화는 지금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영준이랑 소윤이는 실내화를 신고 오는데 자기는 없다고 또 눈물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하여 다그쳐 듣고보니 

급식실에서 신는 슬리퍼가 유치원 아이들에겐 큰 데다 또 많이 낡은 모양인데 

두 신입생이 살뜰하게 실내화를 챙겨와서 급식 시간에 신은 모양이다.  

그리하여 기동성 떨어지는 엄마는  

인터넷을 휘휘 둘러보고 택배비를 부담해가며 실내화를 주문하였다. 

4천원짜리 신발에 택배비 2500원을 물자니 어찌나 아까운지 초롱이 몫까지 두 켤레를 샀는데 

맘에 쏙 든다며 이리보고 저리보고 신었다가 벗었다가 

어서 월요일이 오면 좋겠다고 맘이 들떴다.  

새 신발이니 거실에서 신고 돌아다녀도 된다고 했지만  

그러다 더러워지면 안 된다고 다시 비닐에 싸서 태민이 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모셔두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 엄마, 초롱이는 왜 나랑 같은 실내화를 신어야 되는거야?"  

" 같이 주문한다고 말했었잖아? 같은 걸 신는 게 싫어? " 

" 응, 조금. 그런데 왜 엄마가 사주는거야? " 

" 엄마가 잘 몰랐구나. 다음부터는 따로 살께. 초롱이 엄마도 수민이 슬리퍼 사 놓으셨다더라." 

 

눈썰미가 있어서 이것저것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없고, 엄청 샘도 많은 이 철부지를 데리고  

꾸미는 데는 영 젬병인 어리버리 엄마가

그와 엇비슷한 아이들이 이웃에 즐비한 도시에 살았더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역시나 즐비하지 않았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4-12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2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