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리 생추어리
장윤미 지음 / 아미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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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 장편소설 『숨길리 생추어리』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세상에서 받은 고통과,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상실을 함께 극복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버려진 동물을 돌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과 동물이 함께 하기 때문에 치유가 가능함을 따뜻하게 그린다.

돼지 축사에서 일하며 매일을 별 의미 없이 보내던 이십 대 청년 인진. 태국의 가족들을 위해 한국에 와서 힘든 노동과 멸시를 견뎌내는 외국인 노동자 꿍과 두리안.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와 고향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애쓰는 해유. 그들을 한곳으로 불러들인 건 해유의 아버지 동찬이 만든 숨길리 생추어리다.

아버지를 미워했고, 아버지를 떠났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추어리에 도착한 해유는 자신이 몰랐던, 모른 척하고 싶었던 아빠 동찬을 마주한다.

소설은 초반부 높은 값을 받기 위해 돼지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돼지를 도축하는 장면들을 과감 없이 표현하며 독자들에게 낯설어서 살벌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구제역과, 살처분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기후 환경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패스트패션 문제를 드러내고,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폭로하며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그러나, 소설은 무겁게만 흐르지 않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연민과 연대, 우정과, 애정을 품은 인물들로 그려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뜨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그들 덕분에 소설을 읽는 일이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토닥이고 감싸안아주고 싶었다. 숨길리 생추어리가 존재한다면,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 같았다.



해유는 도대체 아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사라지는 거."

아빠의 대답에 해유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아바는 말을 이어 갔다.

"사라지는 건 엄마가 마지막이야. 이걸 지키려면 품은리로 가야 해." - P132

"아저씨가 그랬어. 우리의 밤은 누군가에게는 낮이라고."

인진은 해유를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밤까지 누리면 누군가의 낮을 뺏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 P244

"사라지지 않는 게 어딨어요."
"없지. 하지만 타인의 힘으로 사라지는 건 안 되지."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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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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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문학을 읽을 때면 떠난다는 것, 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른 곳으로 이주한 적 없는 나는, 낯선 땅으로 이주해 삶을 꾸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듣고(읽고), 상상하고, 해석한다.

 

그 사이 대체로 많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대로 오역되고, 받아들여지고, 이해된다.

 

때론 디아스포라 문학(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은 틈새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폴 윤 작가의 <<벌집과 꿀>>은 그동안 읽었던 디아스포라 소설과 또 다른 틈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적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다. 소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주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선명하게 혹은 흐릿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를 천천히 쫓으며 소설 한 편 한 편을 읽게 했다.

 

 

작품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은 다양한 공간, 다양한 시간,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아우른다.

 

잘 모르는 장소, 낯선 지명, 낯선 분위기에 헤맬 것 같다가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문장과 그 문장이 그려내는 이미지들 사이를 유영하며 천천히 소설에 빠져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짧게 혹은 길게, 자의로 혹은 타의로, 어딘가로 떠난다, 자꾸.

'떠남''남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닌가,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나의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내가 정착해야 할 곳이 어딘지 명확하지 않아서, 그리워서, 슬퍼서, 외로워서...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너무 많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데에도 비슷한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불현듯 알게 된 게 있다면, 어떤 소설은 책을 덮은 뒤 스토리나 인물이 아니라 잔상이 남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거였다.

물안개가 가득 낀 강가에 서 있는 것처럼 뿌연데 그게 답답하거나 축축하게 느껴지지 않고, 물안개가 걷히면 무언가 보이겠지, 희망을 갖게 했다. 편안하고 다정하게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이들을 환대하고 싶어졌다.

 

 

위에 언급했던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주민'일 지도 모른다고 쓴 건,

탈북 후 영국에 자리 잡은 부모를 둔 한인 2세 부부 이야기를 다룬 <크로머>, 사할린 점에 끌려온 할아버지를 둔 조선인 3, 십 대 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고려인> 소설을 읽고 난 뒤였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낯섦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쫓으면서 정착할 집이 없고, 머물고 있더라도 이방인 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어도 집 없는 사람처럼 외롭고 내쳐지는 기분이 드는 순간, 떠나고 싶은 순간, 돌아갈 곳이 있을ᄁᆞ 되짚어 보는 어느 순간, 같이 있어도 외롭고, 슬픈 관계들 속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러 돌아오실 건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돌아오실 생각이라면,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내가 필요 없다는 거구나, 그렇지?" 아버지가 말한다.

"그래요." 막심이 말한다. "전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 <고려인> 중에서, p236

 

 

출소 후 다시 삶을 살기 위해 낯선 동네에 자리 잡으려는 청년이 등장하는 <보선>, 낯선 고려인 이주지에 임관한 장교 이야기를 담은 <벌집과 꿀>, 탈북한 뒤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코마로프> 세 편의 소설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소설이 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지, 우리가 읽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세상은 어떠한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가며 마음껏 읽고, 듣고, 상상하시길.

 

 

# 그가 아는 한 그는 혼자였다. 이상한 동시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는 그들의 얼굴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던 상사와 다른 운전사들의 얼굴을. 그다음엔 카드 게임을 하던 바의 주방 직원들과 빨래방 할머니의 얼굴도 잊어버렸다.- <보선> 중에서, p15

 

# 저는 그에게서 늘 보아온 익숙한 분노의 폭발을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얼굴은 온화하고 진지하면서도 상처받은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더군요. 그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부탁이니 우리를 그냥 놔둬줘요.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땅에서 ㅅ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당신이 와서 이 땅을 다시 차지하려 들기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다고요."- <벌집과 꿀> 중에서, p198

 

# 아버지, 저는 지금 당신이 어디 계신지 상상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도요. 왜 누군가는 저주받은 장소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지도요. 아이는 이제 멀리 있습니다. 온통 햇빛으로 둘러싸인 채, 아주 조금만 보일 뿐입니다. 숨겨진 자신의 왕국으로부터 돌아오던 벌은 이제 더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벌집과 꿀> 중에서,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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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너희들에게
이아진(전진소녀)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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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너희들에게"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우리 집에 그런 아이 한 명 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귀찮아,

나는 뭘 잘하지..

이런 말을 달고 사는 아이.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이는 충분히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잘 하는 것도 많다.

아직 그걸 아이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걸까. 이제 열네 살. 아이를 지켜보면서 천천히 기다리는 중이다.

한 편으로, 마흔여섯 나는 이제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알게 됐다. 물론 그럼에도 그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현실도 명확히 깨달았다.

한 3, 4년쯤 됐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싶기도 하고.

아이랑 같이 읽고 싶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를 내가 먼저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아이가 끝까지 꼭 읽었으면 좋겠기에, 어떻게 읽게 할지 고민 중이다. 책이라면 뒷걸음질 치는 아이라.)


'전진소녀'라는 닉네임임은 아버지가 지어주었다고 했다.

잘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왕 시작한 이 여정, 앞으로 보고 당당하게 전진해 봐! 전진하는 소녀." (p18)

아이에게는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당당하게 전진해 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용기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부모란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은 때로 편견을 갖기도 했다고. 집에 돈이 많으니까 유학도 보내고 하는 거 아니야?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의 말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릴 때 이혼한 부모, 자주 만나지 못했던 엄마. 할머니와 이모 손에서 자란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을 아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사회가 정상 가족이라고 규정하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아이 곁에 좋은 어른들이 있으면 충분히 아이는 바르게, 밝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거기에 당당하고자 하는 '주체성'과 '자립심' ,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할 거다.

청소년은 아니지만, 다시 진로를 정하기엔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책 속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극을 받았던 건 작가가 보여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당당함 때문이었다. 나의 아이가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고.

책 속 부록으로 '진로 Q&A'가 수록되어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작가의 유튜브를 구독하는 어른들의 진로고민 상담도 꽤 있어서 놀랐다.

내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자극을 받았듯, 어른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거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하나의 편견을 깨트렸다.

'나이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자극받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데 필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경험과 삶이다.'

앞으로 나는 색안경을 끼고 청소년들을 바라보지 않을 거다.

그들이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 같다고 지레 짐작하지도 않을 거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아이에게 부터.)


스물네 살 작가에게 마흔여섯 '어른'은 많이 배웠다.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부모로 어떻게 아이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당연히 청소년들에게는 강력 추천.

꼭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흔들리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될 듯.

자기 자신이 평범해 보여서 불행을 느낀다면, 그 불행은 ‘가짜 불행‘일 확률이 커. 더는 그것에 속아서는 안 돼. 만약 어떤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동요하거나 자괴감이 든다면 ‘내가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구나. 내가 지금 공허해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동경하고 비교하는구나‘하고 넘기면 돼. 타인이 최고일 때와 자신이 최악일 때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으니까. - P28

‘꾸미는 것‘과 ‘가꾸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 ‘너‘라는 ‘나무‘를 꾸미지 말고, 잘 가꿔나가길 바라. 거기서 맺은 열매들이 세상을 이롭게 할 거야. - P89

삶이라는 건 결국 단체 여행처럼 보이는 배낭여행일지도 몰라. 처음에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걷다가도 언제, 어느 시점에서 각자의 또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 그러니 관계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도, 또 너무 무겁게도 여기지 마. - P135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머리 앤>>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



"It‘s not what the world holds for you. It is what you bring to it."

"세상이 너에게 주는 게 아니야. 네가 가져오는 거야."



주어진 게 적다고, 남들보다 덜 가졌다고 불평하기 전에 네가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생각해 봐. 그것들을 나열해 보고, 하나씩 이뤄가다 보면 네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갓생‘의 중심에 네가 있게 될 테니까. - P159

‘해야 해‘보다는 ‘할 수 있어‘가 네게 더 어울려. 실패가 벽이 되어 너를 가로막고, 혹은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너를 괴롭힌다고 해도 너의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해. 좌절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딛고 일어설 수도 있다는 ‘선택적 가능성‘이 너를 움직이게 할 거야. 성공과 실패는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니까. - P191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이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또 없다는 걸 말이야. 우울감, 번아웃, 스트레스, 권태기 등 너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좌절의 형태는 정말 다양할 거야. 이런 친구들이 너를 찾아올 때는 놀라지 말고, ‘어차피 왔으니 적당히 놀다 가‘하며 그냥 반겨주면 돼. 나중에는 네가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사라질 거야.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너에게 불어닥치는 모든 현상 또한 자연스럽게 여기면 돼. 맑고 화창하다가도 어느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닥치겠지. 다행인 것은 영원한 태풍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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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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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동안 알코올중독 엄마의 딸로 살아온 여자가 있다.

술 때문에 딸의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한 엄마.

술 때문에 아무 데서 건 쓰러지고, 경찰의 전화를 여러 번 받게 한 엄마.

술을 사러 나가지 못하 게 한다고 과도를 휘두르던 엄마.

그런 엄마를 선명하게 미워했다고 썼다. 정확하게 사랑했다고 썼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그 문장이 너무 슬프고 기쁘고 찡했다.

이건 정말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서 그랬다.

'엄마'라서 징글징글하지만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이 양가적 감정이 뭔지, 정확한 단어로 설명할 순 없을지 몰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 그런 거 있어.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했어'. 하면서.

책 속에는 어린 시절의 저자가, 청소년기의 저자가, 어른이 된 뒤의 저자가 살고 있다.

그 옆엔 언제나 어른이었던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의지하고 싶었으나 의지할 수 없었던, 그럼에도 곁에 있어 좋았던 엄마가.

사랑인 줄 몰랐으나 끝내 완벽하게 사랑이었음을 알게 해준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대단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서 아이들은 무턱대고 엄마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어준다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그 사랑을 표현해 준다는 것을.

그래서 또 알았다. '엄마'가 가장 무서운 건 '자식'이구나.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수없이 되뇌던 말이 작가의 문장처럼 "어떻게 저런 사람이 엄마를 해냈을까"로 바뀔 만큼의 시간이 내게도 흘러갔다.

좋으면서 슬픈 것, 좋은 것과 같이 딸려오는 슬픔, 아이가 병렬로 놓은 좋음과 슬픔이라는 단어가 담긴 문장을 곱씹는다. 좋고 소중하기 때문에 때로 슬펐던 시간들. 슬펐어도 분명히 존재했던 빛나는 시간들. 빛나던 시간 안에도 그늘은 존재하고, 유쾌한 웃음소리 안에도 글썽이는 눈물은 있을 수 있다. 좋고 나쁨을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삶은 어렵고 복잡하다. 삶이 품고 있는 복잡성과 모순을 껴안는 것이 버거웠던 나의 시간들이 아이와 걸으며 떠올랐다. - <분홍색 나뭇잎> 중에서, p47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왜 미워만 해야 한다고, 사랑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서로를 괴롭혔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둘 다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하고.

손으로 밥을 차려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부터 내게는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과 지켜내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엄마가 날 버리지 않고 혼자서 기른 것처럼 나도 끝까지 엄마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엄마를 향한 나의 돌봄과 사랑은 늘 초라했다. (...) 빨리 엄마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왜 나는 엄마가 나를 홀로 키운 것처럼 정성을 다하지 않느냐는 마음, 이 두 마음은 늘 동시에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엄마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 엄마의 중독이 심해지지 않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을 내가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 <첫 외출> 중에서, p233


섣부른 짐작일지 모르지만, 저자는 자라면서 자주 "착하구나."같은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듣지 않았을까. 엄마를 잘 챙기는구나, 엄마가 못 챙겨도 스스로 혼자 잘 하는구나, 너 참 착하구나, 그런 말들과 시선들. 내가 자주 들었던 말. 그래서 지긋지긋했으나, 벗어나기 힘들었던 말. 여전히 가장 취약한 말.


슬프고 기쁘고 찡한 감정으로 읽다가 끝내 참지 못했던 마지막 단락. 다시 태어나 엄마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엄마를 선택하겠다는 저자의 말에 움켜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면서 마음이 요동쳤다.


"내게 한계였던 동시에 나의 잠재력이었던 나의 엄마. 나의 토대, 나의 기반."


우리가 끝내 엄마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엄마를 재창조하는 것만 같아요. 나는 그녀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 제게 되물어요. 그러면 저는 놀라울 정도로 확신해요. 내가 아는 모습이 엄마의 다라고요. 거만해 보이나요? 그런데 진짜예요. 나는 엄마를 깊숙이 알아요. 나는 엄마의 모든 것을 보았어요. 아니, 모두 안다고 하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몰라서 하는 말일까요. 누군가 제 글로 표현된 엄마를 보았을 때 입체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제 안의 엄마는 고정적이에요. 늘 그 자리에 찰싹, 끈질기게 제게 달라붙어 있어요.
- P13

저 사실 엄마가 죽고 나서 시원했습니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가슴을 부여잡고 우는 동시에 드디어 중독의 족쇄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의 아픔보다는 죽음이 가져온 해방감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이제 새벽에 경찰서 연락을 받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더이상 엄마가 외상한 술값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겠구나. 엄마의 몸과 마음이 다칠까봐 그만 불안해해도 되겠구나 하는 해방감이요. 엄마를 떠올리면 슬픈데 그립지는 않습니다. 27년을 중독자의 딸로 살면서 감내해온 고통은 엄마와의 이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고통도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랑도, 이런 모녀도,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겠지요.
- P159

불행과 다정이 뒤섞인 시간들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때는 묻어두기 바빠 알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꺼내어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색을 입히고 냄새를 씌우면서 그때의 내가 되는 일이었다. 나의 불행을 기억하고 쓰는 일. 쓴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불행을 껴안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죽이고 있던 시간들이 숨 쉴 수 있음을 느낀다. 불행이 내뱉는 숨에 의지하여 써 내려갈 수 있는 시간과 글이 있다면 여전히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좋을 것이다. 불행이 숨이 되고 글이 되어 내쉬어지는 날들이 더 많이 오길.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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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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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아이 앞에 나타난 커다란 손.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내어주고, 보살펴 주는 손.

아이가 어릴 땐, 그 안에서도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무럭무럭 자란 아이는 말을 할 줄 알게 되고, 자신을 돌봐주었던 '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 손은 여전히 보드랍고, 안전하지만 아이는 궁금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나도 세상에 나가보고 싶어요" 

"그건 힘들 것 같구나, 세상은 너무 위험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단다."

"무서운 곳인가요?"

"무서운 곳이지."

'세상'은 무서운 곳, 이라고 알려주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다.

아이가 보고, 느끼고,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할 '세상'은 적어도 '무서운 곳'이면 안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부모'의 마음으로 공감이 된다.

나의 아이들을 완전무장 시키지 않은 채 내보내도 괜찮을 걸까.


"세상은 정말 위험한 곳인가요?"

"몇 번을 말했지만 그렇단다."

"하지만 궁금해요."

"그럴 필요 없단다. 너는 나와 있는 것이 안전해. 모든 건 널 위해서야."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는 그럼에도 직접 그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궁금하고,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언제가 내 품을 떠날 나의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어쩌면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럼 어른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아무리 붙잡아도, 언젠가 '세상'으로 나갈 아이.

이미 '세상'에 나와 부대끼며 살고 있는 어른.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과 '눈'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앉아 읽으면 좋겠다.

"네가 느끼는 세상은 어떤 곳이니?" 하고 묻고,

아이가 느끼는 세상에 가깝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을 직접 보고 싶어요."

"넌 세상을 몰라."

"그래도 상관없어요. 모르면 알아 갈 거예요."


씩씩하게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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