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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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그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다. 


저자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보호자 사이에서 태어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를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라 한다. 책은 코다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 내용으로 시작한다. 


"학부모 모임이 열리면 나는 또 불려 갔다. 어색하게 앉아 수어를 음성언어로,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p. 18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불쌍한 보호자를 둔 가련한 학생" 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과 동정어린 말들 그런데 정작 저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은것 같다. 코다의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사회적 약자 또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청인 중심의 사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친구들은 와플과 풀빵을 파는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하며 수어를 배웠다. (중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을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자영업''특이사항 :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p. 19


사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를 "수어"라 한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언어는 우리가 쓰는 언어와 다를 뿐이지 의사 소통을 하는 언어이다. 코다의 삶을 이야기 하다 보면 이민자 2세대 아이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그들의 보호자도 그 나라 말을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자녀들은 그 나라 말을 알고 있고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서 보호자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대화가 필요할 때 통역을 하게 된다. 코다도 마찬가지 이다. 농인 보호자를 위해 청인 중심사회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 나간 것으로 보이다. 이런 내용과 함께 제1부는 저자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상과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더 커지면서 그것들과 조우한다. 처음에는 나의 고통, 내가 만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 왜 나만? 이라는 생각에서 눈길을 돌려 더 넓은 곳을 바라보고 알게된다. 그 첫번째가 농인사회를 이해 하는 것처럼 이와 비슷한 재일 조선인 동포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 나는 아무럿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p. 125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조선인사회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차별하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그 외부에 있었다. 그들의 시선들!!! 재일조선인의 생각이 아닌 외부 사람들의 생각들이 그들을 불쌍하게 또는 차별해야 하는 대상들 등으로 정의 한다.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생각이 넓어진다. 코다의 삶이 단지 농인 보호자의 자녀의 삶이 아니라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이민자 2세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몇해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점에 저자는 한 일간지에 "#나는 낙태했다" 글을 썼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임을 고발하는 것이며 여성이 한명의 사람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임을 고발하는 글이다. 우리 사회는 많이 발전했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멈춰 있는 사회이다. 여전히 고인물이 남아 있고 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의 시선이며 조직적이고 강한 카르텔을 가지고 있는 성차별의 문제이다. 


" 임신 중지를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어 시를 썼다. (중략) 수업이 끝나자 멘토가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는 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밥을 먹었다." p. 130-131


우리 사회에 차이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차이를 "차이"로 바라봐야지 "차별"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또한 차이를 "다름"으로 해석해야지 "틀림"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경험하는 지금 이 사회는 아직도 차별과 틀림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년 학교에서 인권동아리를 만들고 수업을 하며 "썩은 동아줄"이라는 단편 영화를 학생들과 함께 봤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하철 역사에 있는 장애인 리프트와 관련된 내용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계단 옆에 있는 하나의 풍경일 뿐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마치 쇼윈도우 안에 들어 있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고 또한 순간의 사고가 운명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장치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이를 두고 "썩은 동아줄"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한 공간이지만 또 다른이에게는 공포의 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p. 168



그레타툰베리의 말이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 시선을 바꾼 사람이다. 처음 그의 작은 행동은 우리의 행동의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지금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 마음대로 활용해 왔다. 너무 편하게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마치 원래 우리들 것인 양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 주변의 생명들을 쉽게 죽였다. 이제 우리가 책임 져야 한다. 지금까지 마구 써왔던 것에 대한 책임 그 책임을 지금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 너무 쉽게 청년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여기 우리는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은 다시 저자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로 불린다. 저자는 이 부분에 의문을 가진다. 카메라는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화면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그 카메라에게는 공적, 사적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소소한 이야기들은 그것이 거시적 사회 담론이던 두 사람간의 이야기 이던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왜? 사적 다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프레임이다. 누구의 것은 사적 다큐고 누구의 것은 사회적 다큐가 되는것 그 시선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넘어 서려고 한다.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인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p. 201-202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는 전문 서적과는 다르게 살짝 맛만 보여주는 책이지만 주제 만큼은 어렵고 무겁다. 그리고 그 무거운 주제이지만 글은 쉽게 잘 읽힌다. 



"학부모 모임이 열리면 나는 또 불려 갔다. 어색하게 앉아 수어를 음성언어로,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 P18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친구들은 와플과 풀빵을 파는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하며 수어를 배웠다. (중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을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자영업‘‘특이사항 :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 P19

[데프U]의 주인공 중 하나는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수어시를 발효하겠다며 무대에 선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좌중을 휘어잡는다. 입 모양만을 움직여 낭독하는 것이 아닌, 얼굴 표정과 몸동작이 합쳐진 방식으로 시를 표현한다. 수어가 고유하고 완전한 하나의 언어이며 문학이 되고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P31

" 나는 아무럿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 P125

" 임신 중지를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어 시를 썼다. (중략) 수업이 끝나자 멘토가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는 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밥을 먹었다." - P130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 P168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인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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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철학 : 유학편 - 공자에서 최한기까지 마음과 철학
신정근 외 지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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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그 의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런데 과제로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나서 "띵"하고 무언가 지나갔다. 동양철학을 공부 한적도 없고 유학에 관심이 없었는데 논어를 읽고 있는데 자꾸 익숙한 문장이 눈에 보이고 예전에 어른들이 했던 말들이  보이는 등 논어는 우리 일상생활에 많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양철학에서 마음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제로 제출 했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마음이론의 세가지 형태 

 ① 장재의 기(氣)이론  : 장재는 모든 사물을 만드는 재료는 기라고 하며 기는 태허(太虛)와 객형(客形)의 두가지 상태로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허가 모여 객형이 되고 객형이 흩어지면 태허로 돌아간다고 했다. 또한 마음 안에서 “이성”과 “감정•욕망”의 관계도 이와 같다. 감정•욕망은 객형처럼 생겨났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성은 태허처럼 ‘마음이 텅 빈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재의 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태허와 같은 ‘이성’과 객형과 같은 ‘감정•욕망’으로 분리 된다. 이렇기에 장재의 마음은 기(氣)가 그 근본이다.

 ② 정호의 리(理)이론 : 정호는 장재의 마음이론에서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이 어렵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마음 속에 도덕 규범의 근원을 상정하고 기의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바탕에 그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본체가 있는데 그 본체는 도덕률의 근원으로 경험되지 않고 원래 있는 것 다시말해 선험적인 것이다. 그러니 들어나는 것이 마음이다. 그에 따르면 본성이 곧 기이고, 기가 곧 본성이다. 이렇기 때문에 리(理)인 본성과 기(氣)인 마음은 같다. 리는 요청된 것이고 기는 원래 있던 것이다.

 ③ 정이의 리(理)와 기(氣)이론 : 정이 이전의 장재와 정호는 마음에 대해 일원론자로 정호는 기일원론 정호는 ‘리-기’의 일원체를 주장했다. 정이는 여기서 정호의 일원체를 리와 기로 분리한다. 정이는 태허인 마음은 텅빈 것이 아니라 리(理)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리인 본성은 기인 마음과 같다는 성즉기(性卽氣)라 했다. 그리고 이 리와 기를 분리 해서 설명을 하기위해 마음이 드러난 것을 ‘이발(已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미발(未發)’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었는데 의식의 흐름을 ‘정‘이라 하며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마음의 일정한 구조를 가진 것을 ’성‘(=본성)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미발은 본성이고 이발은 감성이다. 정이의 이론에 따르면 ’본성은 리이다.(性卽理)‘ 이 명제에 따라 성리학(性理學)이라는 말이 나왔다.


(2) 주희의 마음 이론은 핵심 명제는 (1) 마음은 본성과 감성을 통괄한다.(心統性情) (2) 본성은 리이다.(性卽理) 또한 주희는 이 둘을, 팽개치고 두들겨도 깨지지 않을 명제라고 했다. 

 ① 성즉리(性卽理) : 세상이 모든 사물은 본성이 있고 사물은 그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데 이 사물의 본성은 하늘의 명령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명=본성=천리‘이다. 성즉리의 의미는 바로 이것 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명령을 받은 본성은 모두 선해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에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의 문제를 가능태와 현실태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중 가능태는 성즉리이다. 그러니 그 마음 수양을 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게 된다.

 ② 심통성정(心統性情) : 마음의 가능태를 성즉리라고 하면 어떻게 마음을 바라 볼것인가에서 주희는 본성을 본연-기질로 감성은 사단-칠정으로 설명하며 다시 마음은 미발-이발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주희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본연지성은 기질지성 속에 들어있는 리라고 보았다. 본체인 리는 본성이고, 현상은 기이다. 그러기에 기 속에 리인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희는 ’마음은 본서과 감성을 통괄한다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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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신의 입자 속으로 - 무엇으로 세상은 이루어져 있는가
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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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리학을 배우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물리는 인간이 가진 지적 유희의 최고 이다."라는 생각이다. 

힉스 입자를 찾아가는 전제계 물리학자의 숨가뿐 여정을 한권의 책에 담아 놓은 이 책은 손에 든 순간 부터 소설 책을 읽어가듯이 다음이 궁굼해져 놓지 못하고 끝까지 봤다. 


물론 수식이 없는 것은 아니고 양자역학이라던가 물리학계에서만 쓰는 전문 용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소설 처럼 잘 쓰여진 책이여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2001년 대학원을 다닐 때 한창 힉스 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떄가 생각난다. 내 전공은 입자 물리보다 에너지 레벨이 낮았기 때문에 힉스입자와 관련된 방정식을 풀어 본적은 없지만 자발적대칭붕괴 관련 방정식을 우연히 본적이 있었고 그 그래프(맥시코 전통 모자 또는 와인병 바닥이 볼록 튀오 나온 것 같은 모양)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를 가르쳐 주던 박사님은 현재 물리교육과 정교수로 임용되어 현재 대구에 계신다. 그분께 참 많은 것을 배웠던것 같다. 길지않은 대학원 시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나를 가르쳐준 박사님 덕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대학원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대학원은 물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현장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주 살짝 본 것이지만 그때 배운 것으로 지금도 즐겁고 행복하게 물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책 속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재미 한국인 물리학자 한무영에 대한 내용인데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한무영교수는 일본인 물리학자인 요이치 난부와 함께 쿼크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한권의 책이지만 책을 읽는 순간 물리학과 3층에 있던 핵물리 이론 연구실에서 오래된 논문을 찾아 보고 도서관 깊은 곳에 있던 물리책을 찾아서 읽었던 그 시간으로 돌려 보내줬다. Dirac의 논문, Feynman의 논문 등을 찾았을 때 그 순간의 기뻐했던 기분을 오랜만에 느켰다.



요이치 난부는 "위커크는 두 종류, 아래쿼크와 야릇한쿼크는 세종류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안했고, 뉴욕주 시러큐스대학교의 젊은 대학원생이었던 한국 출신 물리학자 한무영과 함께 논문을 작성하여 1965년 말에 발표했다. - P124

CERN에서 발견된 새로운 입자는 쿼크의 질량이 힉스장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쿼크는 원래 질량 없이 태어났다가, 이 상호작용을 통해 질량을 가진 입자로 거듭났다. 힉스장 속에서 움직이는 쿼크는 물속을 헤쳐나가는 물고기나 군중 속을 헤쳐나가는 유명인사처럼 운동에 방해를 받게 되는데, 바로 이 ‘가속에 대한 저항‘이 질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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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 AI 시대, 다시 인간의 길을 여는 키워드 8
신상규 외 지음 / 아카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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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개봉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영화 『그녀』(Her)는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사만다(Samantha)와 남자 주인공 시어도어 톰블리(Theodore Twombly)의 관계를 통해 포스트휴먼 시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타자의 등장이 인간관계를 어떤 양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상상해 만든 영화 이다. 영화 『그녀』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보조하고 교감하며, 나아가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동반자적 존재로 설정된다. 이제 우리는 인간과 인간아닌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흔히 우리는 반려 동물 또는 반려 식물이라고 부르는 대상이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들이 무언가에 반응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관점이 있다. 과거 우리는 인간이외의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칸트는 모든 생명 그 자체에 관해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지위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동물은 생각하는 영혼이 없기에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동물도 우리가 키우는 것이지만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반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 언제라도 그들의 생을 마감 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그런 관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칸트를 거쳐 근대 이후,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도 동등한 지위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리건(T. Regan)은 동물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렇게 사고가 확장되면서 반려동물과 인간은 교감을 나누며 생활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과 인간아닌것에 대한 생각의 확장은 점점 더 넓어지며 지금 포스트 휴먼 시대를 넘어가면서 인간과 사이버공간의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 한 것이다. 

 인공지능을 생각해 보자 최근 우리 시대는 인간과 흡사한 기술을 가진 인공지능을 많이 본다. 그런데 그런데 인공지능은 과연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을까?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인간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낼 수행 능력과 그 수행 과정을 자각하고 경험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 지능적 행위와 지능적 경험은 연결될 필요가 없다. 그저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것의 조합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이진수 숫자의 조합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이 인간처럼 대화하는 것은 이전에 익혀 두었던 코딩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과 대화를 하며 인간처럼 상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현재 우리는 많은 영화에서 마치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대화를 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바로 영화 아이언멘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이다. 영화에서 자비스는 주인공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일을 한다. 마치 사람처럼 말이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은 두가지 생각이 분리가 된다. 자비스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진수로 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해서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눈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그 결과물로 인간과 대화를 하고 이는 자비스에게 어느 순간 인간과 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제 우리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사이버 캐릭터를 보는 시대이다. 대표적으로 패현 인플루언서 ‘릴 미케라’와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 ‘로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이 화려한 영상 속에서 움직일 때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사이버 공간속에만 존재한다. 이들을 우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분리해야 할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인공지능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어느 정도 현실화 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반려동물과 사이버 공간의 인공 지능을 같은 급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물과 인간은 모두 신경계 전달로 생각을 하고 활동을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학습이 가능하고 다음 행동을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할 수 있다. 만약 인공 지능이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 학습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과 인간 아닌 것에 대한 구분 특히 인공 지능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포스트 휴먼의 시대에서 우리가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은 생각하고 학습하고 그 과정을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만든다면 인공 지능은 그 존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국 새로운 시대는 인간과 인간 아닌것에 대한 구분이 더더욱 희미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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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음의 과학 - 세계적 사상가 4인의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김명주 옮김, 장대익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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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무신론자들이 모여서 서로의 대화를 하는 내용을 묶어 놓은 책이다. 


대화록은 그렇게 재미 있지 않았다. 

역시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것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4명의 대화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리처드도킨스가 가장 종교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내가 가진 무신론은 그냥 말장난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마음이 따라간다.


신을 믿든 신을 믿지 않던 그것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그의 자세라고 본다. 

삶을 살아갈 때 그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면 신이 있건 없건 그 삶은 소중하다. 

그런데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무언가에 쓰임을 위해서 또는 내가 살아가는 것인데 나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 삶은 아무것도 없는 투명한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4명의 무신론자들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던것이 아닐까 한다. 


책 제목은 신 없음의 과학이라고 붙이기에는 과학이 책속에는 거의 없다. 그냥 무신론자가 보는 유신론자들에 대한 비판? 이정도의 대화록으로 봐야 할것 으로 보인다. 


그래도 최근에 요리조리 모아놓은 책들과 함꼐 신이 존재 하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더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신을 믿는 것이 그들의 자유인것 처럼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의 자유이니까.


"뇌는 어떻게 주관적 의식을 만들까?""물리법칙은 어디서 오는가?""기본적인 물리상수는 어떻게 정해지고, 왜 그 상수가 우리를 탄생하도록 미세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까?""그리고 왜 아무것도 없는 대신 무언가가 존재할까?" 과학이 (아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과학의 겸손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이것이 종교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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