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설에 앙코르 와트에 가기 위해, 앙코르 와트에 대해 국내에 한국어로 소개된 몇 안 되는 책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다 읽었다고 해도 몇 권 안 되는데, 시엠립까지 양대 항공사가 직항을 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감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도올 김용옥은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상/하)>>에서 서규석이 쓴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에 대해, 남의 번역본을 옮기면서 전거를 밝히지 않은 불성실한 태도라며 비판한다. 서규석은 앙코르 와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 사신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의 번역을 이 책에 넣었는데(한국어로 <진랍풍토기>가 소개된 것은 최초), 도올이 보기에 이 번역은 진랍풍토기 원전의 완역이 아니라 일본 학자 와다의 오역이 그대로 들어 있는 중역이었던 것이다. <<앙코르와트/월남 가다>>는 학술서가 아니라 나 같은 여행자가 손에 들 법한 도올의 인도차이나 반도 문화 탐방기임에도 불구하고 도올은 "번역은 반드시 일차적으로 원문에 의거해야 한다. 원문의 의미체계를 맥락적으로 오늘의 한국인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번역이 2차 자료에 의거했을 경우에는 그 자료의 문제점에 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규석은 이러한 엄밀한 태도를 고수하지 않았다." 라며 다소 강한 비판을 한다. 이 비판은 인용을 일삼으며 전거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지식인 사회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비판에는 반만 동의할 수 있는데, 중역보다 원문을 바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바람직한 것은 맞지만 번역이란 자고로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굳이 번역은 또 하나의 원본이라는 점을 들이대지 않아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독자에게는 중역을 통해서라도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 중역을 거치지 않았다면 한국의 지식사회는 현재의 상태에 더 늦게 도달했거나, 혹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지 모르지만, 이러한 수입과정을 놓고 사후적으로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남는 것은 서규석이 자신이 전거로 삼은 문헌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없었다는 것인데, 도올이 와다의 <<진랍풍토기>> 번역에서 오역을 찾아낸 것은 그의 한문학적 지식 덕택이었다. 물론 이를 발견할 수 있을 만한 지식을 갖춘 이가 번역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러한 지식을 갖춘 이가 애초에 왜 중역을 시도하겠는가? 자신이 사용하고자 했던 자료(중역본)의 문제점에 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을 불성실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인 것 같다. 그리하여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서규석이 자신이 어떤 번역본을 사용했는지를 명백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독자가 자칫 이를 <<진랍풍토기>>의 완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불성실한 태도이며 저작권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일본어 역자인 와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슬쩍한 것이므로 비양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서규석의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를 구해서 책장을 넘겨 보니, 이 책의 만듦새나 저자의 면모나 수준으로 볼 때 나는 도올이 허수아비를 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앙코르 와트와 캄보디아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불모지인 한국에 그래도 책 한 권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만들어 놓은 종합 선물세트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학술적인 엄밀함을 기대할 만한 책이 아니며 편집이 잘 된 책도 아니다. 저자의 수준 운운하는 이유는 도입부 문단부터 "사회주의 국가에 힌두교 유적이 있는 것이 놀라웠다"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지적으로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제법 두꺼워 어느 정도 양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데, 신화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앙코르 와트 유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소개하고 있으며, 이런 저런 오류를 수정하여 꾸준히 개정판을 내고 있다. 서규석이 라마야나를 소개할 때 산스크리트어로 '라마야나'를 읽었을 리 만무하니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소개하면서도 누군가의 번역본에 의존하였을 텐데, 도올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도올의 서규석 비판은 자신이 연구하다 발견한 성과(기존 문헌 해석에 오점이 있다는 점)를 부각하기 위한 것인데, 마땅한 연구조차 없는 나라에서 여행자나 읽을 만한 안내서를 두고 지식문화 일반에 대한 개탄으로까지 나아갈 만한지는 의문이다. 마치 지금 내가 여행을 앞두고 몇 권의 책을 읽고 이런 점을 발견해 포스팅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듯이... 게다가 도올의 <<앙코르와트/월남 가다>>는 앙코르 와트와 월남에 대해 알게 되기보다는 도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도올의 '감탄기'가 아니던가.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뒤진 결과, 누군가가 나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읽은 것 중 단 한 권만 추천하라면, '여행가' 가 쓴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인용을 하고 있으며(참고 문헌을 밝혀 놓았다) 신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소개하고 있는 이지상의 여행기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를 추천한다. 요즘 많이 나오는, 유치한 감상과 신변 잡기로 점철된  '여행가 책'이 교본으로 삼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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