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과 관념이 불일치하는 순간 관념을 버리는지, 아니면 현실을 관념에 맞춰 짜깁기하는지만 봐도 양서를 구분할 수 있다. 이 책은 후자다. 쇼 한번 잘 구경했다는 기분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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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잉어 2014-07-07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점이 이 책을 현실에서 유리된 관념뿐인책이 되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순 없으실까요?
그렇다면 님은 니체 역시 관념주의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만약 아니라면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머리 식힐 겸 가볍게 이 책을 열었다가
다시 닫을 때는 너무나 가슴이 뜨거워 진 채였습니다.
읽어버렸다는 것이 이런 느낌 일까요?

melona 2014-07-0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옆에 있다면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기억하는 예를 하나만 들어 보죠. 이 책은 중세 해석자 혁명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며, 모든 유럽 혁명의 어머니로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혁명, 영국혁명 등의 다른 혁명도 사실상 다시 읽고 쓰기라는 말을 하지요. 그러면서 전술했던 주요한 혁명 중 러시아 혁명은 여기에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하고 얼버무립니다.

저라면 자신의 가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러시아 혁명을 역사에 큰 전환을 가져온 혁명의 계보에서 제외하느니 혁명은 중세 해석자 혁명 이래로 다시 읽고 쓰는 일이었다는 가설-대전제자체를 버리겠습니다. 그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예외'를 처리하는 성실한 방식이니까요. 이해야 합니다. '퍼포먼스로서의 글쓰기' 를 위해서 현실을 새로운 각도로 짜깁기하는 것은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이 아니라 타인들과 차별화하며 책을 팔아야 하는 신예 사상가의 운명이지 않겠습니까.

저의 일본 사상-평론가들에 대한 짜증은 사사키 아타루 이전부터 계속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그의 퍼포먼스적 글쓰기 역시 호들갑으로 내용을 선취하려는 시도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뭐, 느끼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