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을 날아서
민혜윤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알고있는 그녀는 한 바람둥이와 3년여에 걸쳐 모호한 연애관계를 유지 중 이다.

'왜?'라는 물음에 그녀가 내게 한숨을 길게 내쉬으며 말한다.

자신또한 그가 진정한 '선수'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그런데 ..이제는 기억해주는 사람 몇 없는 30대 후반의 생일 날 누구보다 먼저 전화를 걸어와 축하한다며 전화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이 남자를, 너에 관한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한다면서 느물 거리는 이 남자를 여자라면 미워할 수 있겠냐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 맞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선수'에게 약한 것은 다 그런 이유다. 남의 일인 때에는 뭐 그렇게 쉽게 넘어 가냐고 비웃겠지만 내 이야기가 되면 달라지게되는 건 그렇고 그런 이유이다.

그렇지만 바람둥이의 사회적 기여도란 딱 거기 까지이다. 바야흐로 20대 초반,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길고 긴 23살의 파릇한 아가씨에게 권할 만한 사양이 못된다. 솜털이 아직 보송보송 순진한 이해영양이 적반하장이 인생관이고 감언이설이 무기인 30살의 선수 강정원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빨간모자와 늑대의 관계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신기루와도 같은 연애란게 대책없이 끝나버리면 느물느물한 언변, 자연스러운 매너와 부드러운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선수'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던 그 어린 마음은 어떻게 수습하냔 말이다. 쿨하게 돌아설 수 없다면, 아니 쿨한 척이라도 할 수 없다면 아예 그쪽으로는 고개도 안돌리고 줄행랑을 놓는게 인지 상정이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사정이고 그물망에 걸려든 고기를 그리 쉽게 놓친다면 그놈에게 '선수'라는 칭호가 붙어있지 않았을 테지...

그리하여 우리의 순진한 해영양..... 늑대 강정원에게 홀랑...아니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넙죽 '날 잡아잡슈쇼'하고 엎드리게 되지만 누가 잡아먹히는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녀는 우선은 뭐 대책없이 그 길을 가보고자 한다. '선수' 강정원이 빠이빠이하기전에 먼저 돌아서는 거다. 딱 발을 뺄 수있는 그때까지만이다 라고 시한을 정해봤다.

과연 누가 먹히는 걸까. 작가의 말빨에 반쯤 넘어가서 키득거리며 책장을 넘긴다. 누가 마지막에 웃는 승자가 되는지 한번 보자면서.....

민혜윤작가의 글은 생동감이 넘친다. 동시에 행간에 깔린 음악적 여운과 몽환적이리만큼 시각적인 색채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글들이 유머러스하게 톡톡튀면서도 묘사에 있어서는 분위기를 아우르는 진중함이 글 전체를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 발란스를 유지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나른한 여름날의 늦은 오후,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 시간사이로 더위를 식히는 서늘한 한줄기 바람이 깔리듯이 그녀가 풀어 놓는 정원과 해영의 연애담은 간지럽게 시작된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봄은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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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비, 메이비 낫
김언희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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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주머니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주머니 재질과 크기는 조금씩 다른것 들이다. 어떤 이에게는 좀 더 말랑거리고 탄성이 좋은 것을 어떤 이에게는 딱딱하여 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주어진다. 몸속 어딘가에 깊이 들어 있는 비밀주머니는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뭔가를 채워뒀다 비우는 용도로 쓰인다.
참을 수 없는 것, 소화해 내지 못하는 것, 잊고 싶은 것, 들여다 볼 수 없는 것, 아무리 울어도 흘려 내지 못하는 것, 가슴에 품고 있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것......
누워있는 바닥이 꺼지고 하늘이 내려앉았을 때면 비밀주머니가 조용히 열린다. 재희의주머니에는 아빠에 대한 원망, 엄마에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제 현석이 채워졌다. 비워지지는 않고 계속 채워진 주머니가 잔뜩 부풀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그래, 겉으로는 멀쩡해졌다고, 재희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외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복도에서, 숨도 조심스레 내쉬었다. 아슬아슬 부푼 주머니를 다시 깊숙히 숨겨야 했다.-90-91쪽

그리고 깨달았다. 서준우는 아무리 울어도 눈물로 강을 이룬다해도 도저히 흘려버릴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이 숨겨둔 비밀 주머니에 담지는 않을 거라 마음먹었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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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비, 메이비 낫
김언희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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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라, 언제든 다시 닫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미국에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나면 영수증과 함께 딸려 나오는 반으로 접힌 만두같이 생긴 과자가나온다. 포춘쿠키fortune cookie...그렇지만 몇 번 보고나면 처음에 설레임은 사라져서 어떤때는 손도 대지않고 나오고 어떤 때는 그냥 과자만 부숴서 홀랑 먹고 말게된다. 마치 식당용 누룽지사탕이나 박하사탕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탕과는 달리
계란냄새가 달짝지근하게 나는 노란 과자를 반으로 쪼개면 텅빈 속에서 빨간 글씨로 덕담과 행운의 숫자들이 쓰여진 하얀 끈처럼 생긴 종이가 나온다. 그 작은 종이에 쓰여진 '미래'가  덕담일 뿐일 것이라는  것을..그 작은 종이가 불행을 말할 확률은 로맨스 소설이 불행한 결말로 치달을 확률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듯이 이 글의 그녀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 재희는 그 '미래'를 보고 싶지 않다며 그의 옷장에 걸린 수많은 양복들 속에 손을 넣어 닿은 한 주머니속에 쏙 집어 넣어버린다.

정말이지 그녀는 그 작은 종이끈이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 믿었던 걸까?

그보다는 아마 그 종이에 의지하고 싶어할 자신의 나약한 의지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 종이의 덕담에 은근슬쩍 마음을 풀어줘서 미련하게도 자신의 사랑을 긍정적인 운명을 기대하는 것 그 자체가 두려움이 었을 것이다. 그래서 숨겨버린다. 그의 옷 속으로... 자신을 돌아봐 달라는 애타는 미련 또한 같이 묶어서...

우리는 사랑이야기에 신파라는 말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사랑이야기는 껍데기만 보면 뭐든 다 거기서 거기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는 과정을 단순하게만 바라본다면 한없이 단순하겠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이의 마음에 닿기까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길보다 더 많은 수의 길이 있을테니 그냥 흔한 이야기라 말하기는 마음이 늘 아리다.

글속에 한재희와 서준우는 서로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숨겨 보기도 하고 거미가 투명한 거미줄을 뽑아 상대를 감고 끌어당기듯이 엮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두렵다.

사랑이 갖는 또 다른 이름인 기대가 그리고 집착이 결국은 절망이라는 추한 감정으로 귀결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그 얽히는 감정놀음은 절대로 안하고 싶은 남자와 그 남자 곁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기대를 스스로 잘라내며 초연함을 가장하는 여자가 남을 뿐이다.

그들의 감정들은 그렇게 떼내어 질수 있을까?

그렇게 사그러 들 수 있을까?

 

김언희 작가의 글은 사실 처음이다. 글의 섬세함이 날 잡아끌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를 뒤흔드는 무언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짜릿한 정렬이 난무하는 연애담이 아니라 작은 묘사가, 표현이, 말이 글을 읽는 내 마음에 장마철의 빗방울처럼 동그라게 때론 서울 우유의 왕관같이 선명하게 파문을 일으킨다. 글을 읽으면서 목줄기가 아잇해지도록 울컥했던 감정이 올라오는 것 참 오래 간만이었던 듯하다.

만족스러웠다. 그거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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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풍경
이정숙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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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진 색의 짙음이 그녀에게는 버거울 것이라는 것을 아는 그와
아직 여자이기보다는 여자애이고
흰 도화지처럼 무엇이 채워질지 모르는 나이인 그녀


수한과 석경은 교수와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만난다.듣기만해도 어색한 관계의 시작이다.  

석경, 21살에 그녀의 삶은 우정과 사랑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동기인 친구를 향한 그 풋풋한 짝사랑이 끝나기도 전인데 비가오던 어느날 수한을 만나고 짙은 푸른 빛의 바람이 가슴에 불어온다.
수한, 그는 봄빛처럼 화사한 그녀에게 마음이 쏠린다. 32살인 그에비해 아직은 솜털날리는 어린애인데..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수 가 없지만 자신의 색으로만 그녀의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도화지를 다 덮어 버리길 바라지 않는다.
그녀를 놓을 수는 없었다. 과거의 핏빛 상처가 여전히 자신을 흔들고 있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신에게 머물러 주었으면 했다.


짝사랑

온밤을 지세우게 만드는 심각한 사랑의 고민들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

마음의 상처

새로운 사랑

 
이러한 이야기들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채의 시각적인 느낌과 물감의 냄새, 새벽녁 학교의 공기, 하얀 담배연기 등이 갖는 후각의 느낌들과 섬세히 섞여서 평범한 성장소설같은 이야기에 멈추지 않고 보다 입체적인 감각들을 지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게한다. 

젊은날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친근한 감정들이라 책을 넘기며 혼자 미소짓게 했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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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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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얼추 한 학기 등록금을 모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피로'나 '긴장'을 느끼고 싶었다. 긴장되는 옷을 입고 긴장된 표정을 짓고, 평판을 의식하며, 사랑하고, 아첨하고, 농담하고, 계산적이거나 정치적인 인간도 한번 돼보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가전제품뿐이었다. 나는 냉장고에게 잘 보이거나, 전기밥통을 헐뜯고 싶지 않았다. 첫월급을 탔을때 누구를 만나,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일만 하다가 죽을 수는 없다고, 매일 어깨에 의자를 이고 등교하는 아이처럼 평생 아르바이트마 하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기다랗게 자라는 꿈을 꾸기도 했다-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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