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누구나 한 번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 백병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고전(古典)에 대해서 '누구나 한 번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책'이라고 했다. 마크 트웨인의 말은 한국적 상황에도 잘 적용된다. 전국민이 목을 매고 있는 입시에 고전문학이 나오기 때문에 교과목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제대로 가르치고 읽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조상들의 삶을 이해하네, 슬기를 계승하네 하면서 고전 읽기의 당위성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이런 당위성은 입시교육의 현실 속에서 쉽게 왜곡되어 버린다. 어쩌면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원래의 고전이 지닌 멋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텍스트를 만나기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진지한 고전 읽기를 권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유치하고, 재미없고, 다 아는 이야기?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국어시간에 가르쳐야 할 여러 단원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고전문학 관련 단원이다. 학력고사 시대처럼 고전문법이나 어휘, 작품과 관계된 잡다한 지식들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고전문학을 어려워하고 재미없어 한다. 고전문학에 사용된 어휘 자체가 어렵고 낯설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고전문학을 재미없어 하는 더 중요한 원인은 고전문학에 대한 아이들의 편견인 것 같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춘향전」「홍길동전」「토끼전」「박씨부인전」등과 같은 우리나라 고전문학 작품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반응들을 보인다.

첫째는 다 아는 얘기라는 반응이다. 아이들은 「춘향전」「홍길동전」을 동화책이나 만화책으로 어렸을 때 읽었거나 텔레비전에서 보았기 때문에 다 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읽거나 본 고전작품들은 원래의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제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원전이 가지고 있는 줄거리의 큰 틀만을 유지한 채, 재미를 위해 여러가지 다른 사건들을 상상해서 집어 넣거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을 섞어서 윤색한 것들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콩쥐 팥쥐 이야기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헷갈려 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이유로 그 작품들을 제대로 다시 읽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왜 또 읽느냐고 말한다.    

둘째는 고전소설 같은 것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런 아이들은 고전소설은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고전소설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이나 당시 민중들의 바람, 문체에서 느낄 수 있는 민족 고유의 언어적 리듬감 등은 보지 못한다. 어렸을 때 보았던 기형적 고전소설에서 특히 과장되어 나오는 도술과 같은 비현실적 요소나 권선징악의 전형적 결말구조,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영웅적 주인공만이 고전소설의 전부라고 믿는다. 이런 아이들은 홍길동을 도술의 귀재로 볼 뿐이고, 춘향이를 '열녀불경이부'의 상징으로만 보기 때문에 홍길동과 춘향이를 통해 신분해방, 인간해방을 꿈꾸었던 당시 민중들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셋째는 고리타분하다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은 대체로 어렸을 때의 독서경험이 부족하여 책읽기 자체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다. 감각적이고 흥미 위주로 구성된 환타지 소설이나 만화책도 버거운 아이들에게 고전문학 작품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어렸을 때의 독서경험도 풍부하고, 다른 책은 곧잘 읽어내면서도 유독 고전소설만은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 중에는 어렸을 때 우연히 너무나도 원전에 충실한 고전문학 작품을 접한 뒤 기를 쓰고 읽어 보려 애썼던 경험을 가진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들은 고전문학 하면 빽빽한 글씨, 뜻을 알 수 없는 어휘들, 책 아래에 빽빽히 적혀 있는 각주들을 먼저 떠 올린다. 고전문학은 전문가들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과 고전문학 수업을 진행해 나가기는 너무 힘들다. 편견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작품의 극히 일부분만 나와 있는 교과서를 가지고 고전문학이 가진 사회적 주제나 문체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텍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고전문학 수업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을 만큼 쉬우면서도 원전의 문체나 주제의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제대로 된 고전소설 풀이본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을 '고전답게' 풀어 쓴 최초의 책


창비에서 나오고 있는 '재미있다! 우리 고전' 씨리즈(이하 '씨리즈')는 기획의도나 집필과정, 전체적인 구성에서 나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씨리즈'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고전문학 씨리즈 중에서 고전을 '고전답게' 풀어 쓴 최초의 책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고전문학 씨리즈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쉽고, 흥미롭게 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들이다. 대개 초등학교 저학년을 중심 독자로 상정하고 기획된 이런 책들은 큰 틀의 줄거리만 원전과 같을 뿐 어휘나 주제, 문체 등에서는 전혀 고전답지 않은 고전이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줄거리는 기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고전문학 작품의 맛과 멋을 느낄 수는 없다. 두번째 부류는 원전에 충실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책들은 대개 수많은 이본(異本)들 중에서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이본 하나를 선정해서 최대한 원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들이다. 이런 책들은 연구용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어린 아이들에게 고전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럽다. 더군다나 선정된 텍스트가 당시 민중들의 소망을 왜곡하고 있거나 대다수의 이본들과 많이 다른 것일 경우에는 애써 읽은 보람을 헛되게 만들 수도 있다.  

원전의 어휘와 가락을 최대한 살려

'씨리즈'는 이 두 부류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적절히 결합한 절충형 텍스트이다. '씨리즈'는 기본적으로 원래의 고전문학이 가지고 있는 큰 틀의 줄거리와 주제의식, 문학작품의 어휘와 가락에서 느낄 수 있는 멋과 맛을 살리면서도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런 편집자의 의도는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시인이나 소설가를 필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들 필진은 대개 몇십종 이상이 되는 이본들과 판소리 대본까지를 일일이 검토하여 문학적 구성이 튼튼하고,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가치가 있는 2,3가지 정도의 이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은 다음, 여러 이본들에 나오는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원전의 어휘와 가락을 최대한 살려 풀어 쓰고 있다.

또한 책 뒤에 덧붙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읽는 작품 해설'은 이본 선정과 집필과정을 포함해 선정된 고전작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있으며, 정감 있는 색채로 그려진 삽화는 보는 순간 저절로 웃음을 지을 만큼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많아서 작품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개성적 인물들, 역동적 시대상황


작품들은 균형있게 선정되었으며, 선정된 작품을 풀어내는 관점도 훌륭하다. 지금까지 출간된 작품들 을 살펴보면『토끼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힘없는 백성의 목숨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권력층에 대한 풍자가 중심이고, 『심청전』은 심봉사와 뺑덕어멈 같은 개성적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판소리 「심청가」의 사설과 가락을 최대한 살려 쓰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홍길동전』은 사회적 혼란과 모순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꿈꾸었던 당시 민중들의 소망을 그려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소설을 통해서나마 극복하기 위해 창작되었던 『박씨부인전』은 임경업의 활약보다는 박씨부인의 활약을 중심으로 힌 판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음으로써 여성주의적 관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그 어떤 소설보다도 비극적인 사건을 담고 있는 『장화홍련전』은 그 비극의 원인을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서 찾고 있다. 또한 18세기 이후에 유행한 한문 단편을 번역해 놓은 『북경거지』와 『도깨비 손님』에서는 점점 돈이 힘을 얻어가는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 인생관 등을 통해서 현대의 물욕중심주의와 비뚤어진 교육열, 인간에 대한 그릇된 관점 등을 비판하도록 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씨리즈가 앞으로도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장점들을 계속 이어가고 또 발전시켜 가기 바라며, 우리 아이들은 이 씨리즈를 읽고 고전문학 작품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릴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창비 웹매거진/2004/3] http://www.changbi.com/webzine/content.asp?pID=329&pPageCnt=1&pWmuTitle=어린이책%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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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6-25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경거지와 도깨비 손님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박씨부인전과 장화홍련전은 이 텍스트로 다시 읽고 싶네요.

밀키웨이 2004-06-25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

starrysky 2004-06-2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창비에서 나온 책 많이 봤는데, 요새도 창비 어린이책은 좋은가요? 기회 되면 보고 싶어요.
전 우리나라 고전은 잘 모르겠고, 어렸을 때 축약본으로 읽은 서양고전을 한참 나이 든 후에 다시 많이 읽었는데, 새로운 재미를 준 게 있는가 하면 '으으, 차라리 축약본 읽고 말 것을..' 싶은 것들도 많더라구요. 어렸을 때처럼 즐기는 맘이 아니라 공부하는 맘으로 읽어서 그럴까요?

panda78 2004-06-25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특히 니벨룽겐의 반지.. 이건 정말 완역으로 읽기 힘들더라구요.. 나만 그런가? ^^;;

밀키웨이 2004-06-2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역본을 읽어보지 못해서 모르겠구만요 ㅎㅎㅎ
한번 읽어보고 힘든가 안 힘든가 말씀드리면 안될까요? ^^

조선인 2004-06-2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창비아동문고 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