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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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쉬울 수 있지만 그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다. 


저자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보호자 사이에서 태어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를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라 한다. 책은 코다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 내용으로 시작한다. 


"학부모 모임이 열리면 나는 또 불려 갔다. 어색하게 앉아 수어를 음성언어로,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p. 18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불쌍한 보호자를 둔 가련한 학생" 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과 동정어린 말들 그런데 정작 저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은것 같다. 코다의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사회적 약자 또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청인 중심의 사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친구들은 와플과 풀빵을 파는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하며 수어를 배웠다. (중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을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자영업''특이사항 :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p. 19


사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를 "수어"라 한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언어는 우리가 쓰는 언어와 다를 뿐이지 의사 소통을 하는 언어이다. 코다의 삶을 이야기 하다 보면 이민자 2세대 아이들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그들의 보호자도 그 나라 말을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자녀들은 그 나라 말을 알고 있고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서 보호자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대화가 필요할 때 통역을 하게 된다. 코다도 마찬가지 이다. 농인 보호자를 위해 청인 중심사회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 나간 것으로 보이다. 이런 내용과 함께 제1부는 저자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상과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더 커지면서 그것들과 조우한다. 처음에는 나의 고통, 내가 만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 왜 나만? 이라는 생각에서 눈길을 돌려 더 넓은 곳을 바라보고 알게된다. 그 첫번째가 농인사회를 이해 하는 것처럼 이와 비슷한 재일 조선인 동포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 나는 아무럿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p. 125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조선인사회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차별하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그 외부에 있었다. 그들의 시선들!!! 재일조선인의 생각이 아닌 외부 사람들의 생각들이 그들을 불쌍하게 또는 차별해야 하는 대상들 등으로 정의 한다.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생각이 넓어진다. 코다의 삶이 단지 농인 보호자의 자녀의 삶이 아니라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이민자 2세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몇해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점에 저자는 한 일간지에 "#나는 낙태했다" 글을 썼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임을 고발하는 것이며 여성이 한명의 사람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임을 고발하는 글이다. 우리 사회는 많이 발전했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멈춰 있는 사회이다. 여전히 고인물이 남아 있고 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의 시선이며 조직적이고 강한 카르텔을 가지고 있는 성차별의 문제이다. 


" 임신 중지를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어 시를 썼다. (중략) 수업이 끝나자 멘토가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는 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밥을 먹었다." p. 130-131


우리 사회에 차이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차이를 "차이"로 바라봐야지 "차별"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또한 차이를 "다름"으로 해석해야지 "틀림"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경험하는 지금 이 사회는 아직도 차별과 틀림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년 학교에서 인권동아리를 만들고 수업을 하며 "썩은 동아줄"이라는 단편 영화를 학생들과 함께 봤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하철 역사에 있는 장애인 리프트와 관련된 내용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계단 옆에 있는 하나의 풍경일 뿐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마치 쇼윈도우 안에 들어 있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고 또한 순간의 사고가 운명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장치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이를 두고 "썩은 동아줄"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한 공간이지만 또 다른이에게는 공포의 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p. 168



그레타툰베리의 말이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 시선을 바꾼 사람이다. 처음 그의 작은 행동은 우리의 행동의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지금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 마음대로 활용해 왔다. 너무 편하게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마치 원래 우리들 것인 양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 주변의 생명들을 쉽게 죽였다. 이제 우리가 책임 져야 한다. 지금까지 마구 써왔던 것에 대한 책임 그 책임을 지금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 너무 쉽게 청년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여기 우리는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은 다시 저자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로 불린다. 저자는 이 부분에 의문을 가진다. 카메라는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화면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그 카메라에게는 공적, 사적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소소한 이야기들은 그것이 거시적 사회 담론이던 두 사람간의 이야기 이던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왜? 사적 다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프레임이다. 누구의 것은 사적 다큐고 누구의 것은 사회적 다큐가 되는것 그 시선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넘어 서려고 한다.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인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p. 201-202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는 전문 서적과는 다르게 살짝 맛만 보여주는 책이지만 주제 만큼은 어렵고 무겁다. 그리고 그 무거운 주제이지만 글은 쉽게 잘 읽힌다. 



"학부모 모임이 열리면 나는 또 불려 갔다. 어색하게 앉아 수어를 음성언어로, 음성언어를 수어로 옮겼다." - P18

"그들 사이에서 우리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라네 부모님‘이었다. 친구들은 와플과 풀빵을 파는 엄마와 아빠에게 인사하며 수어를 배웠다. (중략)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모님의 얼굴을 사라졌다. 눈썹과 얼굴 근육을 움직여 말하는 ‘보라네 부모님‘이 아니라 가정 설문지 내의 ‘고졸‘‘자영업‘‘특이사항 :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 P19

[데프U]의 주인공 중 하나는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수어시를 발효하겠다며 무대에 선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좌중을 휘어잡는다. 입 모양만을 움직여 낭독하는 것이 아닌, 얼굴 표정과 몸동작이 합쳐진 방식으로 시를 표현한다. 수어가 고유하고 완전한 하나의 언어이며 문학이 되고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P31

" 나는 아무럿도 몰랐어. 부락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바깥으로부터 온다." - P125

" 임신 중지를 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어 시를 썼다. (중략) 수업이 끝나자 멘토가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는 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밥을 먹었다." - P130

"당신들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구하러 옵니다. 염치도 없나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 P168

"이제는 안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적인 분류로 나의 영화의 가치를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사적 영화가 관습과 체제라는 어렵고 복잡하고 감히 건들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념을 가장 거세게 흔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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