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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20230911 이문구. 재독.
인터넷 지도 서비스에 신통한 기능이 있다. 거리뷰라고, 360도 카메라를 장착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다 뒤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놔서, 클릭/터치만 하면 마치 그 동네에 선 듯 입체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 과일 가게 전화번호가 뭐더라, 인터넷에 상호와 업종 정보를 올리지 않은 가게도 거리뷰로 들어가서 그 가게 앞에서 간판을 올려다 보듯 각을 잡으면 전화번호도 찾고, 그 사진 찍던 무렵 가게 앞에 늘어 놓은게 홍시인지 홍로인지도 볼 수 있다. 실시간이 아닌 걸 알면서도 겨울에 초록초록한 가로수들을 보면 다른 세계에 잘못 든 기분도 든다.
궁금한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 지금은 갈 일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은 곳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전 살던 집들, 특히나 7살부터 23살까지 가장 오래 살아서 최근까지도 꿈을 꾸면 늘 뭘 두고 나왔다고 걱정하면서 되돌아가던 전셋집이 있던 동네를 찾아보았다. 주변 주택들은 헐어 빌라를 올린 곳이 많고 동네도 퍽 변했는데 이천만원 전세로 그렇게 오래 살던 그집은 그대로였다. 창밖에 에어컨 실외기가 생기고 현관문이 바뀌긴 했더라. 하여간에 50킬로 남짓 바깥에 있는 그 동네도 방에 앉아 둘러볼 수 있다.
거기서 또 7킬로쯤은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구석으로도 가보았다. 일부러 버스 내리는 큰 도로변에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갔다. 조그만 가겟집 하나 있고 내내 논밭과 산등성이 사이를 질러가던 그 길 주변은 이제 밀키트 만드는 식품 공장, 또 이런저런 공장, 물류창고, 농공복합단지가 다 되어 있었다. 한참 더 들어가서 마을회관 건너편 길이 더는 닿지 않아 사진으로만 멀리 건너다보이는 곳에는 할먼네, 이제 할머니는 죽고 할아버지만 혼자 살고 있을 오래된 시골집이 여전했다. 명절, 제사, 어른들 생신, 농번기 마다 찾던 그곳이 그립지도 어떤 향수를 지어내지도 않았다. 저기 가면 늘 할아버지가 술을 먹고 자식들을 때렸고, 자식들은 아버지 눈치를 보며 방마다 웅크리고 있거나 농삿일이나 농기계 고치는 일에 동원되었고, 자식들의 부인들은 수십 명 먹일 음식을 만들거나 고추모종 심거나 고추 가지 호박를 따는 등 밭일을 거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집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맞아 앓다가 밭에 가는 길에 엎어져 죽었다. 추석 쇠고 일주일 뒤였다. 이젠 생각하기도 싫은데 또 심심하다고 거리뷰로 찾아다 들여다 보는 내 마음을 모르겠다.
관촌수필은 내가 19살 때 읽었다. 내가 좀더 어려서 엄마가 양동근 나오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더니, 고3 가을 쯤 원작 소설을 사오셨다. 수능 전에 읽고 갈까, 했었다. 나 새끼 고3때도 책 봤더라… 고3 여름방학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재독했다. 그런데 관촌수필은 결국 못 읽고 수능을 봤는데 그 해 수능에 출제되어서 와 반갑다, 근데 나 안 읽었어...ㅋㅋㅋ하고서 그래도 그해 언어영역이 무지무지 어렵게 나왔는데 고득점을 해가지고 망해버린 수리영역을 다 커버하고 대학을 보내줬다. 그래서 수능 끝나고 보은 하는 심정으로 관촌수필을 읽었다. ㅋㅋㅋ
그리고나서 작년에 수능 국어영역(이제 언어영역이라 그러면 옛날 사람이라우) 공부하는데 기출이나 모의고사에서 진짜 관촌수필이 돌아가면서 나오더라구… 읽고 수능 볼까 하는 마음은 작년에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생각난 김에 읽었다.
이문구의 자전 소설에 가까운 연작 소설집인데, 어린 시절을 보내며 온갖 사람들을 만났던 갓머리 관촌부락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이다. 이문구와 서라벌예대 동기였다는 박상륭이 장수군 출신으로 전라도 사투리 변용해서 이런 저런 입말로 이름도 없는 인물들의 특색을 살린 것처럼, 이문구는 충청도 사투리와 고유어들을 살려 한국전쟁 전후의 바다도 있고 농토도 있는 농어촌 복합 마을의 이야기를 특색있게 그려 놓았다. 어려서는 민구였다가 문구로 개명한 소설 속 화자는 다 커서도 관촌부락에 아직 남은 옛 지인들을 만나러 가는데, 그때마다 옛일을 떠올리고 옛 모습도 그리워하고 변해버린 옛 공동체와 지역의 모습을 둘러보며 내내 아쉬워한다.
가족 혈연 외에도 온마을이 애 하나 키운다고 어린 민구를 마을의 이 사람 저 사람이 귀여워 해주고 돌봐준 이야기가 많다. 특이하게도 마을 공동체에서도 내놓은 놈 쓸모 없는 놈 취급하던 사람들한테도 민구는 애정을 가지고 다 커서도 그리워하며 자세하게도 회상해 놓았다. 옹점이, 대복이, 복산이, 석공 등등 정 많고 나름대로의 삶의 굴곡 애환 있던 인물들을 그저 잊히지 않게 소설로 담아 놓은 작가도 정이 많아 보였다.
다만 맨날 문학 영역 나오니까 명작 소설이지...한국문학사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결국 다시 보긴 했는데, 이만큼 지나고서 보니까 역시 구시대적 유교 한남 서사이긴 했다. ㅋㅋㅋㅋ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고 양반집 자손이라도 화자의 아버지는 공산주의 받아들여 평등 사상 펼치고 그러다 젊어서 죽고 그런 안타까운 집안 사정도 있지만… 아름드리 소나무 잘라내고 집지어 놓은 거 보고 에잉 떼잉 쯧쯧 하고 유생 답던 할아버지 그리워하고 그러는 거 보면 역시나 옛날이야기였다. 대복이 이야기는 오랜만에 읽는데도 어제 읽은 것처럼 생생한 거 보면 인상 깊게 읽긴 했나 본데, 만무방에 가깝던 대복이가 공산주의자 순심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나중에 국군 몰려오고 순심이 숨은 동안 그 집안 머슴 노릇해주고 숨겨주다가 군에 징발되면서 사실 순심이는 대복이 애를 배고 그렇고 그런 사이...하는 것은 좀 짜증나는 서사였다. 영화 한공주처럼 마을 미성년자 순이를 강간하고 그 사실이 탄로나자 순이 엄마에게 위로금과 밭문서로 합의를 본 김선영이 이야기도 속터지고 짜증났고, 그렇게 처벌 받지 않은 김선영이를 동네 젊은이들이 린치를 가해 쫓아내는 이야기도 뭔 정의구현 마냥 그려놨지만 그런 짓을 하는 것도 자기네 마을 발전에 저해된다고 뭔 새마을 정신 썰 풀고 앉았고 ㅋㅋㅋ 농촌 공동체에 향수를 느끼고 그때의 마을 사람들 간의 유대감, 대가족 안의 보호받는 느낌 이런 걸 좋게 여기는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이죽떼죽 대는 걸 보면 고얀 것 하겠지만 뭐 그냥 그랬구나 싶습니다… 그때 그 시절 그리워 할 사람은 방구석에 편안하게 앉아 글줄이나 읽던 양반들이나 그럴란가… 비슷한 무렵 시골에서 복닥대고 냄새나고 불편하게 살던 울엄마도 시골집 가서 자면 늘 불편해서 잠 못들고 그때로 돌아가라 그러면 학을 떼지 않을지…
지금은 볼 수 없는 삶과 공동체의 형태에 대해 간접 체험이라도 할 수 있게 생생하게 그려 놓은 정도로는 의의가 있겠다. 갯벌이든 칠성 바위든 숲골짜기든 가 본 사람이 안 간 사람한테 거리뷰처럼 생생하게 그려주는 풍경묘사나 이미 오래전에 헤어진 인물들이 눈앞에서 재잘대듯 말맛 살린 대화체들도 특색이었다. 그 시절과 대조하여 산업화 진행되던 70년대 무렵을 비판했다고는 하는데 이제 20년대를 사는 내 눈에는 50년대나 70년대나 다 개판이여… 다들 죽을 고생이고 부족 사회여… 파편화된 나놈은 모든 공동체가 묘사된 거 보기만 해도 숨막히네요…
+나는 저 집에서 16년을 살았네. 이후 산 곳들은 저 기록을 깨지 못했다. 유년기 청년기 암흑의 핵심 시절…
+저 시골집에는 아직도 귀신 같은 핼애비가 살고 있겠지. 노인네 죽어도 장례식엔 안 갈 예정… 그 노인네 아들 장례식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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