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서 너 가져
김범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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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이었던 할매가 돌아왔다를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가 유산 60억을 물려준다며 식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유쾌한 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해학이라고 해야 하나. 사회문제를 툭툭 건드려도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에 푹 빠져 읽었으니 작가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은 높기만 했다.

 

2의 여학생 김별. 외국에서 살다온 별이는 남다른 영어 발음과 아이돌 그룹 틴탑의 니엘을 조금 닮은 상급생에서 고백을 받은 이후 왕따를 당하고 있는 별이. 학교 짱인 백도혜와 그 무리들에 찍혀 괴롭힘을 당하던 어느 날, 백도혜가 끝장을 보자며 동네 당산다리 밑에서 만나자며 결투(?) 신청을 한다. 겁을 집어 먹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그 때 별이의 앞에 노숙자처럼 보이는, 희한한 패션의 중년 아저씨가 나타난다.

 

별이의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다. 지방대학의 조교수로 있는 아빠는 개똥같은 세상을 욕하다 엄마와 다투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친구 순영은 당산다리의 사건 이후 일진이이 되겠다며 또 다른 일진 장덕화와 싸움을 벌인다. 몰래 좋아하던 교회 오빠 우현의 소식도 심상치 않고, 갑작스레 등장한 개간지라 불리는 아저씨는 별이가 위급한 상황에 몰릴 때마다 슈퍼맨같이 나타나 위기에서 구해준다. 알고 봐도(스포 당해도), 모르고 봐도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 사내는 왜 자꾸 별이를 구해주는지 모르겠다.

 

알약 하나를 먹으면 천재가 되는 영화 리미트리스생각이 나게 하는 개간지의 신비한(?) 능력은 참 탐나더라.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개간지의 캐릭터는 독특하다 못해 생경스럽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고 있는 따뜻한 마음은 절실히 느껴진다. 여러 개의 별명이 붙은 개간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회적인 문제들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정면으로 끌어와 돌직구를 날린다. 근데 그게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작가 특유의 필체로 유쾌하고 생동감 있게 풀어내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등장인물이나 글 속에 담긴 이야기는 청소년소설을 지향하고 있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은 이야기다. 나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없는 이 땅에 작게나마 위로가 되어주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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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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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요즘 종종 들을 수 있는 셰어하우스에 관한 책이다. 다만 일본에서 나온 책의 번역서라는 것. 무엇이 되었든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셰어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건 사실이다. ‘share'의 사전에 나온 뜻은 나누다, 공유하다 뭐 그쯤인데 집을 공유한다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기숙사나 고시원 같은 곳을 떠올리면 쉽다. 내가 보기엔 고시원 보다는 기숙사가 더 가까워 보인다. 개인적인 공간을 보장하면서 기타 공간을 다른 사람과 같이 쓰는 것이니까.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 여러 가지의 주거 형태가 존재한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주거 형태가 많이 생겼다. 셰어하우스도 그 중의 하나인데 책 속에서는 여러 가지 장점을 어필하고 있다.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 책에서는 같이 사는 사람과의 돈독한 친목 도모로 외롭지 않다는 걸 크게 꼽았다.

 

그저 일상형 셰어하우스만이 아닌 그 속에서 또 다른 주거 형태를 보여주는 콘셉트형 셰어하우스나 컬렉티브 하우스, 가족이 모여 살고 코먼 하우스로 이어진 타운 하우스 형태의 셰어하우스도 흥미로웠다. 보다 발전된 셰어하우스의 모습으로서 새로운 또 하나의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여러 가족이 사는데도 생활에 필요한 공간들이 독립적으로 유지되는 걸 보니 굳이 혼자 사는 것만 고집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생활이 아니라서 서로 마음이 얼마나 잘 맞느냐도 중요한 요소다. 예전에 기숙사에서 2년 살아본 경험자로서 이건 필수불가결인 요소이다. 정말 백배 천배 공감되는 말이었다. 타인과의 즐겁고 쾌적한 삶을 위해 서로 피곤하지 않으려면 조금의 무신경함과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꼭 필요한 성격이라고 본다. 저렴한 비용은 장점이지만 개인적인 성향은 조금 버려야 넉넉하고 따뜻한 셰어하우스 생활이 될 것이다. 국내 사정과는 조금 틀려 보여도 셰어하우스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작은 지침서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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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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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전작이었던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를 끝까지 못보고 덮은 기억이 있다. 일본의 3대 명탐정 중 하나라는 가미즈 교스케라는 인물에 적응도 힘들고 취향에도 맞지 않아 절반까지 읽고서도 과감히 덮어버린 암울한 기억. -.-;; 재미있다는 입소문에 얇은 귀는 팔랑팔랑, 호기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지만 이제야 만난 건 다 그런 이유에서다.

 

한 남자가 있다. 살인과 사체유기로 구속되어 재판을 앞둔 무라타 가즈히코. 극단 동료였던 내연녀와 불륜을 벌이고 남편을 살해, 사체유기 죄로 기소된다. 결국 내연녀 살해라는 극단적인 범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이 모든 죄를 부인하고 남자의 사체 유기만을 시인한다. 피고인의 변호사인 햐쿠타니 센이치로는 무라타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

 

재판은 법정 기자 요네다 도모이치라는 인물의 시각으로 제3자 입장에서 보여준다. 피고인과 검찰의 긴장 넘치는 법정 공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무라타가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깊이 공감은 하지 못하겠다.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절절하게 와닿지도 않는다. 법정 미스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데 무라타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그것에는 고개가 갸웃. 솔직히 일본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백퍼센트 법정 장면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법적 오류가 전혀 없다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한 건 사실이다. 법정 미스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숨 막히는 긴장감은 일부러 찾아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 면에서는 훌륭하다. 말 한마디로 청중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힘도 느낄 수 있었고.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다. 따지고 보면 그 시대에 이만한 법정 소설은 보기 힘들었을 거다. 국내에서도 절판되었다가 다시 복간된 책.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복간시켜준 출판사에는 정말 고마워진다. 입소문만 무성하던 책을 직접 확인해보니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복간된 책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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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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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언제 읽어도, 언제 봐도 아픈 이야기가 5.18이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렇게 아픈 이야기를 작가 한강이 썼단다. 시집도 쓰는 그녀가 조곤조곤 건네는 5.18에는 어떤 감정이 스며들었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읽으면서 많이 아프지 말자는 다짐도 조금 했고.

 

그 날의 광주. 중학생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으러 도청 상무관에 왔다가 시신 처리하는 일을 돕고 있다. 싸늘하게 식은 시신 앞에 영혼을 달래기 위한 초를 밝히고 계엄군의 총에 맞아 처참히 죽은 정대의 죽음을 떠올린다. 동호와 정대, 정대의 누나 정미로 옮겨가고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있었던 인물들이 겪었던 그 날의 광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예상대로 참 많이 아팠다. 한숨이 푹푹 내쉬어지고 차마 넘길 수 없는 책장에 책을 덮고 딴 짓도 했다. 5.18의 한복판에 서서 그녀가 건네는 이야기는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역사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프다. 꿈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던 마음도 있었다. 꿈이라면 그때만 아프고 말텐데 엄연한 사실이자 과거이니 절대 그럴 수가 없다. 피가 튀는 전쟁도 아닌데 이게 어떻게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일인지 쉬이 납득도 되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사소하지 않은 고귀한 목숨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나의 짧은 독서 경력에 이런 감정을 가져다 준 책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세수를 하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자꾸 떠오르는 동호 생각에 눈물이 나고 울컥대는 가슴에 숨을 고르고 진정하게 만드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나 스스로가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 내 잔잔한 일상에 이렇게 격한 감정이 함께하는 건 참 드문 일인데 소년이 온다가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울리려고 작정하고 쓴 글도 아닌데 이렇게 휩쓸릴 줄 몰랐다. 그만큼 그 날의 광주가 아팠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많이 옅어진 그 날의 아픔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희미해져만 간다. 얼마나 아팠는지 가늠도 하기 힘든 내가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면 거짓말이겠지. 잊혀지고, 잊어져도 누군가는 또 이야기할 것이다. 쉽게 잊어질 아픔이 아님을 누구나 다 아니까. 뼛속까지, 심장까지 아프게 하는 그 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글에 귀 기울여 보자. 당신도 분명 많이 아플 거라고 미리 다짐을 받아둔다.

 

p.122
정말 닥쳐올 총살을 기다리듯 숨을 죽였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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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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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이었던 은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광고 문구에 얇은 귀가 솔깃했다. 작가 스스로가 미쳐서 썼다던 적요의 뜨거운 사랑을 이야기했던 은교‘. 강렬했던 여운이 몇 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 재탕도 하는 내가 이런 광고문구에 혹하는 건 당연한 얘기.

 

소소한 풍경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야기하는 건 맞다. 광고에 빗대어 보면 이건 분명 사랑 이야기여야 하는데 내가 생각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광고를 잘못 본걸까, 아니면 광고가 잘못된 것일까. 각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또 한명의 여자.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헤집으며 이상한 관계를 쌓아가는 소소에서의 작은 풍경.

 

이들의 상처는 모두 가족에 관한 것이다. 남편으로, 아버지와 형으로, 새아버지로 흘러가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곁에 비어있는 자리의 허전함을 느낀 이들이 상처를 외면하고자 작은 도시 소소로 떠나오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위안이 되는, 일상처럼 그냥 지나쳐도 모를 아주 작고 작은 소소한 이야기. 뚜껑을 열어보면 마냥 소소한 이야기가 아닌 거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깊은 상처를 지닌 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책을 전부 읽고 나서의 느낌은 모르겠다였다. 작은 판형에 두껍지도 않은 책을 지진부진 일주일을 붙잡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요즘인데 하염없이 뚝뚝 끊기는 행간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도를 파악하기엔 나의 문학적인 소양이 너무 초라하기만 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이 손에 안 잡힌다는 핑계로 그동안 너무 쉬운 책들만 읽었나 하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소소에서만 알 수 있는 이들의 관계가 내내 머릿속을 아프게 헤집는다. 부유물처럼 들러붙어 쉽게 떨쳐지지도 않는다. 숙제 같은 마음으로 읽었지만 무언가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도 든다. 소소한 풍경에 나도 한발자국 깊숙이 들여놓은 기분. 이들의 비밀스러운 사랑 한 자락을 몰래 읽다 들킨 기분. 이 깊은 여운이 아마 오래 머무를 것 같다.

 

p.51
나는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지우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워지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누구에게는 가시처럼 박히는 것이 죽음이다. 선인장의 어떤 가시는 몸뚱어리에 박혀 몸 자체로 둔갑한다. 어떤 사람에겐, 어떤 기억들이 바로 그렇다.

아픈 기억은 최종적으로 가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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