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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20221128 필립 로스.
우리 아버지도 보석을 팔았습니다. 가게 이름은 에브리맨 보석상 같은 건 아니었지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맨 앞에 턱 박아 영보석, 이라는 간판을 빨갛게 세워놓고는 정작 가게는 지키지 않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편안할 녕, 한자 뜻이 무색하게 안녕은 커녕 그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늘 불안에 떨게 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가 손수 만든 다이아몬드 반지가 제 바로 눈앞 책장 앞을 뒹굴고 있습니다. 기생수의 오른손이를 약간 닮은 것 같은 반지의 보석은 여전히 빛나지만,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광고 문구는 영 못 미덥습니다. 지금이라도 공구 서랍에서 망치를 꺼내다가 씨팔 것, 이딴 거 누가 만들어 달래, 하고 꽝꽝 몇 번 내려치면 그냥 박살이 날 것 같이 빛나고 있지만 연약한 것, 위로가 되지 못하는, 불편한 아름다움, 그래도 어디 팔아버리지도 못하고 끼고 다니지도 못하고 그냥 저 자리에 내려놓고, 보기 싫으면 안경 수건 같은 걸로 덮어놨다가, 어디선가 다이아몬드라는 말을 들으면 집에도 그런 거 하나 있지, 하고 꺼내 보다가, 별다른 뿌듯함도 울분도 없이 다시 치워버리기를 반복합니다.
아버지는 시계도 팔았습니다. 처음 아버지가 가져다 준 시계는 아직 가게를 하기 전이었는데, 모자와 선그라스를 쓴 익살스러운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틈에 사라져 버렸지만 기억에는 남았습니다. 십몇 년 전에 두 번째 임용 시험을 앞두고 시계를 빌려달라는 말에 당시 연인이던 사람이 키티가 그려진 하트 모양 시계, 은색 시곗줄이 달린 시계를 사다 주었습니다. 아직 그 시계를 가지고 있지만 시곗줄은 진작에 너덜너덜 헤어지고 시계는 약이 달아 멈춰 버렸습니다. 시계 안 하트 모양 공간에는 가짜 다이아몬드 세 개가 흔들면 이리저리 빈 공간을 움직입니다. 쟐그락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움직임입니다.
그다음 시계들은 내 손으로 샀습니다.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자꾸만 두근거리는 느낌에 심박동을 세어주는 미밴드를 내내 차다 수능 시험장에는 전자시계를 들고 갈 수 없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만 얼마 짜리를 하나 샀어요. 그렇게나 가볍고 찬 것 같지도 않은 게 또 쉬지 않고 바늘을 재깍이며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예뻐서 책상 맡에 두고 탁상시계처럼 쓰고 있습니다.
아이유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 손끝으로 돌리며 시곗바늘아 달려봐 조금만 더 빨리 날아봐 했던 노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노랫말을 부를 수 있는 것조차 특권이구나 나이 먹으면 할 수 없는 것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서점 마을에 머무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이제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지, 네가 있던 미래에서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할 수 있는 날들은 지났잖아요. 아닌가. 코로나19가 몰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코인노래방에서 저 노래를 불렀던 날도 생각났습니다. 돌아보면 서른 중반이 부르기도 부끄러운 곡인데. 이제 다시는 못 부르겠지. 뮤직비디오로 십일 년 전 아이유를 같이 봅시다.
아이유-너랑 나
https://youtu.be/NJR8Inf77Ac
ㅋㅋㅋㅋㅋㅋㅋ 일흔하나고 일흔다섯이고 낼모레 마흔 될 나한테 까마득한 날 같기도 한데 또 가는데는 순서 없다고 필립 로스 할아버지 노년 작품들은 그렇게 심술 한가득 질투 한가득 실어 비명을 질러대는데 그게 또 절창이어서 역시 이렇게 추워지는 날 나한테 맞는 독서…이번 거는 하나도 안 야해…하고 잘 읽었습니다. 친절하게도 노년으로 가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여러 권 남겨주신 필립 로스 할배…땅속에서 안녕하시죠? 묻힌/힐 땅이 달라 제가 뼈가 되어도 만날 일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 천국 가계신 건 아니죠? 나아중에 지옥에서 만나요. 그때까진 남기신 소설들 재미있게 잘 읽고 제 노년은 어떤가 잘 살펴보다 가도록 하겠습니다…굿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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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악한 새끼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102)
: 자기를 미워하는 아들들에게 노빠꾸 썅욕을 박는 늙은이의 패기…ㅋㅋㅋㅋㅋ 나도 패기로운 늙은이가 되고 싶구나…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거지. (167)
: 덕분에 미리 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