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예나 지금이나(아마도) 방학숙제라든가 교내 글짓기대회 용으로 억지로 써야하는 독후감이란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의 그림자가 얼마나 검고도 큰지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원고지 몇 장 이상 - 이런 요구 조건이 있을 경우엔 더욱)

읽고 싶던 책도 정나미가 뚝 떨어지곤 하던 시절도 있었고,

아무도 나에게 독후감을 요구하지 않는 지금에도

왠지 책을 읽고나면 뭐라고 한 문장이라도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여전히 남아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덕분에 뒤적거리던 책도 있었으니 검기만 한 그림자는 아니려나?

 

중학생이 될 무렵 시내에 다녀오시는 아버지를 학수고대하였다가

한 두 권씩 사 오신 것을 우리 자매들이 줄을 서서 재미있게 읽었던 <소년생활칼라북스>도 있지만

똑같은 하드 장정을 하고 책꽂이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청소년 세계명작문고>

뭐 대충 그런 이름의 문고판 책 수십 권이 있었다.

커서 알고보니 짧은 지면에 대작을 싣느라

단편이 아니고서는 개략적인 줄거리를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아뭏든 나에게는 무작정 어렵고 지루한 것들이어서 그 절반도 채 읽지 않았던 책들이다.

그런데 중2 때였던가 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쓰느라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파리와 런던의 영락생활>이라는 단편(!)을 읽게 되었다.

그 때는 영락이라는 단어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꼬맹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열 몇 살 먹은 소녀의 감수성에 호소할 내용과는 거리가 먼 이 소설이

나의 가슴에 혹은 뇌리에? 꽂혔다.

독후감도 썼던가? (- 썼다면 책 뒤의 해설을 반쯤은 베꼈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하여 이십 여년이 흐른 어느 날 어느 알라디너가 언급한 것을 계기로

당장에 무작정 주문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작가가 조지 오웰이라는 많이 들어 본 소설가라는 것은 그 때야 알았다.)

그러고선 역시 두 세 달 책꽂이에 방치한 끝에 어제와 오늘 다 읽었다.

 

누구나 모두들 감탄할 만한 근사하고 멋진 작품을 한 번은 쓸 수 있다고 한다.

-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과연 모두가 정말로 그럴 수 있겠는가만은

우리 모두의 삶이 다른 어떤 드라마 못지 않은 소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나도 믿는다.

그리하여 조금은 쑥스럽고 수줍은 듯 그리고 서툰 듯 하면서도 솔직한,

가슴을 울리는 처녀작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나는 드라마의 한 컷으로 먼저 보았는데

어떤 아낙이 옛날 부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양치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 한 컷에 울림이 있어 제목을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집을 사서 읽었더랬다.

그 때는 결혼 전이었고 훨씬 어린(?) 시절이었지만

양치질을 하는 그 여자의 마음을 왠지 헤아릴 듯 했다.

(그런데 풍금이 있던 자리가 신경숙의 처녀작이 맞던가? 아님 말고^^;;)

 

제목이 파리와 런던의 영락생활이 아닌 밑바닥 생활이어서 어쩐지 서운했지만

글은 어린 내 마음에 남았던 그것이었다.

작가로 성공하기 전에 무명 시절의 어려움을 겪었다기보다는

식민지 버마(미얀마)에서 5년 동안 했던 경찰관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반 쯤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생활이었고,

또 반 쯤은 잠입취재 성격의 생활이었다니 그만 별 하나를 빼게 된다.

그리고 군데군데 유태인을 멸시하는 시선 역시 좀 거북하다.

 

그렇지만 그 시절 같은 문고에 실려있어 읽고도 아무런 기억도 감흥도 없었던 <동물농장>이나 <1984년>처럼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 몇 편이라도 더 찾아 읽고싶다.

 

마르쿠스 카토(역주: 로마의 정치가)는 노예는 자지 않을 때에는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예가 하는 일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 자체가 노예에게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는 아직도 잔존하고, 그런 정서가 산더미 같은 무익한 고역을 쌓아오고 있다. 나는 무익한 노동을 영속시키려는 이런 본능이 근본적으로는 대중에 대한 공포일 뿐이라고 믿는다. 대중은 너무 하등한 동물이어서 여가가 생기면 위험할 것이다,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중은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은 자연히 부자들의 편을 든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자유는 자신들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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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2-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저보다 훨씬 아래 세대 같은데
독후감에 관한 부분은 비슷하네요.
하긴 지금도 우리 애들 방학 숙제에도 독후감은 약방에 감초 같은 존재니까...

miony 2007-12-11 17:43   좋아요 0 | URL
조카들도 독후감 쓰기 싫어하더라구요^^;;

순오기 2007-12-1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즐긴게 아니라 항상 숙제라는 이름으로 했기에 생긴 병폐겠죠?
오늘도 여전히 교육현장은 그런 걸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18일 토론도서예요. 사놓고 아직 읽지 않아서...뭐라 말할 수 없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