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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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9 곽재식

열흘 동안 독후감을 안 썼다니. 그간 사모은 책도 읽고 싶은 책도 많았는데 게다가 전자도서관 신간 업데이트까지 되었는데 그렇게 됐다.
탓하자면 이 책 때문이야. 나는 남 탓도 내 탓도 잘 해.

저자의 글은 알라딘 기획물 열일곱에 실린 짧은 소설 하나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지금은 기억 안 나는데 꽤 괜찮게 쓰네? 하면서 작가의 책도 기회되면 한 번 봐야지 했었다.
막히면 고양이! 라는 내가 싫어하는 치트키의 원 출처가 이 책인 걸 알고 어디 읽어보자 했다.
음. 열흘 간 절반을 겨우 읽다 말다 했다. 확실히 1.상상 2.경험과 변주 읽을 때는 힘들었다. 아 재미없어. 딱히 이거다 싶은 방법도 없어. 내가 제목에 부합하지 않은 인간인데 책을 잘못 골라서 이 모양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그 열흘 간 다른 일로 바빴고 정신이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도 빌린 거 다 읽어야지 하며 펼쳤다 덮기를 반복.
오늘 3.연마와 4.생존 부분을 읽는데 여기서부턴 순식간에 다 읽었다. 작가가 오랜 기간 쌓은 노하우를 남에게 애써 글로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 정도면 제법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뒷부분은 바로 도움은 안 되더라도 공감되는 게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본 편은 아니다. 읽어도 아 넌 그러니? 하고 후루룩 잊어 버린다. 그래도 남의 말 들을 필요가 있다, 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기 시작한다. 워어 다 늙어서 조금씩 철이 들고 있나 보다. 남의 말 듣고 바꿔 볼까 생각이 들 즈음엔 아마 썩어 흙이 되겠지?
여기 평생 아집으로 뭉쳐 바늘도 안 들어가던 놈이 한줌 먼지가 되었습니다. 인류사와 지구사에 그나마 도움이 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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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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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9 김금희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김애란 산문집을 팔았다. 한 달도 안 된 책 딱 절반값 받았다.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에 김금희 소설집이 있었다. 단편 두 편만 읽고 여태 한 권도 안 읽은게 너무하지 싶어 민트색 책 뽑았다. 3년 전 나온 소설집 매매가가 방금 판 신간 매입가보다 비싸 빈정 상했다. 다시 꽂아놨다 20%할인 쿠폰 있는 거 기억하고 또 다시 꽂은 자리 가서 뽑았다. 이제 이백원만 더 보태면 살 수 있군. 사야지. 사실 구병모 신간 두 권도 팔았지롱. 그래도 단 하나의 문장은 남겨뒀다.

김금희 진작 읽을 걸 지금이라도 읽어 다행이지, 김애란 팔고 김금희 사길 잘했네 잘했어 얼쑤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두번째 읽는데 좋았다. 필용이는 짜증나지만 불쌍하기도 했다. 양희는 불쌍하지만 짜증나기도 했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이렇게 쓰다니. 나한테 부끄럽지 말고 나무같은 거나 보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조중균의 세계
이것도 좋았다. 지은이 안 쓰여있는 시의 시인이자 꼼꼼한 편집자, 옳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아니라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자리는 사라지고 심드렁하게 그러려니 하고 참는 사람만 남는 회사 이야기. 가만한 날이 그래서 마음에 들어서 김세희 소설도 사서 아직 읽는 중인데 이거는 훨씬 묘했다. 절묘했다. 해고자 대기발령자 이 책 안에 되게 많다.
-세실리아
세실리아도 정은이도 슬픈 이야기였다. 이런 후일담 회고담은 너무 외롭다.
-반월
역시나 편지쓰는 사람은 소설에만 남은 것 같다. 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다들 나몰래 답없는 편지를 주고 받고 있나. 마무리는 꿈을 꾸고 그대로 쓴 느낌이다. 섬의 고립감과 본 적 없는 동수와 이모의 이미지 매점 아저씨 죽은 토끼 묻어주기 뭔가 분위기가 꿈같고 영화 같았다. 선글라스가 울었던 눈 감추는 용도가 될 수 있는 건 여기서 처음 (개 기다리는 데서 또 한번) 알고 솔깃했다. 하나 사서 끼고 다니며 울어봐?하고. (청승)
-고기
그냥 고기일 뿐이에요. 여기 나온 정육 아저씨, 개 기다리는 소설의 경찰, 병원 소설의 경호원, 아저씨들 특유의 상호작용할 때의 그 느낌을 잘 그렸다. 사실 나는 어디서나 씩씩하게 찬바람 날리며 말도 못 붙이게 하고 다녀서 그런 추근댐에 가까운 경험은 거의 없지만 어떤 위압감 폭력의 징조 같은 건 도처에 있다.
-개를 기다리는 일
황정은 소설에서도 그냥 개야 했는데 여기서도 그런다. 그런데 같은 개라도 다르다. 개에 대한 애정은 난 잘 모르겠다. 부인과 아이를 두드려 패는 아버지는 좀 일찍들 죽거나 없어졌으면.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런 제목인지 방금 알았네. 옥수수밭의 이미지, 옥수수 꺾는 아이들, 인터스텔라가 별 관련 없는데도 생각났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라고 했던 거도 문득 떠올랐다. 어디지. 누구지. 부모 없이 제 몫을 찾아 사는 어른이 된 아이 이야기를 보면 울어야 할지 대견해야 할지. 고아들은 이 책에 또 자꾸 나온다.
-보통의 시절
부모를 죽인 원수 김대춘을 찾아가는 고아였던 네 남매와 상준이 이야기. 대행부모지만 폭군이었던 큰오빠와 언니, 작은오빠, 나. 작은오빠 캐릭터가 좀 심하게 희미했다. 상준이보다 더. 마지막 장면 보면 약간 친절한 금자씨 생각났다. 이런 성탄절. 성탄이 나랑 뭔 상관있나.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고양이 치트키는 싫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니고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아였던 사실상 대기발령난 가구회사 모과장이라 이 소설도 좋았다. 마지막 굴뚝 올라가는 장면은 좀 슬프고 진부해서 싫었다. 난쏘공이야 고공농성이야 올라가게 하지마 그러지 마 에이씨 흑흑.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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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21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금희 짱이에요.... 그리고 곧 신간 단편집 나온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syo는 아주 춤을 춘다는 소식이구요.

반유행열반인 2019-08-21 12:48   좋아요 0 | URL
syo님은 안 보이시겠지만 댓글 위에 ‘syo님도 너무 한낮의 연애를 좋아합니다’ 하고 알라딘이 먼저 오지랖 떨었어요. 저도 같이 춤출게요. 얼쑤 절쑤

syo 2019-08-21 13:07   좋아요 1 | URL
저도 보여요. 다른 데 다니면서 자꾸 syo한테 syo님이 이걸 좋아하고 저걸 좋아한다고 알려주는 알라딘놈의 눈치없는 멘트를 자주 발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8-21 13:09   좋아요 0 | URL
저는 그거라도 반가워요. 진짜 syo가 없을 땐. 처음에는 커피콩 기르느라 바쁜거였나! 진짜인가!하고 홀딱 속아 넘어감...

2019-08-2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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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황정은

디디의 우산 로고?가 새겨진 긴 유리컵을 여름 내내 잘 쓰고 있다. 콜드브루 파우치 탁 까 넣고 흑당시럽 호랑이 무늬로 뿌리고 우유 붓고 얼음 넣고 마시면. 캬. 살이찐다. 여름 내내 라떼와 1일1월드콘으로 3킬로 쪘다. 멍멍꿀꿀
오늘 읽은 황정은의 장편소설. 그리 길지 않아 잘 읽혔다.
도시를 떠도는 여장남자 앨리시어가 과거를 떠올리는 이야기이다.
고향이라 할까 고모라 아니 고모리.
가족. 그저 노인인 아버지. 씨발 년이 되어 앨리시어와 동생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어머니. 병신 취급 받으며 병신이 아니라 항변하는 동생.
개장 속 개. 새끼 낳고 먹히기 위해 거기 있는 개
고물상 아들 고미. 앨리시어의 유일한 친구
하수 처리장의 악취로 가득한 마을
벗어나고 싶은 나무 그늘 같은 마을과 가족
도시에 악취를 남기는 앨리시어
나무 아래 구덩이에서 한없이 떨어지는 소년 앨리스

야만의 가족 서사와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 아이와 어른이 되었지만 고통 받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여기 또 하나 추가.
그래도 황정은이라 잘 썼고 농축된 씨발도 넘쳐나지만 과하지 않았다. 쓴입은 달달한 것으로 달래질란가. 안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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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밀란 쿤데라 전집 14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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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밀란 쿤데라

할아버지께.
열일곱 살 쯤 할아버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었습니다. 아직도 1-2년에 한 번씩 읽습니다. 십구 년 동안 할배가 자식처럼 세상에 뿌린 책들을 하나씩 캐다 읽었습니다. 이번 만남으로 (민음사가 저작권을 독점중인) 한국어판 할배책은 다 모았습니다. 아직 엄마 집에 있는 커튼이 남았으니 다 읽진 못했네요. 끝이 아니면 좋겠어요. 5년 전 할배 신작이 나왔을 때의 놀라움을 다시. 그냥 제 욕심입니다.
체코의 역사, 유럽의 예술, 음악과 미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동아시아 토박이입니다. 할배가 글을 체코어로 쓸까 프랑스어로 쓸까 궁금했는데 대부분 프랑스어로 쓴 것을 아주 최근에 알았습니다. 이런 무식쟁이인데도 내가 모르는 소설가, 미술가, 음악가에 대해 할배가 쓴 글을 읽는 게 즐겁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예 모르겠는 건 아니고 조금은 알 것 같은 게 신기합니다.
지난 번(이라고 해도 사 년 전) 배신당한 유언들을 읽고 카프카의 ‘성’을 읽었습니다. 사놓고 먼지 쌓은 ‘소송’도 읽어야겠습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전자책을 사서 5년째 보다 말다 하는 중입니다. 올해 안에는 보려고 합니다. 이번 책에서도 라블레를 언급하셨는데 지난 번보다는 조금 와 닿습니다. 전자책에는 주석이 빼곡이 달려 있어 웃지 못하는 제게 ‘이건 말야 이런 걸 비꼰 거야’하는 개그 설명충을 동반한 느낌이지만 그나마 없었으면 더 맥락없는 독서로 괴로웠겠죠.
이번 만남은 역주가 하나도 없는데 그게 오히려 깔끔하니 좋았습니다. 할배와 마주한 자리에 누가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 했더라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텐데 다행입니다.
인터넷 검색은 조금 했습니다. 세상 좋아져서 할배가 말하는 작가의 그림이나 음악가의 작품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잊혀진 채 어딘가에. 머나먼 동아시아 방구석 칩거자에게는 작은 행운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글. 저는 철학자 이름으로만 들었는데 윤이형의 소설 셋을 위한 왈츠에 잠시 나오고 빅뱅의 탑이 랩에서 읊어대서 동명의 화가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찾아볼 생각을 한 건 할배 글 덕입니다.
사실 책의 첫 몇 쪽 넘겼을 뿐인데 격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배의 과거 강간 욕망에 대한 서술 때문입니다. 강간 비유는 같은 글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베이컨의 그림을 보고 나서 그런 표현이 터무니 없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만. 그럼에도 굳이 폭력과 공포의 재현을 위해 자랑도 아닌 추한 욕망을 뒤집어 까보였어야 했을까 의문입니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당사자 기분은 어땠을지. 화장실 물소리와 불편한 속과 비밀경찰에 시달린(릴) 불안에다 강간이라니. 제 뒤집어진 속은 어쩌실런지. 이 변태 할방구야. 그러니 할배가 카레닌 그린 걸 보고 자기 ㄱㅊ그린 거 아냐 하는 소리를 한 제가 무리는 아닌 겁니다.
...죄송합니다. 미안 카레닌.

할배가 소개하신 친우 에르네스트 브롤뢰르의 작품들도 찾아보았습니다. 한국어 검색은 도저히 안 되어서 몇 번 실패 끝에 ernest breleur martinique 란 검색어로 그의 얼굴과 회화와 설치 미술의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할배가 직접 그의 아뜰리에에서 만난 천사가 하얀 오줌 눈 캔버스나 누운 초승달이나 뒤집어진 티셔츠 같은 밤은 못 찾았지만. 흥미로웠습니다.
마르티니크라는 지역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관련된 검색 결과는...마약 밀매에 (주장대로라면 잘 모르고) 얽혀 프랑스에서 체포되어 마르티니크의 감옥으로 보내져 수감 생활한 한국 여성의 (기자가 재구성한 가상)수기를 덕분에 읽었습니다. 그걸 읽고 그 섬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제 외모와 언어의 한계가 제가 겪을 미래를 미리 제한하네요.

지난 번 배신당한 유언들 덕에 야나체크와 스트라빈스키를 알고 몇 곡 찾아 들었습니다만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들은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속 푸가가 포함된 악장들은 꽤나 좋았습니다. 처음 듣는 베토벤 아직 듣지 못한 베토벤이 산더미인 걸 알았으니.
Beethoven-Sonata Op. 110, Adagio ma non troppo- Fuga
https://youtu.be/fGfT6tMKUUY

Iannis Xenakis - Metastasis
https://youtu.be/SZazYFchLRI
크세나키스의 음악 또한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나라 잃은 충격과 기묘한 위안. 음악을 들으니 조금이나마 알 듯했습니다. 하여간 귀신 같이 이상하게 독창적인 건 잘도 찾아내. 그런 의미에서 샤무아조의 소설 훌륭한 솔리보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만 찾아보니 아직 현존하는 한국어판 샤무아조 작품은 없어요. 엉엉.
말라파르테의 원-소설은 아쉽게도 가죽은 없지만 이 책에 파멸로 소개된 책이 망가진 세계라는 한국어판으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읽어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할배가 멋지게 무지개 가루 발라 압축 요약해서 그렇지 찬사를 보낸 책 대부분 실제로 읽으려 들면 기가 질려 덮고 말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도 할배가 언급하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건 참 신기합니다. (돈 받고 서평 블로거 하셨더라면 성공...아,아닙니다.)

이번 책에서도 야나체크를 향한 첫사랑을 한 부에 할애하셔서 찾아 들었습니다. 콘체르토랑 교향악 한 곡씩. 유튜브가 요물이라 Janacek opera 검색하니 영어 자막 달린 예누파랑 꾀밝은 여우 풀버전까지 나왔습니다. 아주 한가해지는 언젠가 감상해 볼까 합니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 죽은 뒤에 괴롭힌 것도 모자라 여기서도 빠지지 않네요. 개구리 빼고 영원 회귀 찬미 하자는 뚱딴지 소리를 야나체크에게 직접 했다니...한국말에는 넌씨눈이라는 적정 표현이 있습니다.
무슨무슨파에 속하지 못한 외로운 천재들에 대한 사랑, 독창성과 상상력과 우스운 것들에 대한 찬사. (자신과 같은) 쫓겨나고 배척되고 인정 받지 못한 이방인 예술가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런 걸 아낌 없이 적어 두셔서 저도 손가락(끝 손톱)이나마 조금 적셔 봅니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내 성함이 베라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30주년 특별판 카레닌 표지에 괜히 심통나서 출처가 어디냐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밀란쿤데라 에이전시를 통해 “There is a very important dog in the novel – his name is KARENIN – he was the author’s inspiration and when the idea came we cannot say.” 라 답해 주셨다는 아내분…)
자녀나 손자가 있는지 어쩐지도 전혀 모릅니다. 아마 없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도 충만한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요. 그간 펴낸 수많은 글들과 평생을 함께한 예술과 (이제는 많이 돌아가셨겠지만 함께 예술을 말하고 만들던) 친우들과 그들과 보낸 날의 기억.
할배의 삶의 조각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조각보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다른 삶과 다른 세상과 할배가 느낀 아름다움들을 저도 느낍니다. 아직은 키치하고 통속적인 (할배가 싫어하게 만든) 것들이나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렇게 살고 있지만 아직은 새까맣고 새파란 날들입니다. 할배가 살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읽지 못한 것들을 누릴 시간 밖에 자랑할 게 없어요. 요것아 가는 데 순서 없다 하실지 모르지만 당장은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쁩니다. 할배 신작이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아주 많이 슬픕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날들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한국에서 삼십 대 중반 여성 애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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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한 마음 - 전중환의 본격 진화심리학
전중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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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전중환

올해 나온 뜨끈한 신작이다. 바탕이 된 기획 연재도 16-18년에 진행되었고, 그래서 진화심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최신 예시를 들어가며 친절히 설명해준다. 재미있다. 한편으로는 한 두해만 읽힐 거 아닌데 이렇게 요즘 유행하는 티비 프로나 연예인, 정치인을 마구 남발해서야 금세 한물 간 취급 받을 거 걱정 안 되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땐 또 뭐 새 책 내겠지...내가 왜 걱정하냐…

그동안 봐왔던 사회과학 분야들은 되게 소심하다. 경향성, 상관관계, 통계적 유의미함만 얘기한다. 거대 이론을 만드는데 인색하고, 심지어 섣불리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인과 관계를 단정하는 건 더더구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딴청한다. 그러면서 뭔 학문이야...뭔 과학이야...안 쪽팔리냐….제대로 통제도 안 된 실험에서 인간을 가지고 뭘 제대로 말하겠냐...그런 오명도 많고 억울함도 많다.

 진화심리학은 자신만만하다. 어떻게, 가 아니라 왜!!!를 말하겠다고 감히 나섰다. 가설에 대한 과학적 증거도 제법 들이댄다. 탄탄해 뵌다. 거기다가 제법 말이 된다. 설득된다. 오오!

설명하려는 분야도 엄청 넓다. 거의 인간과 사회와 관련된 마음 전반을 다룬다. 
먹거리에 대한 너의 호불호는 말야…
네가 왜 그런 놈/년들한테 꼬이냐면...게다가 니가 한 군데 뿌리 못 박고 할랑할랑대는 이유는….
왜 우리가 가족이라면 다 내줄듯 하다가도 죽어라 싸우냐면…
애기가/동물이 왜 귀여워죽겠냐고?
어려운 놈의 사회생활, 믿음, 의심, 우정, 리더십 그런게 왜 이렇게 생겨 먹었냐면….
학교 공부가 왜 어렵냐면…
문화가 달라서! 가 아니라 문화가 왜! 다르냐면…
왜 보수/진보/도덕/성격/정신질환은 이 모양으로 나타나는가?

이쯤되면 거의 전지전능의 학문 아닌가? 물론 다 설명한다면 이거야말로 예언서급 인간의 비밀을 통째로 밝힌 만능 저서겠지...정답까지는 아니라도 진화에 수많은 질문을 푸는 실마리가 있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이런 자신만만함 때문인지 욕도 바가지로 처먹고 오해도 많이 받는 학문같다. 진화와 유전자에서 기인한다면, 그걸 이유로 모든 못된 것들에 면죄부를 주는게 아니냐! 원래 그렇다!하고 나몰라라 하는 게 아니냐. 저자는 그런게 아니라고, 왜 그런지 이해하는 것이 나쁜 부분을 그러지 않도록 고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어떤 부분은 오해라고 말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어미 뿐 아니라 많은 친족이 함께 하는 육아, 수유와 수유 중단에 대한 엄마와 아이의 힘겨루기 같은 부분은 당장 직면한 부분이라 관심이 갔다. 
어떤 때 어떤 이성에게 끌리는가, 왜 충성 또는 한눈 파는가, 는 사랑과 연애와 욕망에 대한 인간의 보편 관심사니 역시나 재미있었다. 물론 모두 납득이 가는 게 아니고 가장 욕을 처먹을 수 있는 부분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담하게 과학이다!!하고 지르니 용감해 보이기도 한다. 
우울증 발생이 진화를 통해 남은 것에는 어떤 번식 적합성이 있었을까에 대한 가설들이 흥미로웠다. 직면한 문제에 대한 고민, 앓고 있는 다른 질환에 대한 회복 등을 위한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아픈 거구나, 언젠간 나을 수 있겠구나, 아픈 게 조금이나마 어떤 기능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위안이 된다. (반대로 아픈 이를 지켜보는 마음도 조금 더 견딜만 할 것 같다)

+책 속 오류
울진 반구대 암각화-> 울산, 울주 반구대 암각화
나는 암구대 반각화 이렇게 말이 헤깔려 나올 때가 많은데 갔다 온 뒤론 동네는 확실히 기억해. 

종의 기원 읽기를 더 미루지 못할 거 같다. 완역본은 이제야 나온 거 같고 중고로 산 중역본 빽빽한 글씨에 꼬질이 하나 있는데 도전해보다 안 되면 그 때 신작을 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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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13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있는데. 왜 사기 전에는 매력적인데 사고 나면 책장으로 직행시켜 먼지만 쌓는지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해답도 들어 있겠죠?

반유행열반인 2019-08-14 07:39   좋아요 0 | URL
저는 빌려봤기 때문에 반납일에 떠밀리듯 봐서 먼지 안 쌓인 거구요. 전중환 선생님은 그것도 진화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책을 코로 봐서 입을 다물기로 합니다. (말을 아끼고 많이 성숙했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