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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덮고 여는 데 조금만 더 단호했더라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뻔했다. 수키 김의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데 탁월했다. 하지만 짙은 담배연기에 갇힐 것만 같은 폐쇄증을 고민하게 했다. 들어갈까 말까, 한쪽 발을 끼워놓고 문틈을 기웃거리는 못난 짓. (언제부턴가 이런 버릇이 생겼다. 깊은 독 안에 빠질 성싶어 미리 겁을 낸다. 아픔은 더욱 아프게, 외로움은 더욱 외롭게, 갈증은 더욱 목마르게 되지 않을까, 나는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가 별안간 내게 떨어져 물수제비를 수없이 뜨는 상황.)
다행히 한번 덮어놓은 책을 미워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심정으로 열었다. 수키 김의 소설은 영악하게도 그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 오래 전 의문의 죽음을 무덤에서 꺼내어 불운한 통역사 수지에게 던졌다. 그녀는 오년 전 운명을 달리한 부모의 죽음을 쫓아다니게 되고, 나는 수지의 뒤를 따라다닌다. 수지가 비를 흠뻑 맞을 때는 덩달아 가슴에 물기 뚝뚝 떨어지고, 그녀가 어둔 골목을 돌아갈 때는 더듬더듬 눈앞의 어둠을 두드린다. 책을 덮을 때만 해도 나는 누가 묻지도 않는 그 이유를 스스로 댔다. 견고한 국가 미국에서 1.5세대 한국인들이 스러져가는 아픔은 느끼고 싶지 않다, 자기를 일으켜내지 못해 차라리 쓰러뜨린 외로움은 읽고 싶지 않다, 고 제법 냉정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곧 나는 소설을 더는 덮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의문의 베일을 한 겹씩 들춰내면서 오히려 퍼즐이 흐트러졌다. 조각들은 물론 소설을 따라가면 모두 주워낼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있는 자리를 봐야 한다. 그 자리가 얼마나 움푹 패였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던 한국인들이 몰락한 모습으로 그 파인 자리에서 속속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수키 김의 문장에 사로잡힌 나는 그녀의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 들어가 있다.
조금 전에 영악하게도, 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오히려 어수룩하다. 수지에게 깊이 빠지게 하는 방식으로 조금 뭉툭한(섬세하지 못한) 면면이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수지는 의문 속으로 묵묵히 걸어들어간다. 그 골목골목에서 의문의 조각들은 수지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안간힘을 쓴 결과가 아니라 우연히 부딪혀 주워들어 전체의 그림을 맞추어낸다. 또 소설의 이야기 방식은 굳이 말하자면, 거듭 리플레이를 누른다. 현실에서 하나의 실마리에 부딪히면서 과거로 되돌아가고, 또다시 돌아나오기를 되풀이한다. 하지만 역시 어수룩하다, 는 표현도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마음을 잡아채고 빠뜨렸다가 오한이 들 즈음 건져내줘야 할 지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수지 킴의 소설은 알다가도 모를 흡인력을 가졌다, 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영악함과 어수룩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소설의 주인공 수지의 직업은 통역사다. 하나의 말과 또 다른 말이 만나는 곳에 그녀가 있다. 말은 저마다 힘을 쥐고 있지만 똑같은 부피와 질량의 힘은 아니다. 그녀는 저울 위에서 확연하게 무게를 달리한 말과 말 사이에 서 있다. 그녀가 이민 1.5세대라는 사실은 기이한 우연이다. 수지는 뿌리 운운해야 하는 한국인인가, 작가의 마지막 맺음말처럼 곱디고운 미국의 딸인가.
통역사는 한숨과 흔들림까지 읽어낼 수 있다. 주인공 수지는 지친 몸으로 구석에 몰린 사람의 한국어를 거대한 몸피를 가진 국가의 영어로 옮겼다. 그리고 작가 수키 김은 너른 땅에서 외로이 쓰러지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소설에 옮겼다. 소설에서는 몰락해가는 이민자들을 속으로 이미 죽은 사람,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의 속에는 그들의 숨결과 떨림이 오롯이 살아있다. 낯선 곳에서 숨죽인 채 출렁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