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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천하 삼십육계 ㅣ 시그마북스 동양고전 시리즈
도설천하·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 엮음, 유소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도설천하 삼십육계>란 제목이 매우 낯설었다. 동양의 고전을 통해 세상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인 도설천하(圖說天下)는 시그마북스의 동양고전 시리즈의 상품명이다. 그리고 뒤에 <삼십육계>가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원전이다. <삼십육계>도 궁금하지만, <손자병법>도 아직 못 읽어본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도설천하는 <삼십육계>뿐 만 아니라 <노자·주역·논어·장자·손자병법·사기·자치통감·사서오경>까지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받자마자 고전에 걸맞게 아름답게 꾸며진 책의 편집이 매우 돋보였다. 표지도 세련되었고, 속 안의 내용은 원문을 음과 함께 싣고, 또다시 평어와 번역, 현대의 이야기로 매우 자세하면서도 보기 편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내용과 관련되는 인물이나 그림, 사진까지 실려 있어서 지루하지가 않다.
<삼십육계>는 <손자병법>을 뛰어넘는 전략서이다. 이 책에는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계책 36가지가 실려 있다. 책의 측면에 색상을 넣어 6개의 장과 36개의 계책 이름을 넣어놓아서 본인이 필요한 방도를 찾을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는 바로 ‘미인계’이다. 아쉽게도 미인계는 6장의 마지막 장인 패전계로써, 상황이 가장 불리한 경우를 우세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미인계에서 활약한 미인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는 것인가? 중국 고대의 싸움에서 여성은 승자가 될 수 없던 구도였으니 말이다. 중국 고대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 서시, 초선, 양귀비도 만나보고, 2차 대전 때 활동했던 여성 스파이들도 봤다.
<초한지>, <삼국지>, <수오지>, <홍루몽>등의 원나라 때 유행했던 중국의 유명한 소설들을 접해봤다면 이 책은 단숨에 읽힐 것이다. 나는 4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굳이 소설을 책으로 볼 필요도 없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일례들, 혹은 만화로 접했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 계에 맞게 잘 버무려져 있다. 아마도 <삼십육계>를 다방면으로 잘 활용한 사람 1위를 꼽는다면 당연히 제갈량이다. 1장에서 승자는 끝내 제갈량의 공격에 응수하지 않은 사마의였지만, 그가 와룡에서 유비의 천거를 받을 때부터 숱한 전투와 세상을 대하는 처세는 3분의 1정도 되는 계에 각각 실려 있다. <삼국지>에서 폐병을 앓아 얼굴이 하얗고 직접 나서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자신의 일을 훌륭히 처리해내는 제갈공명 때문에 짝사랑을 앓았던 나는 이 책이 매우 잘 와 닿았다. <홍루몽>의 인용은 여성들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제1계인 만천과해에는 고 정주영 회장이 500원 짜리 동전을 들고 다니며 조선업을 세운 일화가 담겨있다. ‘만천과해’란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란 뜻인데, 지나치게 공개적인 것에 오히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500원 짜리 동전에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우리 민족이 몇 백년 전에도 이런 멋진 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외국인에게 선전을 하여 조선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정주영 회장을 끝으로 더 이상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일화는 볼 수 없었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기업이 펼치는 전술을 삼십육계를 통해 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1장 승전계, 2장 적전계, 3장 공전계, 4장 혼전계, 5장 병전계, 6장 폐전계까지 모두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가를 다루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싸움은 비단 적과의 싸움만이 아니다. 잔인하게 친구를 이용하여 승리를 취할 수도 있고, 손님으로 초대받은 자리에서 주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충성한 주군도 믿으면 안된다. 마지막 삼십육계 줄행랑은 승리에 도취한 주군의 곁을 얼른 떠나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한다. 지나치게 공이 많은 신하는 주군의 권력을 위협하기 때문에 제거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만하면 우리나라 CEO의 필독서 1위에 오를만하지 않은가? 용병은 손자, 책략은 삼십육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어떤 상황에 닥치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놓았다. 개인의 인간관계와 국제 교류, 비즈니스 세계에 노출된 CEO들은 이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 상황이 떠오르며 다양한 대처법을 강구해 내는 영감을 얻을 것이다.
나는 CEO는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속 사정을 낱낱이 들춰본 기분이 든다. <삼십육계> 원본에는 주역의 64괘 풀이를 인용한 구절도 종종 나온다. <주역>에서 으뜸으로 치는 괘는 ‘겸’괘이다. 겸괘는 겸손하다란 뜻인데, 본인의 위치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겸손하다면 좋은 것은 유지되고, 나쁜 것은 벗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겸손함을 잊어버리면 36계에 당하기 쉽다. 겸손하지 못하면 주위를 잘 살피지 못하고, 아군과 적군을 구분할 수 없으며, 적을 친구로 대하기도 한다. 36계에 나온 여러 인물과 이야기를 보면서 ‘이 때 겸손했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실제로 주역에 나온 주석의 내용이 일화로 소개되어 있기도 해서 책을 펴낸 이들에게 매우 감사하다. 고전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꺼내주었기 때문이다. CEO가 되고 싶은 분들, 본인을 괴롭히는 친구가 있는 분들, <삼국지>를 다시 읽고 싶은 분들 모두 이 책을 읽어보시라, 후회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