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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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아 읽게 된 <<닥치고 정치>>,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었다.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다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이 책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기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리고 어이없을정도로 메시지가 단순해서 - 진보는 어서 통합하라, 문재인이 부상한다 - 김어준의 정치평론이자 자기 주장이라는 딱지를 이마에 떠억 붙이고 있는 책이다. 시류를 잘 타지 않았으면 파급력은 별로였을 책이라는 느낌.

BBK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에 대해서는 이 이상 쉽게 설명하기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잘 설명해 놨다. 이 책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불편하게 여길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겠지만(왠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김어준이 책에서 다 한번씩 건드리고 간 느낌이다. ㅡㅡa) 스티브 잡스 전기를 능가하는 베스트셀러쯤 되면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선물받아놓고 막상 손이 가지는 않았는데, 먼저 읽어본 팀장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공감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내용을 생경해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 손에까지 <<닥치고 정치>>가 한 권씩 들어갔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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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설에 앙코르 와트에 가기 위해, 앙코르 와트에 대해 국내에 한국어로 소개된 몇 안 되는 책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다 읽었다고 해도 몇 권 안 되는데, 시엠립까지 양대 항공사가 직항을 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감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도올 김용옥은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상/하)>>에서 서규석이 쓴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에 대해, 남의 번역본을 옮기면서 전거를 밝히지 않은 불성실한 태도라며 비판한다. 서규석은 앙코르 와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 사신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의 번역을 이 책에 넣었는데(한국어로 <진랍풍토기>가 소개된 것은 최초), 도올이 보기에 이 번역은 진랍풍토기 원전의 완역이 아니라 일본 학자 와다의 오역이 그대로 들어 있는 중역이었던 것이다. <<앙코르와트/월남 가다>>는 학술서가 아니라 나 같은 여행자가 손에 들 법한 도올의 인도차이나 반도 문화 탐방기임에도 불구하고 도올은 "번역은 반드시 일차적으로 원문에 의거해야 한다. 원문의 의미체계를 맥락적으로 오늘의 한국인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번역이 2차 자료에 의거했을 경우에는 그 자료의 문제점에 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규석은 이러한 엄밀한 태도를 고수하지 않았다." 라며 다소 강한 비판을 한다. 이 비판은 인용을 일삼으며 전거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지식인 사회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비판에는 반만 동의할 수 있는데, 중역보다 원문을 바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바람직한 것은 맞지만 번역이란 자고로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굳이 번역은 또 하나의 원본이라는 점을 들이대지 않아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독자에게는 중역을 통해서라도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 중역을 거치지 않았다면 한국의 지식사회는 현재의 상태에 더 늦게 도달했거나, 혹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지 모르지만, 이러한 수입과정을 놓고 사후적으로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남는 것은 서규석이 자신이 전거로 삼은 문헌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없었다는 것인데, 도올이 와다의 <<진랍풍토기>> 번역에서 오역을 찾아낸 것은 그의 한문학적 지식 덕택이었다. 물론 이를 발견할 수 있을 만한 지식을 갖춘 이가 번역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러한 지식을 갖춘 이가 애초에 왜 중역을 시도하겠는가? 자신이 사용하고자 했던 자료(중역본)의 문제점에 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을 불성실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인 것 같다. 그리하여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서규석이 자신이 어떤 번역본을 사용했는지를 명백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독자가 자칫 이를 <<진랍풍토기>>의 완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불성실한 태도이며 저작권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일본어 역자인 와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슬쩍한 것이므로 비양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서규석의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를 구해서 책장을 넘겨 보니, 이 책의 만듦새나 저자의 면모나 수준으로 볼 때 나는 도올이 허수아비를 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앙코르 와트와 캄보디아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불모지인 한국에 그래도 책 한 권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만들어 놓은 종합 선물세트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학술적인 엄밀함을 기대할 만한 책이 아니며 편집이 잘 된 책도 아니다. 저자의 수준 운운하는 이유는 도입부 문단부터 "사회주의 국가에 힌두교 유적이 있는 것이 놀라웠다"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지적으로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제법 두꺼워 어느 정도 양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데, 신화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앙코르 와트 유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소개하고 있으며, 이런 저런 오류를 수정하여 꾸준히 개정판을 내고 있다. 서규석이 라마야나를 소개할 때 산스크리트어로 '라마야나'를 읽었을 리 만무하니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소개하면서도 누군가의 번역본에 의존하였을 텐데, 도올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도올의 서규석 비판은 자신이 연구하다 발견한 성과(기존 문헌 해석에 오점이 있다는 점)를 부각하기 위한 것인데, 마땅한 연구조차 없는 나라에서 여행자나 읽을 만한 안내서를 두고 지식문화 일반에 대한 개탄으로까지 나아갈 만한지는 의문이다. 마치 지금 내가 여행을 앞두고 몇 권의 책을 읽고 이런 점을 발견해 포스팅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듯이... 게다가 도올의 <<앙코르와트/월남 가다>>는 앙코르 와트와 월남에 대해 알게 되기보다는 도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도올의 '감탄기'가 아니던가.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뒤진 결과, 누군가가 나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읽은 것 중 단 한 권만 추천하라면, '여행가' 가 쓴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인용을 하고 있으며(참고 문헌을 밝혀 놓았다) 신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소개하고 있는 이지상의 여행기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를 추천한다. 요즘 많이 나오는, 유치한 감상과 신변 잡기로 점철된  '여행가 책'이 교본으로 삼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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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 / 플래닛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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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관계없어보이는 책을 연달아 읽다 보면 기이한 방식으로 생각의 연쇄가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잡히는 대로 읽는 것의 즐거움이기도 하고, 억지스럽고 무용한 일이기도 하다. 아마 후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Speak, Memory)>> 를 보고 있다. 영어가 조금이라도 편한 사람은 원서를 보기를 추천한다. 대조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나보코프가 자서전이라고 해서 문체를 소홀히 할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의 반은 이런 저런 가족사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와 풍경 묘사라 번역이 제법 고생스러웠겠다 싶다. 하지만 교정실수와 비문이 눈에 띈다. 가독성을 좋게 하는 방법이 읽으면서 떠오를 정도다. 하지만 나는 자서전적 사실을 우걱우걱 삼키고 싶은 마음에 번역본을 보고 있다.


그저 살았을 뿐인데 삶이 세계사적 스케일을 갖게 되는 이들이 있다(세계사, 가 내포하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나보코프는 1899년 출생해서 자서전에 따르면 '세기의 연도와 나이를 함께 먹었다.' (죄송, 정확한 발췌는 아니다) 전제 체제의 붕괴와 러시아 혁명의 발발,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나보코프의 삶은 이 격랑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구체제의 지적, 물적 유산을 물려받은 귀족 계급의 자제로서, 도래할 새 시대의 지분을 찾고자 했던 유럽의 교양인으로서, 그리고 다시는 고향을 밟지 못할 망명자로서... 역사는 20세기 초 그를 뻬쩨르부르그 근교 저택의 목가적인 분위기 안에 던져놓고, 교양과 예술이 그대로 생활이 되던 그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나보코프 가족은 크리미아 반도로 피신했다가, 프라하로, 베를린으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러시아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된다.



자서전을 통해 드러난 그의 가족사의 면면은 그 시대의 귀족이 으레 그러하였다고 말하기에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화려하다. 외가와 친가 모두 러시아의 정치, 외교, 군사, 학문, 예술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이름을 남기고 있다. 나보코프 가족의 시조는 타타르의 왕자였다고 하며, 15세기에 이미 조상이 모스크바에 있는 왕자의 영토 내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고조부는 표트르 1세 치하에서 노브고로드 주둔군의 수장이었으며, 증조부는 해군 지휘관으로 그의 이름을 딴 '나보코프의 강'이 생겨날 정도였다. 조부는 두 명의 차르 밑에서 8년동안 법무장관을 지냈다. 자서전을 따라 '조상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문화 예술계로까지 연결된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넋을 놓게 만드는 것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러시아 문학의 황금 시대에 나보코프 가족이 이 대표적인 작가들과 맺었던 관계이다. 그의 증조부의 형이었던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나보코프는 반 나폴레옹전의 영웅으로, 페트라솁스키 서클 사건으로 도스토옙스키를 감금(!)했던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의 사령관이었다. 그가 도스토옙스키에게 책을 허용했다고 나보코프는 적고 있다(도선생님, 그가 정말 선생님께 책을 허락했습니까?).


게다가 푸슈킨의 학교 친구로서 가까운 사이였던(그냥 학교 동창이 아니고 황제의 자녀나 교육시키던 그 짜르스코예 셀로의 리쩨이 동급생이다) 이반 푸슈친의 누이와 결혼했다. 삼촌은 입헌군주제/공화정을 위해 봉기했던 일련의 청년장교들인 데카브리스트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푸슈킨과 결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이 때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푸슈킨은 후일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사망하게 된다. 나보코프는 자서전에서 다행히 이 결투가 "운명은 교수대를 향해 가던 어느 반란의 영웅을 저지하며 러시아에게서 <<예브게니 오네긴>>을 빼앗아 갈까 고민하였으나, 그리하지는 않았다" 며 익살스럽게 적고 있다. 이모는 의사였는데 마찬가지로 의사였던 안톤 체호프(동명이인 아니고 그 안톤 체호프!) 와 무슨 일로 싸웠는지 체호프 서간집에 나보코프의 이모에게 보내는'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야비한 격발'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아무리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자신을 위해 가족사를 탐구해 나갔다고는 하지만 어딘가에서 "봐봐, 나 이정도 끕이야."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나보코프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옹호한 작가로 일컬어지며, 작품을 통해 도덕과 윤리, 사회와 정치를 말하는 것은 예술의 본령이 아니라고 보았다. 순간과 순간 사이, 눈의 깜박임과 깜박임의 사이에 '친친나트 C'가 존재했다는 것처럼(<<사형장으로의 초대>>), 생을 순간 속에서 명멸하는 것으로 보았고 예술은 그것의 본령이었다. 나보코프의 삶을 채운 것은 추억과 회상이었는데, 평생 집을 구입하여 정착하는 일 없이 오직 추억과 예술 그 자체에 대한 희구만을 가지고 살았다.


자서전에는 목가적인 유년 시절을 앗아간 것은 물론, 정치의 격랑 속에 아버지의 생명마저도 빼앗아간 혁명에 대한 나보코프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부분도 있다. 가령 유년 시절의 영어 교육을 회상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창문을 통해서는 머릿수건을 쓴 농부의 딸들이 정원의 길에 넙죽 엎드려 제초를 하거나 햇빛으로 얼룩진 모래를 부드럽게 긁어 고르는 모습이 내다 보였다(그들이 나라를 위해 거리를 청소하고 운하를 파낼 행복한 날들은 아직 저 너머에 있었다). 일면의 진실이기는 하지만 나보코프의 입으로 듣기에는 좀 씁쓸하다. 나보코프는 또 혁명으로 인해 현재가치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상속 재산을 잃게 된 것을 다루면서, 독자에게 이렇게 일러두기도 한다.


"소비에트 독재정권과 나 사이의 오랜 (1917년부터 시작된) 싸움은 어떠한 종류의 재산 문제와도 완전히 무관하다. 나는 자신의 돈과 땅을 '훔쳐갔기에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이민자들을 절대적으로 경멸한다. 오늘날 내가 간직하고 있는 향수란 잃어버린 은행권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비대해진 나의 감각이다." (p. 91, ch. 3, 내 삼촌의 초상 中)


어린 시절에 대한 감각... 그가 일생을 통해 그리워해야 했던 그 감각의 평화로운 세계가 무엇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나보코프의 유년 시절의 추억은 잃어버린 은행권에 대한 슬픔의 우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반문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층민이, 중인이, 혁명가가, 각자의 유년 시절을 회상과 추억의 대상으로 삼아 어떠한 예술을 하더라도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야 나보코프의 예술을 긍정하겠지만, 나보코프가 예술은 이러해야 한다, 라 말하는 순간 어딘가 뒷맛이 남는 것을 느낀다. 나보코프의 관점에서는 소설조차도 아닌, 정치 프로파간다나 종교 책자나 양산한 셈이 될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예술이 분리가능한 무엇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로 다룰 필요가 없었다. 혁명이 본 궤도에 오르자 '더 중요한 현실에 투신'하기 위해 한 때 작가로서의 삶을 버리고 철도 기관공이 되었던(그러면서도 도래할 미래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았던)플라토노프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첫머리로 돌아와서... 실은 <<말하라, 기억이여>> 와 함께 무엇을 읽었기에 졸지에 자서전을 읽다가 나보코프 찜찜하다는 이야기로 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던 것이었는데. 나보코프를 뒤지는 사이에, 회사 사장님이 추천해서 <<빠빠라기>>를 읽게 되었다. CEO가 이 책을 추천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아이러니지만... 몇년 전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얇은 책이다. 남태평양 티아베아섬의 추장 투이아비가 자기 형제들에게 유럽 문명의 탐욕을 깨우쳐주기 위해 한 연설을 독일인 선교사가 각색하여 받아적었는데, 그 내용이 통찰력이 있어서, 그냥 재미있네 껄껄 하고 넘기기에는 아까울 정도이다. '빠빠라기'는 원주민이 유럽 백인들을 부르는 말인데, 그의 눈에 비친 유럽인의 일상을 통해 문명과 야만이라는 편견의 허위가 폭로된다.


아무튼 내 눈을 사로잡은 부분은, 생뚱맞게도 연도이다. 나보코프가 태어난 1899년, 20세기가 시작되려고 하던 그 해, 투이아비 추장 - 그 섬에서는 지혜의 담지자 최고의 교양인인 - 은 1899년 만국박람회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개최되었던 인종전시회에 '전시'되기 위해 유럽에 보내졌다. 1899년, 나보코프의 기억 속에 담긴 유럽 문명 세계와 투이아비 추장의 눈에 비친 유럽 문명의 세계 간의 어마어마한 시차는 <<말하라, 기억이여>> 를 읽는 사이사이에 튀어나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혹시 투이아비 추장을 야만으로 간주한 것이 나보코프를 살찌운 목가적인 교양은 아니었는지. 수많은 피를 흘린 20세기 전반, 그 바탕에 깔린 억압과 빈곤, 사상의 출현 속에서 무슈 나보코프님을 괴롭히는 것은 망명자로서의 삶이 앗아간 어린 시절에 대한 감각인 것이다. ...누군가는 아마 이 때 생명을 잃었다.


...여기에서, 나보코프와 같은 해에 태어났던 한 작가를 떠올려 본다. 푸슈킨과의 일화를 간직한 조상이 있을 리 만무한, 보로네시 근교의 마부촌에서 철도 기계공의 장남으로 태어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가 그다. 플라토노프는 혁명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얻고 고향의 공과대학에서 기술자 학위를 받아 기술자로 근무하면서 글을 썼다. 그는 도래할 사회주의의, 결코 낙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미래를 상상했다. 서글픈 눈을 하고 불변의 진리를 희구했다. 나보코프가 사용했을 리 만무한 소비에트의 언어로... 나보코프가 플라토노프를 알았다면, 그의 작품들에 대해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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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
시미즈 마사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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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린책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열린책들 식으로는 도스또예프스끼)=열린책들의 이미지를 공고히 할 요량인지, 이번에는 2차 문헌 3종 세트를 내놓았다. 하나는 절판되어서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E.H.Carr의 «도스토예프스키»와, 마르크 슬로님의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 (원제는 Three Loves of Dostoevsky인데 이것을 구하려고 트위터에서 영국에 계시는 @ntrolls 님의 도움까지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멍하다…) 그리고 지금 말하려는 시미즈 마사시의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이 연구자이거나 역자이기에 앞서서 작가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드러내고 마는 것을 느낀다. (서울대출판부, 최선 역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역자 후기와 주석을 보라! 소녀적인 팬심이 흘러넘친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처음 접하고 스무 살에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책을 낼 정도로 평생을 도스토예프스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시미즈 마사시에게서도 그렇다. 가령, 사건을 시간 순으로 읽어내는 치밀한 독해와 수비학을 결합한 1장 <도스또예프스끼 숫자에 숨겨진 비밀>을 보면 저자는 28일이 죽음과 재생의 비밀 숫자라면서 톨스토이가 28일에 태어났으며, 안나 까레니나가 브론스끼와 만나기 직전 누군가 28호입니다! 라고 외쳤으며, 도스또예프스끼의 사망일도 28일이고, 벨린스끼도 28일에 죽었다는 설이 있고(실제로는 26일이 유력), «악령»에서 베르호벤스끼가 다리야와 결혼을 승낙한 날이 28일이고, 가출한 날이 28일이라는 점을 들다가 난데없이 “내가 스쩨빤의 가출 날짜와 함께 «악령»의 날짜(요일)을 모두 해독한 날이 바로 1990년 5월 28일이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사람의 머리로는 풀 수 없는 신비한 일치일까?” 라 하면서 말 그대로 신비의 세계로 영영 가버리고 만다. ㅡㅡ; 안그래도 미신적인 경향이 있었던 도선생이 실제로 그러한 숫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면 이는 더이상 수비학의 영역이 아니라 작품 해독에 꼭 필요한 요소로서, 수비학이 가진 미심쩍음에 관계없이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정도면 중증이 아닌가. 주인공 게르만이 노름을 하는 퓨슈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숫자 1과 3과 7은 매우 중요한데, 민음사판으로 세미나를 하던 중 하필이면 이 점이 드러나는 페이지가 137페이지였다거나 하는 것을 나는 우스갯소리로만 쓸 줄 알았지, 이걸로 책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 깊고도 두터운 오덕의연구자의 세계!


수비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소 과잉되다 느낄 1장을 빠져나오고 나면 이 책의 나머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전을 꼼꼼이 읽어본 (특히 사건의 연대기와 인물의 관계를 종이에 적어보면서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한 해석으로 가득차 있다. «노름꾼»에서 알렉세이가 뽈리나와 잤는지 안 잤는지에 집착해본 나로서는 시미즈 마사시의 극도의 꼬장꼬장함이 작품 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오오오! 그런 해석 방식도 있군! 하는 전율을 직접 만나는 기쁨을 알기에 여기에서 스포일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숨겨진 사건에 대한 단서를 텍스트에서 찾아내어 해석을 가하는 저자의 작업 방식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텍스트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두터운지를 느끼기에, 또 요즘 많이 회자되는 “돈에 쫓겨 문장을 다듬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집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미지(나는 돈을 위해 썼다는 석영중 식의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그저 그것은 동력의 하나였을 뿐)가 얼마나 부분적인 사실에 지나지 않는지 알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다양한 해석을 접하는 즐거움 외에 이 책으로 얻은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도선생을 사형장으로 인도하게 되었던 바로 그 사건, 청년 도스또예프스키가 사회주의자 그룹 뻬뜨라셰프스키 서클에 가담하여, 그곳에서 낭독했다는 ‘벨린스끼가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를 직접 본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봇(@dosto_kr)을 운영하면서 “님은 젊었을때는 사회주의자였다면서요? 왜 전향했나요?” 와 같은 질문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쉽게 도취되고 허영기가 있는 도선생의 성격과, “러시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한번쯤은 건드려봐야 했던 당대의 지식인 트렌드가 맞물린 결과로서, 그리고 막상 체포되자 자신의 사상을 부인했다는 몇 가지 전기적 일화를 바탕으로, 이를 젊은 작가가 한번쯤 휩쓸려볼 법한 사회주의 서클의 문제로 해석하고 그렇게 답했다. 그러나 꽤 긴 전문의 일부만 소개된 이 <편지>에서 나는 도선생의 전향은, 사회주의자에서 골수 정교도로 변모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작가 안에서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도선생에게 신앙은 불신과 회의의 깊은 강을 건너 도달한 곳이었으며, 이러한 강줄기 안에서 그의 사상적 편력도 해석되어야만 한다. 벨린스끼의 편지 내용 중 특히 이것을 보자.


“정교회는 체벌의 지지자, 전제의 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왜 그리스도를 관련시키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와 교회, 정교회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공통점을 찾은 것입니까? 그리스도는 최초로 사람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를 가르치셨고, 수난을 받음으로써 그 가르침이 진리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교회에서 조직되었고, 정교의 원리를 그 기초로 삼기 전까지만 인간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계급과 다름없이 불평등의 옹호자, 권력의 추종자, 박애의 적이자 박해자였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대로인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참 의미는 전 세기의 철학 운동으로 인해 분명해졌습니다. 유럽에서 비웃음을 무기로 삼아 광신과 무지의 불을 끈 볼테르 같은 사람이 오히려 당신의 모든 수도자, 주교, 부주교, 장로보다도 더 그리스도의 자녀에 가깝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살인 것입니다.” (p.94-95)


즉 농노제와 체벌로 신음하는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해법을 계몽주의에서 찾고, 교회의 무능을 질타하면서 “참된 그리스도”로 나아갔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사건 이후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짜르의 장난(카운트다운 전에 풀려난)으로 목숨을 건져 옴스끄 감옥에서 4년, 이후 시베리아에서 4년 도합 8년의 유형 생활을 한다. 이 때 그는 농노제와 체벌로 신음하는 “민중”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가 옴스끄 감옥 체험을 그린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듯 이 민중의 지긋지긋한 습속 가운데서 발견하는 신앙의 신비와 마주하면서 그의 기독교관은 다른 방향으로 무르익어가게 된다.


또 하나는 4장 <도스또예프스끼 언어에 숨은 비밀>은 요즘 노어를 배운답시고 더딘 걸음을 하고 있는 내게 격변화 암기의 고통을 반드시 이겨내야 할 이유 같은 것을 주었다. 도저히 원서를 볼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도선생의 텍스트를 제대로 해석해낼 수 없구나, 하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왔달까. «죄와 벌»에서 ‘죄’에 해당하는 러시아어가 ‘경계를 넘다’ 라는 의미라는 것은 2차 문헌을 몇가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대체 «악령»의 스쩨빤이 향하는 ‘스빠소프’라는 지명이 <구세주>,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길어낼 것이며,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표도르 노인이 조시마 장로의 암자를 비웃으며 ‘개구멍’이라 하되 지소형(작고 귀엽게 부르는 말)을 씀으로써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용인하는 뉘앙스를 준다는 것을 어떻게 길어낼 수 있을까? 노어를 배우기 전에는 요원하다. 십 년이 걸려도 노어를 배워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말겠다는 것이 무슨 인생에 괴팍한 마일스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데에야 무슨 말을 더 하랴.


시미즈 마사시가 이 책을 낸(정확히는 기 발표된 것을 엮어낸) 것은 2006년인데, 당시 이라크전쟁이 한창이었다는 점, 9/11의 충격이 진행중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일본 비평가가 도스토예프스키 읽기를 일종의 타락한 세계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저자는 다양한 일본어판 번역과 일본 내의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자들의 연구내용을 참조해 가며 해석을 전개하는데, 이 책과 관계없이 동시적으로 읽고 있는 사사키 아츠시의 «일본 현대 사상»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55년 체제 하 (최근에 민주당의 집권으로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격변이 없는 사회에서 일본의 지식인(문예지를 중심으로 한 사상가)들이 주로 천착하고 있는 것은 옴진리교 사건이나 연합적군 사건처럼 정치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묻게 되는 사건들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도 이 두 사건을 짤막하게나마 언급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가 현재성을 띠는 셈이다.


이런 비평서를 읽는 것은 반은 즐거움, 반은 괴로움이다. 하나는 비평가들과 도선생에 대한 애정을 공유해가며, 해석과 깊이를 쌓아 가는 즐거움이고, 하나는 날것의 텍스트, 오로지 나 하기에 달린 그 미지의 세계 앞에 편견을 쌓아 가는 괴로움이다. 그럼에도 이 책 말미의, 시미즈 마사시의 다음과 같은 말은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단편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소설이 쓰인 지 이제 백 년 정도 지났기에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가 텍스트 안에 숨어 있다.” …이제 백 년! 이 수수께끼는 아마도 나중에나 참가하게 될 내게도 공평하게 열린 영역으로,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아직도 보탤 연구가 남은 것만큼이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닌가. 지금도 도스토예프스키를 연구하고 있을, 62세의 시미즈 마사시와 많은 연구자들이 그렇듯이…


p.s.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꽤 팔려나가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일본 비평가의 도스토예프스키 비평서까지 소개될 줄은 몰랐던지라, 시미즈 마사시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이 번역되어 나온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곧 고바야시 히데오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생활»이나, 최근에 나온 야마시로 무츠미의 «도스토예프스키» (요즘 바흐친 전집이 하나둘씩 나오는 모양인데, 이와 얽혀서 소개됨직 하지 않을까?)같은 것도 출간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 책이 2판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2쇄나 갈 수 있을까? ^^;) 이 책의 만듦새는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몇 가지 오타/오기를 발견했다. 125p의 화제 소동->화재 소동, 248p의 사카구치 안코->사카구치 안고, 249p의 샤또프의 국민신신앙->국민신앙, 혹은 민중신앙(민중이 낫겠지.), 259p의 ‘러시아의 무지한 민중은 자신의 생활과 노동을 한다’는 비문이고, 274p의 니꼴라이게->니꼴라이에게로 고쳐지면 좋겠다. «악령»의 스쩨빤에 대해서 “그는 남자는 물론 여자와도 가능한 양성애자였다.” 라고 쓰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그는 여자는 물론 남자와도 가능한”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일본어 원문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류인지는 알 수 없다.


p.p.s.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자들이 자기 책에서 하는 신앙고백(?)을 보노라면, 유소년기/청년기에 최초로 접하고 빠져든 작품이 무엇인지가 이후 연구 성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지하생활자로 인해 매력을 느낀 사람, 죄와 벌로 느낀 사람, 까라마조프로 느낀 사람이 독서를 확장해가며 도달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은 닮아 있을지언정, 이 최초의 매력이 무엇이었는지를 가지고 연구자 간의 성격적 특성과 문제의식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김동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하면서 그가 왜 톨스토이를 작가로서 더 쳤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 같은 연구겠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영향을 받은 작가나 비평가는 무척 많으니 한번 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2차 문헌에 대한 2차 문헌을 만들어낼만한 무게를 가진 저자들을 한데 모아 분석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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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트위터에서 얼핏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다 마침 중고책으로 나온 게 있어 부담도 없겠다, <<퍼킹 베를린>>을 보게 되었다. '천 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이라는 부제와, 도저히 저임금의 아르바이트로는 학업과 생활을 병행할 수 없어 성매매를 하게 된 독일 대학생의 수기라는 책 설명을 보면 이것이 88만원 세대의 에세이 버전이요,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젊은이의 자립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현실은 학생의 천국이라 불리웠던 서유럽도 예외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설파한 책일 거라는 느낌이 온다. 읽고 있으려니 애인이 지나가다 표지를 보고 "그거 나온 다음에 <<88만원 세대>> 가 나온 거 아냐? 라고 한다. 역시나. (참고로 <88만원 세대>>와 닮은 것으로는 <<천 유로 세대>> 라는 다른 책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는 거대한 낚시인데, 애초에 독일에서 출간될 때부터 낚시를 의도한 책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출판사는 이런 저런 책 소개를 통해서 훌륭하게 <<88만원 세대>> 담론에 이걸 얹어 놓았다.


좀 솔직하게 살자... -_- 솔직히 말해도 살 사람은 다 산다. 내 생각에 독일 88만원 세대 이야기라고 하는 것보다 독일 성산업 종사자 실화라고 하는 편이 더 팔릴 것 같은데. 이 책의 부록도 독일 성산업의 실태에 관한 게 아닌가. 88만원 어쩌고 하는 것을 지우고 보면 성산업의 일면을 나타내는 실화로서는 그럭저럭 유용한 책이다.


주인공 소니아 로시가(가명이란다-실화가 가지는 미덕이 하나 더 사라졌다)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직업이 매춘부임을 밝히며, 지금은 '‘하르츠 IV’ 시대니까요"라 하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대로 마케팅의 의도와 그럭저럭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하르츠 IV : 실업수당을 삭감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재취업할 의욕'을 고취시키겠다는 독일 정부의 정책) 하지만 딱 거기까지.


소니아는 아버지가 작은 호텔을 경영하고(사업이 어려운 것으로 나와 있지만) 어머니가 도서관 사서 일을 하는 이태리 서민-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의 학비와 생활비를 부모로부터 완전히 조달받을만큼 넉넉한 가정환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활고를 겪으며 자란 처지는 아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 중 하나일 "의외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를 지탱해 주는 것은 소니아의 이러한 배경과 그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대학 공부이다. 편견을 고발하는 듯하지만 편견에 편승해서 이득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편견에 균열을 내기에는 비전형적인 인물을 부각함으로써 편견을 고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도를 달성하고 있다.)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 폐쇄적인 환경이 갑갑했던 그는 독일 유학을 결심하고는,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수학을 전공하기 전에 독일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1년간을 베를린에서 독일어 공부와 유흥으로 보내는 사이 나이트 클럽에서 남창으로 일하거나 이런 저런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해 온 폴란드 불법체류자 청년을 만난다. 그리고 스무살에 덜컥 결혼을 한다.


...; 스무 살에 결혼한 그 남자 (라드야) 는 불법체류자로서 신분이 불안한 탓도 있지만 제대로 끈기있게 하는 일이 없다. 남창 일을 해서 먹고 살거나 소니아가 둘을 부양하기 위해 이런 저런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는 것을 '직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얹혀 산다. 수학을 공부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 아가씨는 수학을 공부하지 않는 대부분이 아마 헛똑똑이라 생각할 그런 방식으로 이 남편을 부양한다. 그리고 학비 때문이 아니라 독일의 풍요를 비슷한 수준으로 누리기 위해서 성매매 업소에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반은 이런 저런 업소에서 일하는 이야기와 불륜 (같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편의 친구)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성적 욕구와 사랑하는 감정을 누리고 사는 것이 소니아에게는 곧 인생의 풍요였고 그는 '영리하기에' 그러한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인생은 짧잖아?"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마케터가 포장하고 싶었던 천 유로 세대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굉장히 편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성관념을 가지고 있던 젊은 여성이,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여성들에게 (혹은 남성 스폰서에게) 의지해 살던 남자에게 잘못 걸려서(스스로 선택해서) 생계형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천성이 그리하니 어쩌겠냐마는 팔할은 자신의 잘못이다. 성매매로 수입이 생기면 당장 현금이 들어온 즐거움에 외식과 쇼핑으로 즉시 다 써버렸고 그것이 떨어지면 또 성매매에 나가는 것까지 구조 탓을 하면 끝이 없지 않겠는가.


대학교때 교수가 고약한 농담을 했는데 "여대생이 성매매를 하면 나쁜 년이고 성매매 아가씨가 향학열에 불타서 공부를 하면 대견한 거다." <<퍼킹 베를린>>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떠올리고 말았는데, 소니아 로시의 정체성은 학생이 생활고에 못이겨 성매매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아주 가끔 발견할 수 있는, 향학열에 불탄 성매매 여성에 더 가깝다.


물론 구조라는 것은 개인이 미리 의식하고 행동할 수 없는 것이기에, 젊음을 즐기려는 마음에 유학 와서 놀다가 마찬가지로 젊은이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그로 인해 학업과 생활을 동시에 영위할 수 없어서 성매매를 하는 구조라는 것은 존재할 테다. 그리고 그런 선택(무능한 남자와 결혼)을 하더라도 성매매를 해야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자유주의 - 더 넓게는 자본주의 - 가 남긴 것일 테다. 그러나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실시와 성산업 종사자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거라면 모를까, 이것이 풍조나 추세로서 바로 연결되려면 설명되어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소니아 로시는 구조 안의 개인일 수는 있지만 구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설득력을 결여하는 인물이다.


이 책을 <<88만원 세대>>의 연장선상에서 읽는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해 봤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내가 너무도 고루한 인생관의 소유자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 소니아의 삶을 설명하고자 하면 너무 전형적인 단어들밖에('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남자와 덜컥 결혼') 쓸 수 없어 갑갑해지지만, 인생의 수준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을 덜컥 구조 위에 얹는 것이, 좌파에게도 좋은 전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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