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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ㅣ 미래그림책 30
피터 스피어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노아의 방주"라는 말은 노아가 누군지, 방주가 뭔지...따로따로 떼어서는 익숙하지 않건만 저렇게 붙여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말일겝니다.
방주를 뜻하는 영어단어인 ark는 라틴어의 상자에서 유래한 말로 피난처 혹은 안전한 장소라는 뜻도 가지고 있네요.
성경적 지식이 없어도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재미나게 들려줄 수 있는 오래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이겠지만 약간의 배경을 더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훨씬 재미나게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도 창조하셨지요.
그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라는 열매를 따먹음으로 해서 사람은 하나님이 살게 하신 땅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아주 나쁜 짓을 많이 하게 되었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처음에 만든 사람인 아담의 열번째 후손인데 당시의 사람들과 달리 유일하게 - 이게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요.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왜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니까요.
"다 나쁘고 다 못됐는데 딱 한사람, 노아만 유일하게 착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선택해서 방주를 만들게 한 것이단다"라고 말해줄 수 있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이 꼭 성경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옛날이야기의 특징이 보여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옛이야기의 특징 중의 하나가 주인공의 절대적 선, 절대적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예요.
하여간 그림책의 겉장을 딱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바로 "....그러나 노아만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단다." 입니다.
글자를 알게 되면서부터 가지게 된 한계가 무엇이냐 하면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철가루가 자석에 이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절로 시선이 글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박히네요.
그림책 왼쪽으로는 전쟁을 하고 돌아가는 중인지 병사들이 줄을 지어 행진해오고 있고 저멀리 보이는 성에는 불길이 거세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행진하는 그 길 옆으로는 짐승들의 시체가 널부러진 횡횡한 들판이 펼쳐져 있구요.
반면 오른쪽 그림에는 포도를 따고 있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지면서 "...."이라는 말줄임표 안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게 되었는데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듬으로써 사람들의 비웃음을 삽니다. 방주를 가득 채울 양식이며 여러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하고 있잖아요.
방주가 다 완성된 이후에는 땅에 거주하는 모든 동물들을 암수 각기 한쌍씩 방주에 들이게 되는데 모태신앙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들어오고 익숙한 이 이야기에서 미처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이 그림책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답니다. 선택받은 자와 선택되지 못한 자의 차이 말입니다.
암수 한쌍만 방주에 들이고 나머지는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노아의 손길을 보면서 왜그리 마음이 무거워지던지요... 저 많은 생명들이 아무 이유없이 그냥 죽어갈 수 밖에 없었구나..싶으니 참 서글프더군요.
죄를 짓고 악한 존재는 사람인데...사람이 땅의 주인이었기에 그들을 벌하고 그들을 없애기 위해 더불어 같이 쓸려버린 저 생명들에 대해 참으로 가슴이 아팠답니다.
드디어 비가 내리고 산꼭대기에 위치한 방주가 드디어 두둥실 물위에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이 그저 비가 그치고 새세상을 향해 방주에서 내리기만을 속절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그 시간 동안...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싸고 번식하는 일차적 생물학적인 욕구의 충족 뿐이네요. 노아가 방주에 탄 때는 이월 십칠일이고 방주에서 내린 날은 다음해 이월 이십칠일이라고 되어있으니 자그만치 일년이 넘게 배에 갇혀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그 기간동안 줄기차게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 비는 40일 동안 내렸지만 땅이 마르고 방주에서 내릴 수 있는 기간까지가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랍니다.
마음놓고 그렇게 번식이라도 할 수 있었던 동물들은 차라리 속이 편했을 겁니다. 하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먹이고 치우고...또 치우고....또 치우면서도 나날이 늘어가는 동물 식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고된 시간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다른 생명들에 대한 의무감에서라도 말이죠.
놀랍도록 섬세하고 재미난 그림들은 여기저기 숨은 그림찾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말을 걸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아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나 드디어 비둘기가 들고온 종려나무 가지를 춤이라도 추듯이 기뻐하며 들고 옵니다. 동물들도 일제히 입을 벌리고 와~~!!하고 기뻐하지요. 그런데 그 가지를 보고 기린도 침을 흘리고 염소며 토끼도 탐을 내는데 소에게 가져다 준 노아를 보면서 "소는 그동안 우유를 주었잖아"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오히려 글자가 있었더라면 이토록 자세하게 그림을 들여다보지 못하게끔 말이죠. 줄지어 방주에서 내리는 동물들을 보면서 이토록 많이 늘었는가 웃음이 나오면서 오히려 텅빈 방주를 보고 그 거대함에 새삼 놀라게 되는 거 같아요.
방주에서 내린 노아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무지개를 보여주면서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저멀리 산꼭대기에 방주가 걸린 채 노아는 다시 포도나무를 심고 열심히 땅을 가꿉니다.
이때 노아의 가족은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들로 모두 8명인데 이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이 오늘날 백인족, 황인족, 흑인족의 세 조상이 된다는 것이 지금 노아가 심고 있는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주 때문이라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마지막 문장인 "...... 그리고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었단다."를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식물 중에 하나가 포도나무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단순하게 "노아는 열심히 일했단다....아니면 나무를 심었단다. " 해도 될 것을 굳이 포도나무라고 한 것이 저자인 피터 스피어가 성경에 대해 자세히 알면서도 나름대로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