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627/pimg_7883271081028480.jpg)
작가의 전작이었던 ‘은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광고 문구에 얇은 귀가 솔깃했다. 작가 스스로가 미쳐서 썼다던 적요의 뜨거운 사랑을 이야기했던 은교‘. 강렬했던 여운이 몇 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 재탕도 하는 내가 이런 광고문구에 혹하는 건 당연한 얘기.
‘소소한 풍경’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야기하는 건 맞다. 광고에 빗대어 보면 이건 분명 사랑 이야기여야 하는데 내가 생각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광고를 잘못 본걸까, 아니면 광고가 잘못된 것일까. 각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또 한명의 여자.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헤집으며 이상한 관계를 쌓아가는 소소에서의 작은 풍경.
이들의 상처는 모두 가족에 관한 것이다. 남편으로, 아버지와 형으로, 새아버지로 흘러가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곁에 비어있는 자리의 허전함을 느낀 이들이 상처를 외면하고자 작은 도시 소소로 떠나오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위안이 되는, 일상처럼 그냥 지나쳐도 모를 아주 작고 작은 소소한 이야기. 뚜껑을 열어보면 마냥 소소한 이야기가 아닌 거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깊은 상처를 지닌 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책을 전부 읽고 나서의 느낌은 ‘모르겠다’였다. 작은 판형에 두껍지도 않은 책을 지진부진 일주일을 붙잡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요즘인데 하염없이 뚝뚝 끊기는 행간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도를 파악하기엔 나의 문학적인 소양이 너무 초라하기만 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이 손에 안 잡힌다는 핑계로 그동안 너무 쉬운 책들만 읽었나 하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소소에서만 알 수 있는 이들의 관계가 내내 머릿속을 아프게 헤집는다. 부유물처럼 들러붙어 쉽게 떨쳐지지도 않는다. 숙제 같은 마음으로 읽었지만 무언가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도 든다. 소소한 풍경에 나도 한발자국 깊숙이 들여놓은 기분. 이들의 비밀스러운 사랑 한 자락을 몰래 읽다 들킨 기분. 이 깊은 여운이 아마 오래 머무를 것 같다.
p.51 나는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지우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워지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누구에게는 가시처럼 박히는 것이 죽음이다. 선인장의 어떤 가시는 몸뚱어리에 박혀 몸 자체로 둔갑한다. 어떤 사람에겐, 어떤 기억들이 바로 그렇다.
아픈 기억은 최종적으로 가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