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이야기하다, 언어와 춤추다
이시다 센 지음, 서하나 옮김 / 1984Books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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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스물두 개의 동사가 있다.

만지다 / 건너다 / 돌아보다 / 낫다 / 고르다 / 달리다 / 이야기하다 / 기다리다 / 노래하다 / 잊다 / 울다 / 떨어지다 / 쓰다 / 입다 / 돌아가다 / 밀다 / 가시다 / 뛰어오르다 / 자다 / 그만두다 / 듣다 / 춤추다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쓰는 단어이기도 하고, 매일 우리가 하는 행동이기도 한 스물두 개의 동사가 글 안에서 굴러다니다.

마치 입안에 단어를 넣고 굴리듯.

뭔가 질감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만났다.

거칠기도 하고, 매끄럽기도 하고, 폭신하기도 한 느낌인데 그래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흑백 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가 "모든 재료가 입안에서 다 느껴져요."라고 했던 음식평처럼.

다 느껴지는 게 싫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좋았다. 생생하게 감정이 느껴졌다. 실은 그래서 아팠다.

무심히 넘기고 싶은 감정이 있으니까.

아닌 척, 괜찮은 척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냥, 좀 그래도 되지 않아요?' 생각할 때마다 글이 붙잡아 말을 걸었다.

'아니, 그러지 마. 제대로 응시해 봐. 그리고 피하지 마.'

거울을 보니 눈꺼풀이 부어 있었다. 꽤 핼쑥해졌다.

만날 약속이 생기면 낫고 싶고 헤헤 하고 웃고 싶어져, 누워만 있을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 머물고 싶으니, 얼른 빨리 낫고 싶다.

이제 되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 P58

사람은 사라진다. 하지만 소소하게 줄곧 선택해 온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줄줄 흘리는 것은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숲에서 헤매는 헨젤과 그레텔. 왜 그런 집에 돌아가려는 거야, 하고 심통을 부리고는 했다. 살짝 취기가 돌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만약 죽는다면 이 집의 물건은 어떻게 할까?

방을 둘러본다.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남기면 곤란한 것들뿐이다. 아무래도 다 버려달라고 해야지. 그 돈은 벌어두어야 한다. 일할 이유가 생겼다. - P68

눈도 그치고 날도 개었다. 북풍은 기분 좋게 인적 없는 길을 달려 사라졌다. 울 정도의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있었다. 심하게 경직된 턱과 배꼽 아래의 힘을 빼고, 잠옷에 두꺼운 스웨터를 걸친 다음 복도와 주방의 마룻바닥을 닦는다. 걸레를 빨아 널면서 문득 생각한다.

차라리 우는 편이 나았을까?

싱크대에 선 채로 입을 우물우물 움직여 삶은 달걀을 먹는다. 마음은 한 번에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다 드러내는구나.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흩어져 있는 하얀 껍질을 바라본다. 작정하고 벗기며 실패하는데, 오늘 밤은 마치 상이라도 주듯이 말끔하게 벗겨졌다.

... - P132

기막혀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시위하며 쭈그리고 앉아 있을 속셈이었다. 매섭게 노려보는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었다. 얼마나 약해지는지, 꼴사납게 집착하는지, 한 번이라도 만나겠다고 얕은 수작을 부리는지. 몸부림치다가 훌훌 털고 제자리로 돌아가는지, 그걸 알고 싶었다. 아이와 다른 점은 결말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잃어도 살아 있다. - P120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각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졸린다. 뇌도 산소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두 번 크게 하품하고, 어느 쪽으로도 건너지 않고 경계에서 도망친다.

고민해 봤자 답이 없잖아. 나 혼자만의 일도 아니니까. 고민하는 친구에게 자주 했던 말이 낙하산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축축하게 젖은 창문을 들여다본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현실은 언제나 모두 감로다. 파탄, 모순, 깨끗하든 진흙탕이든, 모두 진짜다. 누구도 막지 못할 각오로 압박해 오는 사람은 애초에 이치를 따를 마음 따위 지니고 있지 않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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