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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3
로이스 로리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6월
평점 :
금을 그은 것은 몰리언니였다.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안식년을 맞아 책을 집필하는데 몰두하려고 시골에 작은 집을 구한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된 메그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런 말을 듣게 된다.
" 자, 이제 마음껏 어질러도 좋아. 하지만 네 쪽에만 어질러. 이 쪽은 내 공간이니까."
두 여동생과 한 방을 쓰면서 서로 마음에 드는 잠자리를 차지하려고 실갱이를 벌이던 나날이 떠올랐다.
운 좋게 자매가 있다 하더라도 각자 자기 방에 갇히기 쉬운 요즘엔,
서로 싸우고 질투하고 공간을 다투면서도
불 꺼진 방 안에서 잠자리에 누워 조잘대며 쌓아가는 정은 자꾸 옅어져가는 것 같다.
올 여름이 끝나갈 무렵 주문해 놓은 책을 꽂아만 놓았다가
겨울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손에 잡았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읽으려고 꺼내어 놓고 얼마나 집 안에 굴렸던지
미니는 한 눈으로 표지를 힐끗 쳐다보고는 책 제목을 욀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단숨에(하루 만에- 두 아이와 읽다보면 이것도 단숨에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읽어내렸다.
올 에이지 클래식이라는 문고 이름에 걸맞게
열 세살 메그의 이야기가 그 세 배를 살아온 나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심지있는 삶을 지혜롭게 살아나온 것이 틀림없는 윌 할아버지,
남산 만한 배를 안고도
즐겁고 씩씩하게 아기 요람을 만들고 배내옷을 짓고 텃밭을 일구는 마리아아줌마,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여전히 마음은 소녀이고파서 같은 문고의 <바다 바다 바다>와 <병 속의 바다>도 읽고 싶어졌고,
언젠가 우연히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았던 <마르셀의 여름>이라는 소년의 여름도 기억났다.
마가렛, 너는 황금빛 숲에 잎이 지는 것을 슬퍼하느냐?
인간은 결국 시들어가고, 네가 슬퍼하는 것은 마가렛 너 자신이구나!
- 홉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