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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 ‘기억’보다 중요한 ‘망각’의 재발견
스콧 A. 스몰 지음, 하윤숙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8월
평점 :
-20230308 스콧 A.스몰.
브로콜리너마저-행복
https://m.youtube.com/watch?v=ko2P-fogyrA
거의 9년 만에 단둘이 마주한 선배 언니는 잘 지내고 있었다. 작년 말에 모기지론 영끌해 어바인에 집을 샀다. 거주지 커뮤니티 공간의 노천 자쿠지에 몸을 지지고 집에 들어와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맥주 한 잔과 함께 스위치를 하는 시간이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IT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로 여지껏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업무 만족도도 높아 보였다. 언니는 내가 언니의 형제 자매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 놀라며 그렇지, 너는 별 걸 다 기억하지, 하고 말했고, 나는 얼굴만 봐도 언니의 모든 흑역사가 스쳐지나간다고, 감춰야 할 것이 있으면 나를 죽여 묻으라고 농담하며 웃었다. 웃는 중에도 노래방에서 롤러코스터의 라스트 씬을 부르며 글썽이던 모습이 스쳤다.
한국을 떠나, 나와 멀어져 행복하다면, 30년 간 자라난 이 땅이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라면,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직접 김밥이며 냉면이며 그곳에서 너무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음식을 스스로 해 먹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 언니는 그늘이 없다. 다시 떠나야 할 시간엔 잠시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그 덕에 나를 아끼는 군요, 하고 알 수 있는 건 좋았다.
그 좋았던 기억력도 시간 앞에서 약해지고 비루해지는 중이다. 좋은 점도 있다. 불안과 공포의 감정도 흐릿해지고 미움도 외로움도 섭섭함도 사그라든다. 몇 년 전 독후감 쓴 걸 읽으면 그게 그렇게나 재미있다. 내가 이런 걸 읽었다고? 이런 걸 썼다고? 자뻑이 지나치지만 뭔가 알듯말듯하면서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익숙하니까 재미있지… 알라딘이 몇 년 전 니가 쓴 글, 이러고 툭 던져주는 기능이 그렇게 자꾸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 자꾸 많이 못 읽는 날들 중에 자꾸 읽고 싶어진다.
이렇게 바보가 된 줄 모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니까 천상계에서 쫓겨난 느낌… 1,2등급 이하는 받아 본 적 없어서 공부 못하는 게 어떤 건지 모르다가 굳이 다시 태어나서 4,5등급 받고 아…힘든 거구나… 아주 ㅈ같은 거구나…하고 뭔가 과거를 반성하는 느낌 ㅋㅋㅋ
많은 책들, 주로 자기계발서나 공부법 책 같은 것들이 기억 잘 하는 법, 망각 곡선을 염두에 두고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법을 말하는데 이 책은 왜! 잊어야 하는지 제목으로 딱 묻고 있었다. 물었으면 알려준다는 것인데! 책에 소개된 사례 중 환자 카를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약간은 감동을 주기도 했고, 스콧 박사가 올리버 색스 언급도 잠깐하지만, 언급 안 했더라도 이 분, 올리버 색스처럼 글쓰고 싶은 욕심 있으신 과학자시군요 했다. ㅋㅋㅋ 노화로 인한 정상적인 망각의 과정, 외상후장애, 알츠하이머, 자폐성 장애 등 다양한 심리, 정서적 어려움과 망각의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남들보다 망각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강박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흠칫했다. 제 얘기 같아서요… 자폐까지는 아니어도 사회성이 엄청 떨어지긴 합니다만… 잘 기억하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고, 또 새로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 잊어야 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제 머릿속에 잡것들이 많아서 공부 기억력이 좀…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이라 오히려 신중하고 오판이 적은 의사 이야기는 조금 빡쳤다. 아니, 언어적 기억 조금 부족하고 수학 관련 기능은 너무 우수해서 부족한 거 압도할 만큼 아이큐 최상위인 분이, 그래서 의대 나와서 전문가 된 분이 자꾸 자기 머리 나쁘다고 해… 그 덕분에 지적 겸손으로 정확한 거라고 해…이거 자랑인지 진짜 겸손인지… 예전 같으면 와 짱이다 하고 넘어갈 건데 공부 잘하고 싶은데 공부 못하는 예민한 어린이가 되어 죄송합니다…ㅋㅋㅋㅋ
많은 걸 잊는 게 정상이고, 잊어서 행복해질 무렵 다시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느라 힘든 건 맞는데, 지난 일이나 나의 감정이나 상태와 동떨어진 것들을 기억해야 해서 차라리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불과 네다섯 달 정도 전에 그렇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아 망했다 난 안 되나 봐…이러고 줄줄 울며 지낸 시간 그새 잊었으니 또 다시 하겠다고 맨날 책상 머리에 붙어 책읽고 싶은 것도 참으며 (완전 참지는 않고 째끔씩만 읽으며) 지내는 것 보면 그것만으로도 망각은 쓸모 있고 진정 선물 같은 일이로군, 싶다. 읽고 줄줄 써버리고 털어버리면 적어놨다고 안심하고 또 잘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내 독후감 쓰기의 이유에는 잊기 위함도 있나 보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참 잊는 일에 대해 노래를 많이 만들어놨다. 그렇지만 자꾸 잊자 잊자 하면 더 생각나는 거 알고… 그러는 거지…? ㅋㅋㅋㅋ
브로콜리너마저-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https://m.youtube.com/watch?v=30S63B044U0
브로콜리너마저-잊어버리고 싶어요
https://m.youtube.com/watch?v=6nZmkdiTW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