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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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데 아직도 여름 같다.

덥다고, 어쩌면 추석이 다가왔는데도 이렇게 덥냐고, 에어컨을 켜며 중얼거렸다.

마치 변명하듯.

언제까지 여름일 거냐고, 이러다 가을은 못 만나고 겨울이겠다고 불평했던 지난 며칠이 최지은 시인의 <<우리의 여름에게>>라는 책을 읽으며 사라졌다.

아니, 조금만 더 이 여름이어도 좋겠다 싶었다.

반짝이는 어느 여름, 어느 시절, 어느 사랑, 어느 사람들.

여름이어서 아름다울 모든 것들에 조금 더 마음을 주고 싶어서. 거기에 '나'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실은, 책 속의 글들은 꼭 여름이 아니었어도 좋았을 거다.

따뜻한 봄에 읽었으면 다정했을 거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읽었으면 위로받았을 거다.

몸이 꽁꽁 얼 만큼 추운 겨울에 읽었다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언 손을 녹여주고 싶었을 거다.

그러니까,

너무 좋아서 매 순간 기뻤을 거다.

나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 나를 미워했거나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상처 준 사람들, 볼수록 아프기만 한 사람들,

너무 사랑해서 나를 다 내어주어도 좋을 것 같은 사람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흐릿한 기억으로나마 떠올리면서 그들로 인해 지금 '나'가 존재하고 있음을 그건 그저 사랑이었음을, 믿음이었음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시인의 글은,

온통 사랑이었고, 끝내 나는 그 사랑에 손들어버렸다.

아팠을 텐데, 힘들었을 텐데, 미웠을 텐데... 같은 마음은 둘 곳이 없었다.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죠. 지금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흰밥처럼 새하얗고 깨끗한 마음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랑 같지만, 너무나 크고 깊은 사랑을 받았기에 어떻게든 이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말이에요. 자랑 같지만,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이고요. 갈수록 저는 더 알 것 같거든요. 제가 받은 사랑이 무엇인지, 제가 지닌 사랑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할머니가 제게 먹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

할머니는 제 마음을 다 아시겠지요. 그리고 당신도 꼭 제 마음처럼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쉽게 지치면 안 되는 여름이 다가옵니다. 또 다른 여름, 강건하게 마음을 지키기로 해요.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 <자랑 같지만> 중에서, p20



할머니는 손녀가 좋아하는 오이지를 먹이고 싶어서, 오이를 소금물에 절이면 더 아삭해진다기에, 새벽에 일어나 소금물을 끓이다 화상을 입는다.

어린 손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그해 여름을 할머니는 병원에서 보낸다. 더 이상 손녀에게 오이지는 찬물에 말아 시원하게 먹는 아삭한, 맛있는 반찬이 아니게 되었다. 어린 손녀는 몰랐지만 어른이 된 손녀는 안다. 그게 사랑이었음을.

시인의 글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시인의 이야기는 어린 시인을 밖으로 끌어낸다.

자꾸 내게도 그때의 너로 돌아가라고 한다. 아픔만은 아니었을 수도. 그때 무한한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만 툭툭, 털고 보내주라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멀리서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시인의 북토크 자리든, 어디든. 시인의 이야기를 시인의 목소리로. 아주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기분.

고백 같은 거 할 순 없겠지만, 오래오래 시인의 시를, 에세이를 읽고 싶다.


어머니라는 세계의 부재로 인해 저는 이 모든 것을 손안에 쥐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무궁한 모름의 세계까지 나의 손에 있습니다. (...) 이런 것을 적어 내려가는 오늘 밤은 하필 봄이 가깝고, 나의 고백은 두렵고, 나는 나의 문장을 미워하고, 나를 이해합니다.

누구나 오직 자신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몸으로, 나의 언어로, 나의 세계로, 나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그럴 때면 '없음'의 자리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없음에서 주어 올린 마음.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었던 마음. 없어서 구할 수 있었던 마음. 이런 건 무어라 이름 붙여주어야 할까요. 하필 나와 비슷한 돌멩이를 쥐고, 봄이 가까운 깊은 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닮은 사람을 떠올릴 때면 나는 더 솔직해지고 싶은 거예요. 더 용기 내고 싶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나의 단어를 찾아가면서요.

- <그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 더 나아가고요> 중에서, p29




당신도 당신의 어린이를 이야기하기를, 그 아이에게 깊이 사랑받기를.
잘 되어가지 않을 때에도 나는 나의 사랑 이야기를 믿는다. 물동이에 다 담기지 않아도 하늘은 틀림없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물동이에 가둘 수 없는 깊은 하늘을 이제는 믿으니까. 내 사랑은 여기서부터 되어간다.
순전히 나의 사랑만으로. 나의 이야기는 되어간다, 더, 되어간다. - P45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끌어당겼다. 날이 밝으면 이 빛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나가 걷자고 생각하면서. - P63

할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은 죽음 후에도 나를 돌보러 온다. 어쩐지 쓸쓸해 창을 열며 마음을 달랠 때 구름이 있고 하늘은 맑고, 깨끗한 가을 공기가 들어온다.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되어 한꺼번에 내게 온다. 아버지의 거울을 꺼내어 하늘을 비추고 햇빛을 비추고 잠시 나를 비춰본다. 거울 속에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어 있다. 나 역시 언젠가 구름이 되고 하늘이 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도 숨어 있다. 거울 속에서 손톱이 예쁜 어린이가 나를 안아주러 단숨에 나타나기도 한다. 안녕, 내가 아는 나의 어린이. 이 어린이를 어떻게든 미워할 수가 없다. - P85

사소한 기쁨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체득한 삶의 방식이다.

바닥을 잃었던 여름밤과 다락, 정처 없이 쏘다녔던 거리를 잊고 싶지 않다. 그런 나날 속에서도 나를 위해 음식을 해 오고, 안부를 묻는 사람과 숨길 수 있는 다락이 있었다는 것이 내 삶에 주어진 알 수 없는 호혜였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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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한 책들
장윤미 지음 / 사람in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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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책을 읽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기도 하고, 그저 좋아서 읽기도 하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읽기도 한다.

책은 자주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책이 내게 무언가가 되는 순간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 '아,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없겠다'하고 느낄 때다.

그건, 내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고

나의 옆 사람이, 나의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나를 뒤따라 오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낄 때다.

장윤미 작가의 <<우세한 책들>>은 나와 너, 우리가 결코 무관한 사람이 아님을,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의 모두가 조금씩은 서로에게 책임을 가지고, 다정하게 보듬으며 살았으며 하고 바라게 했다.

스물일곱 권의 책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스물일곱 명 이상의 사람이 나를 통과했다.

스물일곱 개의 모두 다른 모양을 가진 삶이 나보고 그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작가는 스물일곱 권의 책 속에서 세상의 약하거나 악한, 자유롭거나 구속당한, 아름답거나 불편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더듬는다.

무조건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듯,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무조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작은 빛을 찾아낸다.


작가가 읽은 책을 나 역시 대부분 읽었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작가가 발견해 들려줄 때, 신이 나서 다시 그 책을 찾아 펼쳐보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가와 같은 책을 두고 의견을 나누듯 '그랬군요.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같은 생각을 한 부분을 만났을 땐 '어머! 우리 좀 통하는걸요?' 말 걸고 싶었다.

책은, 보이지 않는 나와 당신을 연결한다.

작가는 나와 당신을 연결하기 위해 친절하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혹시 가다가 넘어지지 말라고,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서로를 꼭 알아보라고 다정하게 길잡이 해주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든, 언제든, 기약 없이.

운 좋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본다면, 그건 아마 작가가 놓아 준 책과 책으로 연결된 다리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책임을 띠고 이 땅에 선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 <여는 글>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가.

나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즐겁고 수다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덧) 작가가 읽은 스물일곱 권의 책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혹은 한 권도 읽지 못했더라도 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통과해 읽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기에, 그저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나는 함부로 타인에게 "당신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는 내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나에게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게다가 이해의 넓이나 깊이는 내 경험치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이해한다는 말 대신 그와 내가 잊고 있던 낯선 감정을 복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나와 타인의 관계를 만드는 괜찮은 장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갈등도 필수다. 그럼에도 이것이 옳다고 믿는 이유는 나와 타인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P31

계급 쟁탈전에서 밀려난 아이는 자신이 당한 방법대로 다른 아이들을 차별하고 어떻게 해서든 계급사회의 서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밀려난 최후의 아이는 벌레 아니면 거지라고 놀림받는다.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마땅하지만, 그래 봤자 저들에게는 그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평불만처럼 보일 뿐이다.
- P170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란 없다. 선택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모든 선택은 허용된 조건 아래서 이루어진다. 조건이 공간이나 시간이든,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이든 간에 말이다. 다만 허용된 조건을 우리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 P223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뇌의 것이 아니라 뇌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뇌가 잘못해도 결국 책임은 뇌의 주인인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 <뇌가 편해지면 사회는 불편해진다>에서
- P243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능력에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인이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거쳐온 여러 특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정량화, 수치화된 결과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 올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 <이것은 시험인가, 도박인가>에서
- P277

우리가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이해받기 바라는 이유는 외로움을 피하고, 고립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닿길 바란다. 물론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 버리듯 타인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어떤 사람은 진짜 감정은 보물처럼 숨겨두고 가짜 감정만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감정까지 자본화하여 거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상대를 해칠 의도가 없는 이상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저 각자 살면서 터득한 감정 생존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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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 창비청소년문학 119
정은숙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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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래 공단에서 일했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가 사라졌다.

우리는 방 두 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IMF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단히 부유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진 것도 아니었는데, 한참 예민했던 고등학생에겐 모든 게 힘들고 짜증 나는 시절이었다.

아빠는, 엄마는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선빈이네 가족은 부유했다. 아빠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엄마는 부잣집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우아하게 살았다.

선빈은, 큰 꿈은 없었지만 아빠의 재력 덕분에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는.

그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빠는 돈을 갚지 못해 구속되었다. 겨우 남은 돈으로 얻은 전셋집은 사기를 당했다.

엄마는 부잣집 사모님에서 하루아침에 전세사기를 당한 가진 것 없이 청소년 딸과 감옥에 간 남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선빈이라는 아이는, 오래전 나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이 아이는 주눅들지도, 그다지 절망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고, 좋았다.

물론 갑작스럽게 휘몰아친 상황들에 혼란스러워했지만 아빠를 원망하지도, 엄마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미워도 밥은 먹이고, 큰 소리를 내고 결국 마주 앉는 이런 게 가족인가?"

그런 게 가족 맞는 거 같다. 어느 면에서는. 징글징글하다고 말하는 그 가족.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말할 때 그 가족.

소설은 뻔하게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었다.

작가는 묘하게 다양한 모습의 '가족'을 소설 안으로 들여왔다.

재혼 가족, 매일 싸우는 가족,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가족,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가족, 사회적 문제로 소중한 식구를 잃은 가족......


선빈의 친구 민하는 가족을 제일 믿지 못한다고 했다. 피가 섞였다고 무턱대고 맹신하다니. 이거 좀 공감 됐다.

때론 가장 믿지 못할 게 가족, 가장 힘들 게 하는 게 가족, 가장 징글징글한게 가족.

근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서 가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가족'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속에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싶은 반전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아, 작가님 멋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작가님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은 미지수라는 걸.

완벽한 가족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를 나누지 않아도 가족 같은 사이가 될 수 있다는걸.

이미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걸.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모습으로든 '가족'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생겨. 내 깐엔 저승 가기 전에 좋은 일 한다는 뜻으로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매번 정답을 찾을 수 있겠어. 공부 못한다니 잘 알 거 아냐? 정답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 <to be continued> 중에서


맞다. 특히 삶이라는 답 없는 문제 앞에 어떻게 정답을 잘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어른들이 먼저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정답인 듯 라떼는~ 같은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좋겠다.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리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서로 좀 덜 의지하고, 덜 기대하고, 덜 질척대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는 청소년들이 책을 덮고 '아, 개운하다' 싶었으면 좋겠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도 그냥 사람이구나, 저들의 삶도 참... 하고 가까운 타인을 대하듯 너그럽게 바라봐 주면 참 좋겠다.


왜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인데 왜 남들보다 열심히 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걸까. 잠을 줄여 가며, 코피 터져 가며, 자존심 구겨 가며, 허리띠 졸라매 가며, 배고픔을 참아 가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은 많아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은 쉽게 찾을 수도 없건만. 도대체 왜들 그러셔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 P45

누구처럼 고수가 아니어서인지 선빈은 불행이 시시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고통과 쪽팔림을 같이 나눌 이들이 있다면 불행이 만만하게 보일 날도 오지 않을까 믿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느닷없이 비는 오고 대략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뭐 이까짓 것쯤이야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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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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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고백하자면 아주 많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큰일 났어. 엄마 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엄마가 없다면...

휴대전화에 엄마의 번호가 들 때, 반가움보다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엄마가 없다면...

지난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전화를 걸었다.

두 시간쯤 지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깜박 잠들었어. 이제 깼네."

"그랬구나."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모녀 사이에 승패를 가를 싸움 따위 애초에 상관없는 일이라는걸.

모녀 사이에 누가 있고 없고를 따질 의미가 이미 없다는 걸.

그러면 엄마랑 좀 멀리 떨어져 살지 그랬니? 내 인생에서 멀리 떠나버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사람도 아니고.(p319)

<<사나운 애착>>을 읽으며 꾹꾹 참아왔던 감정이 이 문장 앞에서 무너졌다. 만약 나의 엄마가 내 앞에서 그렇게 말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어쩌면 나는 엄마가 끈질기게 나를 놓지 않고, 내게 무언가를 원하고, 필요로 해서 엄마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대체로 많은 엄마들이 생각한다. 자신을 희생해 자식을 키웠다고. 대체로 많은 딸들은 생각한다.

엄마의 희생은 딸인 내가 원한 건 아니라고. 고닉과 고닉의 엄마 역시 다르지 않다. 고닉의 엄마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동원해 고닉을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고닉의 세계는 엄마 이외의 것들로 채워져 있고, 외부와 내부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사랑이 모든 것이라 믿었던 고닉의 엄마는 부유하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부모와 자식으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완벽에 가깝다고 느꼈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남편(가장)의 죽음 이후 중심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남편(가장)을 잃은 슬픔과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게 아니라 더 깊이 파고 들어간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읽히던 이야기가 어느 부분에서는 여자 대 여자의 이야기로 읽혔다.

고닉의 엄마는 일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나가려는 고닉에게 딸이 아닌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사는 여성의 모습을 본 것처럼.

너 정말 모르겠니?

엄마는 애원하듯 말한다.

엄마한테는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달리 뭘 가질 수 있었겠니? 네가 인생 얘기하는 거 다 옳지. 다 맞는 말이야.

너한테는 일이 있었잖아. 너만의 일이 있잖아. 너는 여행도 많이 했고. 세상에나, 여행이라니!

넌 지구 반 바퀴는 돌아봤지. 난 여행은 꿈도 못 꿔봤는데! 나한테는 네 아빠 사랑밖에 없었어.

인생 살면서 누릴 께 그것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 사랑을 사랑했다. 아니면 뭘 어쩔 수 있었겠니? (p317)

고닉은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의 다세대 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까지 살았다.

그곳은 가난한 이민자들의 거주지였다. 고닉의 엄마는 그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도 그들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찼고, 똑똑해 보였다. 그러나 고닉의 엄마는 브롱크스의 다세대 주택이 아니라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p25)'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p25)'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 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 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 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p26)

엄마는 가부장의 안전지대에서 "사랑"만이 전부라 믿었다. 그러다 그 사랑이 갑자기 세상을 뜬 뒤, 모든 슬픔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슬픔은 다시 딸에게 전해졌다. 딸은 원하지 않았지만, 딸에게 엄마는 세상이었다. 법이었다. 그때, 딸이 할 수 있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내가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생각. 나의 전부가 '엄마 '일리 없다는 부정.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순간들.

그러나 고닉의 글을 읽으며 알았다. 엄마와 딸은 단지 피로 연결된 혈육만이 아님을.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p301)

글 속에서 고닉과 그의 엄마가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로 평범한 대화들을 나누고, 가끔은 실없는 이야기도 하고, 가끔은 날카로운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글을 읽는 동안, 엄마와 함께 걷는 상상을 자주 했다. 

아주 오래전엔 나란히 걸은 적도 있었겠지. 그 장면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살짝 슬퍼졌다. 

오늘, 몇 주 만에 엄마 집에 다녀왔다.

최근 일을 다니기 시작한 엄마는 종일 서 있어서 다리가 붓고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가는 종아리, 부은 발, 어쩌면 우리의 산책은 좀 더 뒤로 미뤄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오래 침묵했다.

그저 우리는 함께였다.

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과연 그런 진실이 존재하나 싶어진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불운한 운명(엄마는 과부 나는 이혼녀다)을 타고난 무능력한 두 여자, 스스로 행복한 가정이라는 실체를 꾸릴 수 없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쇼윈도 앞에 서면 ‘행복한 가정‘이란 건 내 안에서도, 엄마 안에서도 실현되지 못한 한 조각 환상처럼 느껴진다. - P72

모든 일은 언제나 나쁘게 끝나지만 그 비극에도 위엄이란 게 있지 않을까. 내가 쓰는 이야기의 요점은 명확하다. 인생은 비극이라는 것. ‘비극 안에‘ 머물면 인생이라는 지루하고 빈곤한 고통에서 구출될 수 있다. 사실 인생이란 게 전부 무의미해 보이기도 했다. 무의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내가 알기론 가장 중요했다. 의미를 찾는 게 곧 구원이었다. - P87

나는 간발의 차로 겨우 위험에서 빠져나온 사람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느낀 불안이 속속들이 냉정하고 비열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뜨거운 가슴에 날 마구잡이로 끌어안도록 내버려 두었다. 몸을 빼지 않았다.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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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 신나리 페미니즘 에세이 스토리인 시리즈 9
신나리 지음 / 씽크스마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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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은 자기 검열의 기준이 된다. 스스로 조건에 부합된다 느낄 때만 비키니를 편하게 입을 수 있는데, 이때 '대상화'를 감당하는 것도 자기 몫이다. 비록 칭찬이라 해도 몸매 품평을 받아들일 각오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 날씬하지 않은 여성이 몸을 노출하면 '민폐'라고 규정하는 '사회적 규범'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한 규범은 내 몸을 '물건'처럼 바라보게 한다. 기준에 근접할 경우 '봐도 좋다고 과시하는 몸'이 되며, 그러지 못할 땐 '숨겨야 하는 몸'이 된다. 어떻게 입든 자유이자 취향이라고 말하지만,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젊거나 늙은 사람 누구도 실상 자유롭지 못하다.

- <비키니를 버리지 않은 이유> 중에서, p51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하루에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의 매일 만난다.

"어머, 선생님. 흰머리 봐봐"

"야, 이제 조 선생도 나이 드는구나."

"염색할 때 됐다 그치?"

가깝든, 적당히 거리가 있든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보이는 대로 말했을 테니 절대 악의는 없었을 거다.

작가의 '타인의 시선은 자기 검열의 기준이 된다'라는 문장을 읽다 생각했다. 내가 새치 난 머리를 참지 못하는 건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자기 검열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었을까.

『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는 다섯 개의 챕터로 진행된다.

1장. 꾸미지 않은 채 살고 싶다

2장.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3장. 오늘도 난 아이 앞에서 미친년이 됐다

4장. 지금 나는 잉여력을 충전중입니다

5장. 온전히 불완전해질 자유가 필요해

삶은 성취가 아니라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다. 이걸 모르고 뭘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나이 마흔, 물러설 수 없이 받아들일 때다. 생애주기 매 순간이 어차피 미완성이다. 부족함은 필연이다. 나이에 걸맞게 도달해야 할 성숙의 기준은 없다. 마흔 줄에 접어든 내 친구 중 그거 이룬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만나면 우리의 대화는 늘어나는 주름, 뱃살, 집값과 부동산 정책, 퇴사 고민뿐. 여기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다. 그저 20대의 고민만 반복하지 않아도 성공이다.

목표 설정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적어보았다. 내가 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일이 아니라 단지 하고 싶은 것들을.

글을 계속 쓴다. 나의 생애 경험을 세심하게 증언하고 싶다. 아이와 여행을, 아무 목적 없이 다니고 싶다. 요가 동작을 잘하고 싶다. 가볍고 민첩하게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날까지. 바다에서 머리 들고 유유히 수영하는 법도 익힐 테다. 똑똑해지고 싶다는 허영은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꼼꼼히 읽어 나의 언어 일부로 만들고 싶다. 요리를 즐기지 않지만 한 끼에 소박함과 정갈함을 담으려 한다. 매일 아침 창을 열러 찬바람을 맞아들이겠다. 햇살 아래 고슬고슬 마른 이불깃의 감촉을 사랑하자.

나의 피로와 혼란을 돌보며 살려 한다. 힘들면 잠을 자는 일에 왜 아직도 머뭇대는가.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 아닌데. 월등한 생산력을 뽑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닦달하지 않기 위한 휴식을 하고 싶다. 쥐어짜내고 갈아가며 달리던 그때로 돌아가지 않겠다.

- <마흔, 그 무엇도 되지 않을 자유> 중에서, p295-296

1장부터 3장까지 치열하게 달린다. (치열하게 어떤 면에서는 과격하게 쓴다). 작가가 그동안 여성으로,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 무수히 싸우며 성취한(여전히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다.

4장과 5장으로 가면서 그간 작가가 치열하게 싸우며 깨달은 것들을 통해 터득하게 되거나 추구하게 된 삶의 방향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나의 피로와 혼란을 돌보며 살려 한다'는 문장에 와서야 바짝 긴장했던 마음을 살짝 놓을 수 있었다.

읽는 나 역시 한 문장 한 문장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읽게 됐다. 내가 여성으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며 느꼈던 부당함과 상실감, 피로와 고됨의 흔적들을 글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다. 이제야 겨우 아닌 걸 아니라고,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2장. <부부란 무엇인가>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작가는 거의 독박에 가까운 육아를 감당하며 참지 않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남편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아이가 막 세 돌이 될 때쯤이었다. 어느 날 남편에게 통보했다.

"오늘 밤 이야기 안 하면 내일부턴 나 없을 거야."

몸이 너무 아파 아이를 보다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다고 해도 회사에 일이 많아 올 수 없다고 했던 그는 바로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그날 남편과 담판 지었다.

"당신을 내 인생에서 버릴 거야. 그렇게 몸 바쳐 사랑하는 회사랑 평생 살아."

회사에 그렇게 다니며 아이를 보지 않을 거라면 가족을 포기하라고 했다. 어차피 얼굴 못 보는데 따로 살자고 했다.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메는 것을 꾹 참고 남편의 눈을 정중앙으로 노려보면서 또박 또박 말했다. 그동안 내가 울부짖어대며 했던 수많은 말 앞에서 그는 지겹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잠을 자버리곤 했지만 오늘 나의 최후통첩에 남편의 눈이 벌게졌다.

- <육아로 유지하는 부부간의 결속> 중에서, p123

최후통첩 후 작가는 다시 선택권을 넘겼다. "3개월 내에 퇴직, 이직, 휴직 중에 결정해." 그렇게 남편은 2개월의 짧은 육아휴직을 냈다. 그리고 작가는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것만큼 똑같이 했다.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고, 육아와 가사에 손을 보태지고 않고,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어도 모른척했다. 그 사이 남편은 그걸 혼자 다 했다. 민감한 양육자가 되어 갔다.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의 첫 책 『엄마 되기의 민낯』에 담아냈다.

물론 이걸로 끝은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휴전은 있을지언정 종전은 없다고. 남편은 다시 복직을 했고 여전히 아이 양육은 필요했으니까. 그럼에도 작가는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그게 남편과 다정한 사이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여기서 나의 고민과 혼란이 시작됐다.

그리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 아침. 나는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아이 등원 준비를 시키고, 큰 아이를 깨워 등교 준비를 시켰다. 나의 출근 준비는 더 일찍 일어나 미리 준비를 마친 뒤였다. 식탁 주위를 분주히 오가는 데 거실 너머 베란다 창으로 여유롭게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였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던 창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은 거실과 베란다 창 사이를 두고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해 내가 있는 곳은 전쟁터, 그가 있는 곳은 세상 한가로운 휴양지 같은 느낌이었달까.

식탁으로 와 앉으며 남편은 입을 열었다. "좋네요. 잠깐의 여유를 즐겨보세요." 그때 내가 해야 할 말의 정답은 뭐였을까? 아니 아무 말 없이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수프 그릇을 집어던져야 했을까?

그때 나는 그냥 웃었다. 그 웃음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의미 없는 웃음에 가까웠다. 날선 말로 아침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대체로 그랬다. 물론 우린 치열하게 싸워야 할 만큼 육아 문제로 부딪치지 않았다. 적절한 선에서 알아서 나눠했고 알아서 서로의 감정을 살폈다. 그럼에도 그날 아침의 풍경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구나. 부부 사이의 날선 대립이 싫었던 거구나. 불편한 공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넘어갔구나. 그럭저럭 괜찮은 부부 사이를 유지하고 싶었구나. 대체로 늘 그랬구나.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몇은 나처럼 2장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결혼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예감과 기대가 오늘의 나를 더 치열하게 살게 했다. 남편의 생계 부양에 의탁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무리한 빚을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35년 대출로 두 사람이 평생 묶이는 일은 벌어져서는 안 되니까. (...) 남편과 정서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더라도 두렵지 않게 됐다. 한 몸처럼 붇어 있는 부부가 아니라 현재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동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걸 그와 나누려 하지 않는다. 가족은 나를 완전히 충족해 줄 수 없음을 인정했다. 가족을 영원히 공동체가 아닌 인생 전체의 일부분에서 협업하는 공동체라고 여기니 의뢰로 많은 부분에서 관대함이 생겨났다.

부부란 무엇일까. '백년해로'라는 말은 낭만적이면서도 억압적이다. 그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왜 결합된 부부만을 완전하게 볼까. 독립된 개인을 온전한 주체로 볼 수는 없을까.

-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중에서, p172

작가의 첫 책 『엄마 되기의 민낯』은 내겐 최고의 육아서였다.

큰 아이를 키우며 육아서를 정말 많이도 읽었다. 읽으면서 불편함을 많이 느꼈지만 그래도 매달릴 데가 없었다. 그래서 읽었다. 어느 순간 육아서에서 말하는 엄마의 행복이나 자아 찾기 같은 말들이 엄마들에게 또 다른 폭력은 아닌지 고민하게 됐다. 그 즈음 작가의 책을 읽었다. 속 시원했다. 그래 그거지. 육아는 힘든 거지. 그게 당연하지. 그걸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엄마가 잘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게 이상한 거지 싶었다. 첫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는 어느새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첫 책이 아이의 탄생과 영아기 육아를 거치며 나온 육아 이야기라면 이 책 속엔 5살 이후부터 초등학생 이 된 아이의 육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역시 시원했다. 나도 자주 아이 앞에서 미친년이 되니까. 별거 아닌 일에 욱하기도 하고, 감정 조절이 안돼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중이라 '좋은 엄마' 프레임 앞에 위축되곤 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 괜찮을 것도 같다. 아이랑 좀 싸우면 어떻고, 엄마가 좀 덜렁대면 어떻고, 헌신하지 못하면 어떠랴 싶다. 엄마와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사람, 보살핌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고 싶어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개인의 마음가짐을 바꿔 먹거나 능력치를 높이기보다 자신이 위치한 배치를 바꿔보라고. 혼자 하는 육아가 힘들다면 혼자 하는 능력치를 올리기보다 어떻게든 나눌 사람을 찾아야 한다. 자꾸만 무료해지고 몸이 가라앉는다면 답을 육아 속에서 헤집으며 찾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아이와 노는 게 재미없다면 차라리 나의 놀이를 모색해야 한다. 몇 시간이라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 주말이면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지는 이유는 나를 둘러싼 물리적 조건을 배열하기 위해서다.

- <육아가 할만해 질 때, 힘들어질 때> 중에서, p197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슈퍼우먼으로 살 필요도 없다. 그냥 살면 된다. 작가의 말처럼 계속해서 엄마 능력치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대신 개인으로서의 능력을 높이려고 애쓰는 편이 훨씬 멋지지 않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육아 터널을 건너고 있다면, 지겹게 남편과 기싸움 중이라면, 여성과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 중이라면 이 책을 슬쩍 권해 본다.

『엄마 되기의 민낯』과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두 권을 같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

우리는 계속 자란다. 어렸을 때만 자라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매일 자란다. 신체가 노화하는 만큼 마음은 성숙해진다. 세상엔 '엄마'만으로 살기엔 멋진 일이 너무 많다. 조금 멀리 내다보며 살고 싶다. 지금 아웅다웅하는 삶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내 안의 나를 더 채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분담은 일의 종류로 나누는 게 아니어야 한다. 또 누가 얼마나 많은 일을 언제 하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중요한 건 시간에 대한 압박을 나누는 거다. 매일 하는 일에서, 시간에 쫓기는 일에서 나누어야 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나누어야 한다. ‘시간이 나면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을 나누어야 한다.

- P116

아이를 돌보는 책임감은 부부 둘이 온전히 나누어 가져야 한다. 아이를 보기 위해 남편의 시간 역시 아내만큼 쪼개져야 하고 그만큼 빠듯해져야 한다. 시간이 나면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아이를 보는 게 맞았다. 아빠도 주 양육자로서 정체성을 갖춰야 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수동적이었다. 다 년간에 경험 끝에 다정하고 친근한 말로 부탁하는 일도, 눈물로 호소하는 일도, 붙잡고 논리로 설득하는 일도 불가능함을 알았다. 직장일의 완강한 중력은 남편을 제자리로 돌려두곤 했다. 여성에게만 주어진 양육의 기본값, 그것이 있는 한 협상이 되지 않았다. 통보로 밀고 나갔다. "이것 좀 부탁해"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으로 배치를 구성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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