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 후회와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기 위한 심리학자의 마음 수행 가이드
변지영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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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건 언제나 생각'이었다!"

그랬다.

생각은 길고, 길어지면 생각에서 공상으로, 상상으로, 망상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그렇다. 걱정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일수록 좋은 생각으로 끝날 때보다 나쁜 생각으로 마무리되어, 마음에 쿵, 돌덩이를 하나 얹은 채 끝나게 된다.

아니, 끝나지 않는다. 돌탑을 쌓듯 계속 그 위로 쌓인다.

책 처방전이 있다면,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는 지금 내게 딱 알맞은 처방이었다.

그놈의 생각! 생각! 하면서 몇 주를 보냈으니까.



포스트잇을 얼마나 붙이면서 읽었던지.

일독을 하고,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만 다시 읽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는 '자기 주제'다.



우리가 반복해서 겪는 어려움과 문제들은 나 자신의 감정 습관, 생각 패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통해 증폭될 때가 많습니다. 내 특유의 경향성 그리고 그 경향성과 관련된 '자기 주제'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사건들에도 영향을 끼치지요.

이를테면 자기 주제가 '소외되거나 혼자 남겨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인 경우에는 늘 타인에게 맞추고 순응하다 보니 상대방이 함부로 대해도 꾹 참거나 웃음으로 넘기면서 갈등을 회피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

자기 주제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강하게 나가야 해' 인 사람은 '무시'와 관련된 신호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혹은 '아무도 내 어려움에 공감하지 않아'와 같은 주제로 시달리는 사람은 자기 문제로 시야가 많이 좁아져서 가까이 있는 친구나 가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신경증과 지혜의 다섯 가지 짝> 중에서, p50



자기가 신경 쓰고, 집중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생각하는 혹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간과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연일 뿐 아니라 스토리의 작가'라는 말은 그래도 크게 와닿았다.

내가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 갈 것이냐...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

"내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건 어떤 경험인가?"

"왜 나는 그걸 계속 문제 삼는가?"

"문제 삼는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자기 주제'를 명확히 알아내야 해결을 하든, 변하든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고,

책 속의 질문들을 옮겨보면서 나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회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며칠 동안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안 좋은 생각을 덜 하고 싶으면 그것과 관련된 씨앗에 물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저자는 씨앗에 물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멈춤'을 이야기한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명상'을 권한다.

(책 속에 저자가 알려주는 4단계 수행 연습 방법이 꽤 상세하게 적혀 있다)

책을 읽은 뒤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지 않은 상태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앉아 명상을 해봤다.

쉽지 않았다. '멈춤'은 한순간에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 몇 달 하다 보면 습관처럼 그것도 되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어렵지 않다는 거였다.

어려운 단어나, 누군가의 이론을 거론하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막힘없이 읽게 하는 문장 속에 담겨 있는 날카로운 지적.

날카롭게 지적하고 끄집어 냈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다정함.

혹시 이런저런 고민으로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면, 그 생각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라면,

'멈춤'하고 싶다면, 그 시작으로 이 책 속의 문장들에 기대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지금 그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려움 한가운데로 들어가 앉습니다. 불편한 마음과 마주합니다. 많은 행동보다는 정확한 행동이 필요하기에, 조용히 방에 앉아 자신과 천천히 얘기를 나눕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깊게 연결됩니다. 그런 연결은 우리를 본래의 지혜로 안내합니다. 기회는 밖에 있지 않고 출구도 밖에 있지 않습니다.
- P101

‘이 일에서 내가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관계는 감정을 일으키기에, 관계를 피한다는 것은 감정을 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힘든 감정에는 대개 ‘자기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굴리고 있는 바위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작업은 작기 이해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18

우리의 일상적 행위 하나하나가 위대한 수행의 기회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걸을 때는 걷는 행위가 되고 밥을 먹을 때에는 밥 먹는 행위가 됩니다. 청소를 할 때는 청소와 하나가 되고 대화를 할 때는 대화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서 괴로워할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오고 가는 것에, 생겨나고 그치는 것에, 순간순간 온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라고 하는 개념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성을, 나를 잊는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결과를 기대함 없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고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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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와의 티타임 - 정소연 소설집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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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초기 노래 중에 <9와 4분의 3의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큰 아이가 덕질 중인 아이돌이라 귀가 따갑게 얘기를 듣는 중인데, 이 노래의 제목을 듣고 나서 "야, 무슨 노래 제목이 그러냐!"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이다.

호크와트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매 새 학기마다 학부모들이 킹스 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학생들을 배웅한다.

이것도 검색해 찾아낸 내용이다.

정소연 소설가의 <<앨리스와의 티타임>>을 읽으면서 세계와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문'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과 저쪽을 오갈 수 있지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특정인들에게만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문.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문.

묘한 느낌이 들어 계속 검색창에 생각나는 단어를 넣고 검색했다. 그러다 발견한 게 킹스 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이었다.

그러고 나니 연쇄반응처럼 투모로의바이투게더의 노래 제목이 떠올랐던 거다.

숨겨진 9와 4분의 3엔

함께여야 갈 수 있어

비비디 바비디 열차가 출발하네

비비디 바비디 우리의 매직 아일랜드

이 터널을 지나면

눈을 뜨고 나면

꿈속은 현실이 돼

내 영원이 돼줘 내 이름 불러줘

- <투모로루바이투게더,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부분>

가사를 찾아 읽고 나니 어떤 이미지들이 떠올랐고, 다시 소설 <<앨리스와의 티타임>>으로 생각이 연결됐다.

어떤 사람들은 본 적도 없을 우주의 한복판에서 정연이 이처럼 흔들렸던 순간이 있었다.

정연은 잠시, 지영에게 저 틈 너머에 수많은 세계가 있다고,

지영도 원한다면 그 사이로 아득히 흩어지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맞지 않는 세계에서 오랫동안 버텨온 지영이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한지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었다.

그러는 대신, 정연은 지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한 번 더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리고 틈이 닫혔다.

- <비거스렁이> 중에서, p64

그러면서 계속 마음에 남은 단어가 있다.

'틈' 혹은 '틈새'

대체로 '틈이 생기다'처럼 쓰일 때 긍정보다는 부정의 느낌이 전해지는 이 단어가 소설에서는 자꾸 '희망'의 단어처럼 느껴지는 거다.

'벽'처럼 단단히 막혀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틈'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희망.

높기만 해 보이는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을 차근히 밟고 올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나게 될 희망.

어쩌면, 지윤이 다른 계단을 더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학교 밖으로 통하는 계단을, 서혜가 어디에 있든 서혜에게로 열리는 계단을.

사라진 사람들을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어쩌면 열리는 계단들을 처음 찾아낸 것은 지윤 같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몰랐다.

먼저 앞서 나갈 만큼 용감하지는 않은 사람들, 조금 느린 사람들, 저 밖에서 내 곁으로 무사히 데려오고 싶은 이가 있는 사람들.

학교에는 아직, 지윤이 밟아보지 않은 계단이 아주 많았다.

- <계단> 중에서, p108

궤도선이 천천히 내려앉더니 이윽고 멈추었다. 우주항의 출구를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나를 금세 발견하고 일어섰다.

아버지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우리 사이의 틈을 메우듯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을 당겨 잡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물컹한 젤리처럼 밀려난 공간에, 희미하게 온기가 퍼졌다.

나는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고, 나보다 훨씬 길로 큰 아버지의 손을 감싸 쥐었다.

- <귀가> 중에서, p246



SF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던 건 언제나 내 발이 '현실'을 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도 대체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내가 가능할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랐다.

정소연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계와 세계 사이, 틈과 틈 사이,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세계에도 결국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혐오 받는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

나는 언제나 누군가가 빈자리를 채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루트벤은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셸던 부인이 낯선 시공을 헤매며 만들어간 것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빈자리로 남은 세계가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앨리스와의 티타임> 중에서, p34

언제나,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고 나도 그렇다.

틈을 넘어가야 보일지도 모르는 내가 모르는 세계에 겁내지 않기를,

그 틈을 보아야 내가 아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보일 것임을,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말기를,

소설을 덮고 난 뒤 오래 한 생각이다.


"아주 천천히, 아주 적은 글을 썼다. 삶은 외롭고 용기는 드물고 선의는 귀하여, 삶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보기에 가장 외로운 것, 가장 진심인 것, 가장 귀한 것을 모아 소설로 만들었다.

소설이라는 이 배가 당신과 나 사이의 긴 항해를 버틸 만큼 튼튼하기를, 시공간을 넘어 언젠가 결국은 당신에게 도달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중에서,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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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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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게 하지 않는 책을 도대체 왜 읽는 말입니까?

서문에 적힌 문장이다.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는(p7) 다는 말이 좋았다.

작가는 그러므로 읽기가 중요하고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한다(p7)' 덧붙여 썼다.

그러려면 집중해야 한다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집중하는 읽기를 고요한 읽기라고 바꿔 써도 되지 않을까요?" (p8)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엔가 깊이 몰두해 있는 상태를 고요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경험에 의하면, 집중해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고요한 읽기란 역시 쉽지 않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뭔가 자꾸 주변이 산만해지고, 안 찾던 사람들이 나를 찾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은 왜 그리 떠오르는지.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설렁설렁 넘기게 되기도 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라, 많이 공감이 됐다.

자기를 중심으로 어떤 사건(일)을 재구성해서 생각하는 게 '나'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요즘 몇 가지 일들로 마음고생을 좀 했다. 나는 나를,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 고요와 반대로 조금 소란스럽게 대응했던 것도 같고.

여전히 조금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금 차분해졌다.

이 책은, 단지 독서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어떤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읽는 태도, 기억하는 태도, 말하는 태도, 치유하려는 태도, 인정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

행여라도 사람은 기꺼이 자기를 찾는다고 말하지 말라.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자기 자신을 찾지 않고 회피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까지 외면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달아난다. 자기 자신이 가장 멀리 있다. 끝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다. - P19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P89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기다림은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무위와 관계없다. 오히려 기다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적극적인 행위다. 말하자면, 노동.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일을 하느라고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 P118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주행 운전자의 그처럼 투철한 확신이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에서 비롯됐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는 마취했고, 분별력을 잃었고, 혹시 자기가 잘못 가고 있는지 돌아 볼(의심해 볼) 여유를 빼앗겼고, 오직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혔다. 자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만취한 사람과 같다. 제어 불능의 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데 다반사가 되었다. - P205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미리 결심할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쓰면 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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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다비드 칼리 지음,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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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헤어진(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그녀)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기억해 내고야 마는, 어떤 장면이.

너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널 기억해. 보고 싶고.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함께 먹든 음식, 함께 갔던 카페.

하나하나 선명히 떠올라.

마치, 고백하듯 읊조리는 장면들은 슬퍼서 아름다웠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던 해변에 다시 가고 싶어.

당신도 기억하지?

매번 만나던 개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잖아.

...

당신에게서 나던 숲 내음을 맡고 싶어.

여전히 그 향수를 쓰고 있을까?

...

여전히 나는, 당신과 별이 가득한 밤을 보내고 싶어.

한숨도 자지 않고 떠오르는 아침을 같이 맞이하고 싶어.

...

당신만 괜찮다면,

커피 한 잔 함께 마시고 싶다는 거야.

우리들의 카페는 기억하지? <책 속에서 발췌>



그리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슬프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기다리는 마음이, 언젠가 마주하게 될 순간과 맞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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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이야기하다, 언어와 춤추다
이시다 센 지음, 서하나 옮김 / 1984Books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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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스물두 개의 동사가 있다.

만지다 / 건너다 / 돌아보다 / 낫다 / 고르다 / 달리다 / 이야기하다 / 기다리다 / 노래하다 / 잊다 / 울다 / 떨어지다 / 쓰다 / 입다 / 돌아가다 / 밀다 / 가시다 / 뛰어오르다 / 자다 / 그만두다 / 듣다 / 춤추다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쓰는 단어이기도 하고, 매일 우리가 하는 행동이기도 한 스물두 개의 동사가 글 안에서 굴러다니다.

마치 입안에 단어를 넣고 굴리듯.

뭔가 질감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만났다.

거칠기도 하고, 매끄럽기도 하고, 폭신하기도 한 느낌인데 그래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흑백 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가 "모든 재료가 입안에서 다 느껴져요."라고 했던 음식평처럼.

다 느껴지는 게 싫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좋았다. 생생하게 감정이 느껴졌다. 실은 그래서 아팠다.

무심히 넘기고 싶은 감정이 있으니까.

아닌 척, 괜찮은 척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냥, 좀 그래도 되지 않아요?' 생각할 때마다 글이 붙잡아 말을 걸었다.

'아니, 그러지 마. 제대로 응시해 봐. 그리고 피하지 마.'

거울을 보니 눈꺼풀이 부어 있었다. 꽤 핼쑥해졌다.

만날 약속이 생기면 낫고 싶고 헤헤 하고 웃고 싶어져, 누워만 있을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 머물고 싶으니, 얼른 빨리 낫고 싶다.

이제 되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 P58

사람은 사라진다. 하지만 소소하게 줄곧 선택해 온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줄줄 흘리는 것은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숲에서 헤매는 헨젤과 그레텔. 왜 그런 집에 돌아가려는 거야, 하고 심통을 부리고는 했다. 살짝 취기가 돌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만약 죽는다면 이 집의 물건은 어떻게 할까?

방을 둘러본다.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남기면 곤란한 것들뿐이다. 아무래도 다 버려달라고 해야지. 그 돈은 벌어두어야 한다. 일할 이유가 생겼다. - P68

눈도 그치고 날도 개었다. 북풍은 기분 좋게 인적 없는 길을 달려 사라졌다. 울 정도의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있었다. 심하게 경직된 턱과 배꼽 아래의 힘을 빼고, 잠옷에 두꺼운 스웨터를 걸친 다음 복도와 주방의 마룻바닥을 닦는다. 걸레를 빨아 널면서 문득 생각한다.

차라리 우는 편이 나았을까?

싱크대에 선 채로 입을 우물우물 움직여 삶은 달걀을 먹는다. 마음은 한 번에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다 드러내는구나.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흩어져 있는 하얀 껍질을 바라본다. 작정하고 벗기며 실패하는데, 오늘 밤은 마치 상이라도 주듯이 말끔하게 벗겨졌다.

... - P132

기막혀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시위하며 쭈그리고 앉아 있을 속셈이었다. 매섭게 노려보는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었다. 얼마나 약해지는지, 꼴사납게 집착하는지, 한 번이라도 만나겠다고 얕은 수작을 부리는지. 몸부림치다가 훌훌 털고 제자리로 돌아가는지, 그걸 알고 싶었다. 아이와 다른 점은 결말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잃어도 살아 있다. - P120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각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졸린다. 뇌도 산소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두 번 크게 하품하고, 어느 쪽으로도 건너지 않고 경계에서 도망친다.

고민해 봤자 답이 없잖아. 나 혼자만의 일도 아니니까. 고민하는 친구에게 자주 했던 말이 낙하산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축축하게 젖은 창문을 들여다본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현실은 언제나 모두 감로다. 파탄, 모순, 깨끗하든 진흙탕이든, 모두 진짜다. 누구도 막지 못할 각오로 압박해 오는 사람은 애초에 이치를 따를 마음 따위 지니고 있지 않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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