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이 장난감의 모든 것이던 시절이 지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뚜껑이 달린 병이란 병은 모두

열고닫고 열고닫고 라벨 떼어내고 이러면서 갖고 논다.

(똑같은 상표가 붙은 같은 크기의 병이라도

갖고 놀던 것 대신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으로 바꿔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처음에는 쏟아질까 걱정이 되는지 뭔가 들어있는 병은 무조건 비워달라고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새로 산 물이나 쥬스도 몇 모금씩 나눠마신 후 비워주어야하는 식이다.

다음에는 조금 들어있어도 상관없이 한 모금 마시고 닫고, 열고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닫고

이렇게 끊임없이 마시고 열고 닫는 것을 재미있어하더니

요즘엔 따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병에서 컵으로 컵에서 병으로, 병에서 또 다른 병으로...

수돗물을 틀어놓고 병에 물을 받아서 화단이나 계단에 가져다 붓는 것도 일이다.

식당에 가면 주시는 물 한 병이 빌 때까지 여러 개의 컵에 물을 나누어 따라야 직성이 풀린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액체는 잠깐 방심하면 싱크대 개수대에서 사라진다.

새로 사다넣은 우유 한 팩, 막걸리 한 병, 다소 비싼 죽력 반 병, 시원한 물 여러 병...

그리고 급기야는 콘센트에 붙박이 식으로 꽂아놓는 액체모기향 병을 풀어내어서

어떻게 했는지 뚜껑을 열고 다른 페트병에 붓고 있는 걸 목격하고

" 너 지금 뭐하니?"

차분하게 한 마디 했더니 어찌나 서럽게 서럽게 울었던지

바깥에 있던 아빠가 어디 다친 줄 알고 집안으로 서둘러 들어오실 정도였다.

오늘은 욕실 수도꼭지 앞에서 병에 물 받고 부으면서 거의 하루를 보내더니

세숫대야에 담긴 물을 페트병에 옮겨 붓기 시작했다.

키가 제법 컸어도 아직 대야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다 흘려보내면서도 꾸준히 병에 물을 채우려 노력하였다.

 

또 다른 취미 하나는 높은 곳에서 물건을 던지는 것이다.

3층 베란다나 창문으로 무거운 것, 가벼운 것, 부피가 큰 것, 작은 것 구별하지 않고 집어던진다.

2천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든지 여름 이불 한 채를 집어던진 날도 있었고

베개와 쿠션, 인형, 페트병,그림책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 널린 것을 한 바구니씩 집어담아 올라와야 한다.

창고나 다름없는 다락방에 쌓인 물건도 추락을 피하기 어려워서

박스에 담긴 옷이랑 장난감, 등산용품 등이 계단을 구른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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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1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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