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史 -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
마리아 루시아 G. 팔라레스-버크 지음, 곽차섭 옮김 / 푸른역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서양 꽃 문화를 비교한 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잭 구디, 빅토리아기 물건의 사회사를 연구한 에이사 브릭스, 16세기 프랑스사를 공부한 여성학자 나탈리 제이먼 데이비스, 근대 자연관에 대한 심오한 고찰로 17세기 영국 문화사회사를 파헤친  케이스 토마스, 프랑스 혁명기의 패션으로 문화 전반을 다루는 다니엘 로슈, 저자의 남편이자 르네상스기의 유럽을 공부하는 피터 버크, 미국의 역사학자로 계몽주의의 유동과 소비를 연구하는 로버트 단턴, 근대초 유럽 민중문화사를 다룬 이탈리아의 카를로 긴즈부르그, 정치사상사를 새롭게 탐구하는 케틴 스키너 총 9명의 역사학자와의 인터뷰를 실어놓은 책이다.  

 인터뷰(대담)란 단어는 비공식적인 관례를 빌려 비교적 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결과물을 산출해내는 유동적 장르이다. 우리는 저명한 역사학자의 저술에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들의 역사관을 생생한 대화체로 즐길 수 있다. 인터뷰란 장르를 통해 딱딱한 목차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말이다. 9명의 역사학자는 모두 기존의 딱딱한 랑케식 역사관을 넘어서 새로운 역사학을 구축한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나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인류학이나 역사 개론서에서 한 두 번씩 이름으로나마 접해봤을 것이다. <치즈와 구더기>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한 추리 역사소설을 쓴 카를로 긴즈부르크와 <지방의 계몽주의>를 비롯하여 원서로도 접해봤던 다니엘 로슈, <책과 혁명>과 같은 친근하면서도 뛰어난 저서로 유명한 로버트 단턴 등을 50-60쪽의 지면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멋진 기획이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서구 중심 사관과 근대 역사학을 부정한다. 또한 9명 모두 공통적으로 역사의 통찰력을 현재 문제 해결의 대안이자 앞으로 역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니엘 로슈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쾌활하게 충고한다. 다양한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라!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교하고 통찰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골고루 알고 느끼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시궁창 같은 속세에 몸을 담고 있어도 반듯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 실린 9명의 역사학자들은 학문의 세계에서 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배울 바가 많다. 학회에서 딱딱한 발표와 토론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농담과 고뇌가 뒷풀이게 가면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학회와 뒷풀이 모두가 함께 있는 책이다. 거장들이 추천해준 역사서를 곱씹어 읽고 다시 이 책을 본다면 내 통찰력도 성장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Daum 문학속 세상에 2009년 상반기에 연재되었던 도가니. 매일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클릭을 했던 그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이렇게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책으로 묶여져 나오는 것도 좋지만, 매일매일 웹상에서 만나는 소설도 색다른 맛이 있었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댓글을 달아주기도 하고 인상깊은 구절과 작품에 대한 정보를 다른 누리꾼들의 댓글로 확인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도가니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작품이다. 2005년 광주의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김승옥 씨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무진이라는 도시의 이름과 안개를 빌려다 썼다.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안개는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운 희뿌연 상황을 상징한다. 힘없는 아이들이 당한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은 눈물없이 보기 힘들다. 참혹하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가해자들의 뻔뻔스러움과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의 가식적인 모습은 분노없이 보기 힘들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묶이다 못해 갖가지 중요한 사회 세력에 포진되어 있는 옹호 세력에게 정의는 없다. 이런 상황이 교육, 정치, 사법, 종교에 만연한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강자에게 유린당하는 약자들, 세상과 단절된 아이들의 외침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회. 그러나 이런 소설을 통해 그런 사회를, 그런 강자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부패를 처단하고 정의를 옹호하는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1960년대의 안개가 아직도 자욱하다. 더이상의 나영이, 장지연씨가 나오지 않도록 21세기에는 햇살과 달빛을 고스란히 온누리에 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장면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때 그 장소에 가지 않아서 그런 일이 없게 할 수 있을텐데. 나 역시 그런 소원을 누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나비효과 처럼 꼭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모든 불만이 해결될 수는 없을 것 같기에 사람들은 지우기 보다는 극복하는 쪽으로 타협한다. 

상처를 이긴 큰 유진과 상처를 유폐시킨 작은 유진이는 또다시 그 상처가 덧나는 아픔을 겪는다. 마치 중학생 또래의 친구를 둔 것처럼 재잘재잘 명랑하게 떠드는 아이들 속에 있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지만 내용은 명랑하지만은 않다. 비록 전형적인 서민층이지만 큰 유진이네는 가족간의 사랑이 듬뿍 베어 있다. 남동생과 다투고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아버지께 투정하고, 사춘기 큰 유진이넨 모든 것이 불만 투성이였다. 그런데 공부잘하고 예쁜 작은 유진이네는 겉보기와 다르게 매우 아슬아슬하다. 작은 유진이는 마음 속에 품은 말을 할 수 없다. 가족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교 1등을 했을때야 아버지께서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사주며 자랑스러워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필요한게 있냐는 차가운 물음만을 던질 뿐이다. 부유하지만 답답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큰 유진의 말로 인해 작은 유진이는 자신이 왜 집에서 깨진 그릇 취급을 받아 왔는지, 자신이 기억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낸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내었던 큰유진이네와 달리 작은 유진이네 부모님은 성인이지만 숨을 곳을 찾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엉클어졌던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같겠지만, 사랑은 사랑으로 표현되어야지 돈이나 물건이 그것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나무옹이가 세월의 무게를 딛고 더 단단해지듯이 유진이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더 단단해질 것이다. 아동들의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작가 이금이씨는 즐거운 문체로 진솔하게 잘 풀어냈다. 작은 유진이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내면서 찾는 정보 속에 오늘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1991년 김부남 사건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꼭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오늘날에도 유효해서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사계절 1318 문고 56
박채란 지음 / 사계절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4총사가 있습니다. 태정이는 본인이 맡은 일을 척척 잘해내지만, 아버지께서 자신과의 약속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해서 매우 실망한 친구입니다. 또 다른 한 명인 새롬이는 연예인 지망생인데, 자신의 미운 손 때문에 대학생 남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선주는 매우 똑똑하고 글을 잘 쓰는 친구인데 언니가 자기 때문에 자살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 명의 친구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천사 하빈이가 여기에 끼어듭니다. 이 천사는 나머지 세 명이 모라고 하거나 말거나 자신은 식물을 주관하는 천사이기에 목요일에 사이프러스라는 카페에서 만나 한시간씩 대화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사실 이 4총사는 갑자기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 뿐 예전에는 서로 인사조차 잘 하지 않던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각자 리더쉽, 미모, 공부로 매우 잘 알려진 아이들이었죠. 마지막 멤버 천사 친구는 3명과 다르게 왕따 기질이 다분한 아이랍니다. 매일 혼자 앉아 햇볕을 쬐고 중얼중얼거리고 말투도 느리고 이상해서 아이들이 싫어하죠. 하지만 3명의 친구들의 소원과 속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는 이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될지 매우 걱정스럽게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제일 처음에 문제가 해결된 아이는 리더쉽이 강한 태정이입니다. 우연히 교통사고가 나게 되고 겁에 질린 선주가 태정이의 유서내용을 아버지에게 은근슬쩍 흘리게 되죠. 계획과는 어긋낫지만 태정이 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 사막에 함께가서 낙타를 타보자는 약속을 기억하게 되고, 태정이가 얼마나 자신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힘들어했는지 알게됩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태정이는 하빈이가 정말로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새롬이는 좀 복잡합니다. 일잘하는 태정이가 새롬이의 새로운 인연을 찾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죠. 약국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생에게 비타민을 타다가 새롬이에게 가져다 주고, 그 동창생은 새롬이의 외모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바라다봐주는 친절한 학생이었기에 새롬이의 컴플렉스를 잘 다독거려 줍니다. 새롬이는 그 대학생 남자친구는 싹 잊어버리게 되죠. 마지막으로 선주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나 언니가 자꾸 생각이 납니다. 언니가 어머니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죠. 놀랍게도 태정이는 선주의 언니가 하빈이와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빈이가 입원하면서 태정이는 선주에게 선주의 언니 핸드폰을 전해주게 됩니다. 그 핸드폰에 있는 동영상을 보면서 선주는 모든 오해를 풀게 되죠. 

그리고 하빈이에 대한 귀여운 반전이 있습니다. 하빈이는 천사라고 생각해요. 천사가 다른 게 뭐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바른 곳으로 인도하고자 하늘의 뜻을 가진 전도사이니 하빈이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들은 모두 천사라고 할 수 있겠죠? 하빈이로 인해 4총사 모두 천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룡소 클래식 16
루이스 캐롤 지음, 존 테니엘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자의 고뇌가 담긴 책이다. 빨간머리의 앤 시리즈를 번역하기도 했던 역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우리말로 옮기기 까다로운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영어 표현을 가지고 장난을 친 구절이 많기 때문이다. tale과 tail, 가주어 it, 'geology'와 'seaology','history'를 'mystery'로 바꾸는 식이다. 의역을 한 부분이 많아 걱정스러웠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주 잘 한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동화책이었을 때부터 접했지만,  맛있는 알약을 먹으면 뱀처럼 목이 길어지고, 거인처럼 몸이 커졌다가 벌레처럼 몸이 작아진다는 것 외에 전혀 재미가 없었다. 특히 알수 없는 카드에 대한 설명이나 이상한 노랫말, 아기가 왜 갑자기 돼지로 변하고 티타임은 또 무엇인지 우리나라 문화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도 꾸역꾸역 읽어넣었던 기억이 씁쓸하다. 

이 책은 잘 알려진 바 대로 19세기 영국의 정치와 문화를 풍자한 것이기도 하다. 앨리의 길안내를 했었던 (본의 아니게) 토끼는 소심한 관리를, 여왕은 폭압적인 정치체제를, 현학적이기만 한 학자들과 겉으로만 친절을 가장하고 이기적인 귀족을 웃음으로 그려놓았다.  

비룡소에서 나온 앨리스는 마치 두꺼운 다이어리처럼 되어 있다. 삽화도 충실하고, 노랫말도 우리나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번역되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앨리스와 제대로 된 모험을 다녀오니 약간 피곤했다. 내 주변에는 돼지나 양치기 개, 누울 수 있는 풀밭, 티타임 따위는 결코 편안하지 않다. 옆 집의 강아지들은 집 주변에다가 실례를 해놓고 가고;; 들고양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기 바쁘다. 게다가 닭은 새벽마다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는 지 알람소리가 필요없을 정도이다. 깨끗하게 관리되는 잔디밭과 커다란 나무도 근처에 있고,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마음껏 커피한잔 우려낼 수는 있다.  그러나 잔디밭에 들어갔다가는 관리 아저씨에게 된통 욕을 얻어먹고, 커피 한 잔을 사람들과 나누기 보다는 그냥 혼자 마시는 편이 정서상 좋다.

19세기에 농촌의 다소 시끄럽지만 따스한 환경이 우리에게는 불편하고 인위적으로 변했다. 도시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걸까? 후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기회가 되면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