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니 맨발로 맨 땅을 누비고 있다. 

자갈밭, 시멘트 포장 위, 흙바닥, 감자밭 온갖 곳을 거리낌없이 다닌다. 

지난 겨울 날씨가 차가워지자 알뜰하게 신발을 찾아신는 버릇이 들었는데 

다시 맨발의 사나이가 된 것은 따뜻한 날씨 탓만이 아니다. 

잠깐 누그러졌던 물건 던지는 취미가 다시 활활 살아나서 

땔감으로 쌓아놓은 장작과 각목 따위를 틈만나면 축대 아래로 집어던진다. 

엄마한테 들켜서 회초리를 맞고 울기도 하고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서 곪기도 하건만 도무지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신발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주로 신고 다니던 노란 장화가 한 짝만 보이더니 

누나 운동화 한 켤레와 구두 한 켤레가 사라졌고 

아빠 등산화가 보이지 않으며, 오늘은 마지막 남은 자기 운동화까지 없어져버렸다. 

엄마도 재민이 젖 먹이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해야하니 

하루종일 그 뒤를 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잠깐 방심하면 어느 새 어디론가 빠져나가버린다.  

찾아나서기 전에 유리창 밖을 휘둘러 보면 

어느 날은 마을 길을 오르내리고 있고 

어느 날은 풀섶에 앉아 돌멩이를 던지다가 흙 구덩이에 드러누웠다 엎드렸다 하고 

어느 날은 축대 아랫길 한가운데 서서 하염없이 온갖 노래를 허밍으로 부르고 있기도 하고  

(3월 한 달동안 시험삼아 몇 곡이나 부르나 적어보았더니 몇 소절 정도지만 30곡 이상이었다.)

감자랑 함박꽃 모종 물 주는 호스로 한참 놀기도 하고 

마당에 있던 세발자전거를 탈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용케 끌고 내려가 축대 밑 빈 터에 갖다놓기도 하고 

오늘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가슴이 덜컥 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외출하고 안 계신 빈 집에 들어가 뭐 먹을 거 없나 냉장고를 살피고 있었더랬다. 

며칠 전에는 점점 마을에 더 가까이 내려가다보니  

아랫마을 할머니를 만나 과자 한 봉지를 얻어서 의기양양하게 할머니 손을 잡고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그 날 저녁, 다음날 아침, 점심 연거푸 그 집을 찾아가  

과자 달라고 떼를 쓰고 도무지 올라오려 하지 않아서  

재민이는 울려놓고 허위허위 내려가 데리고 와야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또 내려갔는지 빈 집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고 다른 집 할아버지가 데려오셨다. 

그나마 같이 손 잡고 가는 사람이 없으면 아래로 난 찻길이나 위로 난 산길로는 가지 않고 

집 주변만 빙빙 도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하는건지... 

외할아버지는 그래도 이러다 한 번 산으로 길을 잡아 들어가면 찾지도 못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다. 

또 여기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자동차들이 오히려 속력을 내며 달려올라오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도 걱정이다. 

산 아래서 지냈던 작년 여름처럼 위, 아래 커브길이라 시야가 짧은 도로에 수시로 뛰어들거나 

옷도 안 입고 땡볕에 혼자서 계곡에 내려가거나 

가게에 가서 아토피에 좋지 않은 음료수,아이스크림, 과자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막무가내로 가져오거나 

피서 온 낯선 사람들이 많은 아랫길을 잡아 하염없이 걸어내려가던 것보다는 낫지만 

어딘가처럼 손목이나 가슴에 줄을 매어놓고 못 돌아다니게 잡고 있을 수도 없고, 에휴~! 

하루에 흙먼지 투성이 바지 너댓벌을 갈아입는 것이야 세탁기가 빨아주니 그렇다 치고 

틀림없이 어딘가에 가져가 내던졌을 신발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있을 법한 수풀 언저리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운 곳들이어서 포기해야 하려나? 

아뭏든 결국 노란색이랑 흰 색 고무신 여러 켤레를 주문해 놓았다.    

아직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아무데나 응아를 하는 까닭에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하루종일 혼자 놀자니 

아빠가 점심 드시러 오실 때랑 퇴근해서 올라오실 때  

쏜살같이 쫓아나가 문을 잡고 서서 콩콩 뛰며 너무나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한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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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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