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판매자 중고책 사는 게 취미다. 원래 관심 있던 책을 가지고 있는 판매자의 목록을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다 훑는다. 분야는 과학, 소설/시, 만화 위주로. 저렴한가? 들어 본 작가인가? 들어 본 책인가? 왠지 끌리는가? 나름의 허술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뭉터기로 집어온다. 전문 판매자도 있지만 본인이 읽거나 소장하는 책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어떤 판매 목록을 보면, 와 저 사람 서재 통으로 굴착기 같은 걸로 퍼다가 우리 집에 넣고 싶다. 안 볼 거면 저 주세요… 조금만요… 


 그렇게 퍼 온 남의 책장. 뭔가 알라딘 이웃이 댓글로 어머머 그거 제가 판 건데- 그러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정작 나는 쌓기만 하고 잘 안 내보낸다. 책과 함께 고인다. 묵는다. 썩는다. 

유수님이 근래 읽은 시집 중 좋았다고 해서 그럼 또 새겨 듣고 주섬주섬 쟁여든다. 겉지에 아주 얇은 막 같은 좀 예쁜 겉옷?같은 게 있었는데, 알콜 티슈로 닦았더니 쭈글쭈글해졌어…으앙 S급 중고 B급으로 만드는 내 손…옷도 물건도 이상하게 내가 쓰면 닳고 보풀 일고 부서지고 잉크 묻고 그렇다. 


일본 소설 많이 안 봐서 아, 좀 보자, 이러고 들어본 작가는 눈에 띄는 대로 사는데, 사기만 하고 읽질 않아서 많이 안 본 사람 그대로이다.












예전에 아직 책 많이 안 볼 때, 무슨 책인지 안 밝히고 미스테리 박스처럼 책 파는 마케팅 페이스북에서 보고는 혹 해가지고 읽게 된 책 중 하나가 베를린 누아르 3월의 제비꽃이었다. 같이 온 로맹가리 마법사들은 아직도 안 읽었고, 뭔 문학상 수상한 신인 장편 소설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베를린 누아르는 엄청 재밌었는데 뒷편이 안 나온 상태라 으아 아쉽다, 이러고 있었는데, 2, 3편 나중에 나온 걸 어제 알았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베를린 누아르 2권도 1권 만큼 흥미 있을지, 그새 내가 변했을지 읽어봐야 알겠다. 








주기율표 좋다면서 그럼 동명의 책도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한참 눈독들이다 최저가 판매에 꽂혀 이 서가를 뒤지기 시작했고… 한 권 싸게 사려다 과소비 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충격적인 건 책을 받아들기 전까지 이게 과학책인 줄 알았다는… 같이 산 책 릴리트도 같은 작가 소설이라길래 과학자가 소설도 쓰나? 헤헤 궁금해 하고 샀는데 아무래도 난 바보가 아닐까. 








중학생 때 아큐정전 등등 여러 단편이 담긴 범우사르비아문고판 조그만 노신 소설집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기억나는 건 구구해자! 하는 편집증 환자의 마지막 외침 뿐… 그래서 20년도 더 지난 후에 읽는 루쉰은 어떨까, 작년에 나를 위로하던 루쉰의 말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그 말이 자꾸 생각나서 샀다. 그런데 새로 나온 산문집 번역은 같은 글을 다르게 번역했는데 말맛이 영 나랑 안 맞아서 제꼈다. 참 저 아큐정전 실린 사르비아문고도 아직 가지고 있는데 왜 또 삼…




볼라뇨 안 볼 거라매… 표지 그림 어디 기사에서 본 화가의 독특한 그림!!! 찾아봤다 제임스 앙소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보고 입 찢어지게 웃던 그 그림 그린 작가였다.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308260459i

이상하게 살아생전 미움 받고 구박 받던 사람들이 남긴 것들에 관심이 간다. 그런데 리디북스에 별점 짠 거 보고 뭔가 좀 걱정되기 시작…


이스마엘 카다레는 이제 그만 좀 모으고 읽지 그러니… 부서진 사월 인상 깊게 읽은 이후 열심히 모으다가 또 한 권 추가만 하고…이젠 진짜 읽지 않겠니… 제목 보니까 왜 못 떠나나 궁금해져서 그만…


 이렇게 내 공간은 줄고 어느 곳은 그만큼 비었겠다. 거긴 또 새 책이 들어찰지, 가뿐하게 비우고 넓어진 공간에서 이미 읽은 책들 치운 홀가분한 기분만 남을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수 2023-10-19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르비아문고(사루비아?) 있음. 넘기다가 책장 타노스 스냅마냥 스스스 소멸할까봐 잘 안펴보지만요 ㅋㅋ

오.. 오대수 그림!!

반님 남의 서재 1/3칸 비우는 이런 글 보면 보낸 분은 어떤 생각하실지도 궁금하여요. 오예하고 치킨시킬지 이걸 왜 사지 아몰랑할지 올려뒀지만 막상 보내려니 아쉽기도 할지!!!

반유행열반인 2023-10-20 10:09   좋아요 1 | URL
저는 처음에는 범우사 책이라 범우사 르비아 문고 인 줄 알았어요 오랫동안 ㅋㅋㅋㅋ 저걸로 개빻은 한국문학 시리즈-김유정 이효석 현진건 등등 유서깊은(?)한국근현대문학 많이도 봤었는데... 그 정도는 안 소멸할 걸요? 나 요즘 우리 작은꼬마 애정 도서가 나 일고여덟살에 보던 전래동화책 ㅋㅋㅋㅋ책등도 찢어져 사라져 장판테이프 붙여놓고 책 서술도 내용도 영 구린데 그림이 칼라풀해 그런가 나만 보면 자꾸 읽어달래요 ㅋㅋㅋㅋ

제가 책 몇 권 팔고 느낀게, 대부분 나한테 없었음 좋겠다 만 내놓지 아쉬운 건 진짜 너무 망하고 집 터져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닌 이상 안 내놔서 누가 사간다 그러면 감사 오예 드디어 치웠다 싶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

호시우행 2023-10-19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일 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고책을 사준다니.

반유행열반인 2023-10-20 10:10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저렴하게 고전명작 넘겨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일입니다 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3-10-20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루쉰 소설 전집이 탐나네요. 출판사는 다르지만, 저도 루쉰 소설집을 좋게 읽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10-22 16:29   좋아요 1 | URL
어려서 본 책은 이번에 다시 보니 아큐정전에 그림도 엄청 많이 삽입되어 있었더라구요 ㅎㅎ 페크님도 한 권 마련하세요 ㅎㅎㅎ

새파랑 2023-10-21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 판매자 중고책 사본적이 없는데 ㅋ 열반인님 글 보니 한번 해봐야 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0-22 16:30   좋아요 1 | URL
남의 서재 뒤지듯 어떤 판매 페이지들은 파는 사람 취향이 보여 흥미롭더라구요 ㅎㅎ어떤 곳은 고물상 폐지더미에서 보물 찾기 하는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