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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ㅣ 문학동네 시인선 186
양안다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월
평점 :
-20230512 양안다.
머리털 나고 소개팅도 미팅도 맞선도 나가본 적이 없다. 나를 구할 건 나 자신 뿐이라는 말을 어딘가에 새기고, 사랑에 굶주린 나를 먹일 상대를 찾아 헤매고, 창을 겨누고, 허공에 어설픈 곡선을 그리다 메마른 땅에 처박힌 창을 뽑아들고, 흙먼지 일으키며 내빼는 그림자를 멀리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 다시 먼지 탁탁 털고 일어나 떠돌아다녔을 뿐.
반대로 니가 무슨 00교 교주냐…뭔가 꽂히면 너랑 너, 만나 봐, 이러면서 과친구와 동아리친구, 과반친구와 다른학교 간 고교 친구들, 서로 면식 없던 이런저런 친구들을 만나게 하는 일은 신이 났다. 스무살 이후 무수히 많은 소개팅과 미팅을 주선하고 다녔다. 같이 밴드 하던 베이스 치는 오빠에게는 고등학교 친구1, 락동호회 친구, 고등학교 친구2 (심지어 친구1과 2는 서로 원수지간임…) 이렇게 세 번이나 소개팅을 시켜줬고 그 중 두 건(?)은 잠시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인은 망한 사랑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시로 적는다.(가끔은 소설가도 그런 시 같은 소설을 쓴다 안녕 아끼던 봉곤아 잘 지내니…) 한용운, 김소월, 백석, 읽은 시는 짧아도 비슷한 목록을 한참을 더 줄줄 욀 수 있을것 같다. 베이스 치는 오빠도 사랑이 망할 때마다 신곡을 들고 왔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밴드에 신곡을 공급하기 위한 나의 악마적인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문학을 전공하고 시를 쓰는 동인에도 소속되어 있던 베이스오빠는 그렇게 가슴 저미는 명곡 몇 곡을 남기다가 참한 언니를 만나 딸 둘 놓고 문학박사 마치고 지금은 어드메 교수님이 되었다.
나중에 아주 늙어져서 사랑을 다 잃고 나면 백년의 고독에 삘라르 떼르네라처럼 갈 곳 없는 연인들한테 방 빌려주고 바깥에 앉아 담배 후- 불면서 좋을 때다, 나도 좋을 때가 있었지, 그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그게 뭐야…직접 해야 좋지…하고 어이 없어 했다. 망한 사랑들이 묻히는 공동묘지가 있고, 나는 거기를 지키는 묘지기 같은 걸 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시든 꽃과 빼던진 커플링, 반으로 갈라찢은 여행사진, 검은 볼펜으로 벅벅 그은 커플 다이어리, 싸우다 집어던져 모서리 깨진 가재도구 등이 묘지 앞에 널부러져 있다. 두 사람마저 잊어버린 그 유물들을 한 번씩 들여다보고 끄덕끄덕 절레절레 하는 것이다. 쓰고 보니 좀 변태 같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다. (우리집에서는 -까?로 안 한다. 뭘 물어 나쁜 새끼가…ㅋㅋㅋㅋ뭘 또 물어 만만한 새끼가…ㅋㅋㅋㅋㅋㅋㅋ)
원래는 문학동네시인선 187권을 장바구니에 먼저 담았다. 빨간 시집이 뭘 많이 본다니까 제목에 마음이 갔는데, 우연히도 양 옆으로 푸른 톤 시집이 천사 타령을 하는 걸 보았다. 이건 그러니까 세트 구성에 실패한 세트 시집이야…내 마음대로 그렇게 상상하면서 어머 이건 꼭 사야 돼, 나란히 모셔다가 나란히 꽂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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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육호수의 시집이 더 읽기에 맞아서 이걸 먼저 한참 좋네, 하고 읽다가 지치면 제자리에 꽂고 그 옆의 양안다 시집을 뽑아 조금 읽다 잠이 드는 나날을 보냈다. 이렇게 읽으면 두 시집은 서로 비비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페이지 터닝을 두고 약간 경쟁을 하게 된다…처음에는 이미 잔뜩 써서 펴낸 시인보다는 아직 몇 권 안 낸 시인이 쓸말이 좀 더 남아 잘 읽히는 걸까? 양안다는 뭔가 데이빗 린치냐? 모지란 내가 읽기엔 너무 프레임 바뀌고 명멸해서 어지러움… 했는데… 가운데 쯤 읽고 나니 아 역시…다섯 권 낼 만큼 모서리 다듬은 사람이 좀 더 장인임…난해해도 읽을 수록 자꾸 좋았다. 이러고 양안다 시집이 마구 페이지를 넘어가다가 먼저 다 읽혀 버렸다.
읽는 내내 두 시집은 추워하는 꿈을, 어항과 물고기를, 졸려하는 연인을, 술 먹고 비틀대거나 춤추는 밤을, 겨울과 거울이나 미러볼을, 눈사람을, 돌멩이를, 영혼과 영원을, 천사를, 호수를 나를 통해 티카타카 주고 받았다. 원래 단어와 언어는 무한하지 않고 나는 매그놀리아랑 멜랑콜리아를 헷갈려서 두 영화를 결국 다 본 적이 있는데 왠지 그게 나만 아닐 것 같아서 이 시집을 골랐는데, 시인들의 단골 시어들이라고 해도 접점이 많은 시집들이었다. 두 그늘이 겹쳐 더 짙어진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하는 시 잘모르는 찌질이 독자는 그게 그거대로 잘 읽혔다. 미안해. 나만 망하는 게 아니어서 나도 모르게 재밌네…
이렇게 변태 묘지기 코스프레를 실컷 하고 음, 육호수 시집은 다 읽고 나면 최초로 시 번역에 도전하기로 한다. 외계어(주: (外界語) 통신언어의 일종으로 컴퓨터 문서상에서 쓰이는 한국어의 변칙적인 표기를 통칭하는 용어이다.[위키백과])를 한국어로…
+밑줄 안 긋고 베끼기(송구한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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