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알라딘 후르츠바스켓 블렌드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십대 후반인가 이십대 초반에 애니메이션 후르츠바스켓을 보았다. 주인공 토오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같이 살던 할아버지도 다른 집에 살러 가서 홀로 야산에 천막 치고 노숙(?)하다가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살 곳이 없어진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학교 쥐군(?)과 고양이군(?)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 집안의 비밀을 공유하고, 비밀 때문인지 조금 삐딱하고 어두운 집안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며 계속 씩씩하게 산다.
교생 실습 가서 아침 조회 실습(?)을 하는데 후르츠바스켓에 나오는 등 뒤에 붙어 정작 주먹밥 본인에게는 안 보이는 우메보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직 찾지 못한 각자의 장점을 찾아 등짝, 등짝을 보자… 뭐 이런 건가… 벌써 오래전이라 가물가물… 또렷한 기억력이 자랑이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가까운 과거조차 전생처럼 흐리다.

오랜만에 책을 샀다. 커피도 샀다. 새로 산 커피 이름이 후르츠바스켓이라 그런 어렴풋한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캡슐이나 먹고 원두는 당분간 안 사야지 했었다. 드립 커피 내리는 시간도 아까웠다…그래도 드립백이면 금속 드리퍼보다 금세 내려가고 안 씻어도 되니까? 하고 새 커피 사봤다. 커피가 절실했다기 보다 허송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알라딘 블렌드는 늘 기대에 못 미쳤는데 이번 커피는 향도 맛도 무난했다. 그치만 커핑노트의 오렌지의 뭔맛, 자두의 뭔맛 하는 건 역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 적당히 신선하고 적당히 맛있는 커피였다.

하루에 여섯에서 여덟 시간씩 수학한테 바치는 몇 달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오래는 안 됐고 두세달 됐나… 진성 문돌이에서 그렇게 조금 했다고 갑자기 수학왕 될리가 없는데 성질 급하고 참을성 없는 나는 아이 수학 못하는 바보 멍충이 나새끼야 하고 나를 잠시 많이 미워했다. 공부 더 해야 되는데 생활이 다 짐 같고 주변이 온통 방해물 같고 막 뭣이 중헌지가 뒤바뀌어 힘들었다. 그러다가 뭐 이런다고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가 너무 나빠지겠다 너무 불행하겠다 싶어서…(그리고 유월 모의고사 끝나고 열받아서 겨우 한 주 정도였지만 하루 열에서 열두 시간 공부해보니…아 이러면 금방 죽겠구나 싶어서…) 그냥 무리하지 않고 되는대로 차분하게 지내기로 했다. 커피도 내리고 책도 며칠마다 몇 줄 보고 곁의 사람들에게 좀 더 다정하자고… 수학은 뭐 계속 여섯 시간씩 하겠지만…

이십년전 고삼 때 쓴 다이어리를 뒤적뒤적해보니 그때도 내내 수학이 고민이었나 보다. 맨날 수학수학 이러고 달력마다 써놓더니(그렇다고 열심히 하지도 않음…) 결국 첫 수능에서 기대에 못 미치게 95퍼센트가 나와서 2등급이었다. 수학을 잘했던 적이 없던거지… 그래도 엄청 어려웠다는 국어랑 사회 잘 본 덕에 대학 가는데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사회 공부 하면서 덕분에 십오년은 먹고 살았구나… 이제는 그나마 전문 분야(?)인 사회는 싹 접어두고 국영수과로 팔자를 고쳐보겠다고 이러고 있는데 뭔들 쉬울리가 없다. ㅋㅋㅋ 결과는 접어두고 엣헴 수능 수학은 이 정도면 하얗게 불태웠다… 이제는 원이 없다…할 정도까지는 꾸준히 해야겠다.

나란 주먹밥 뒤에는 아주아주 맛있는게 붙어 있다고, 그러니까 스스로 쉰밥 취급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그런데도 아직 왜 난 피자가 아니야…치킨이 아닐까… 그러는데 시간을 너무 오래 썼다. 결국 내가 바라는 삶은 많이 읽고 계속 쓰고 꾸준히 사랑하고 오래 행복한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건 쉽지 않으니까, 노력해야지 뭐.


うまれかわることはできないよ
다시 태어날 수는 없어요

だけどかわってはゆけるから
그렇지만 변해 갈 수 있을 테니까

Let‘s stay together いつ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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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6-28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 수학 공부 하시다니 넘 대단한걸요~~
고3 수험생들이 생각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있지만
상위 1% 녀석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데 또 두려움이 존재하죠~~
열반인님!
날씨가 더워 힘드시죠
건강 잘 챙기시고 잘 드시면서 공부에 매진하시길 바래요~~
언제나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2-06-29 11:38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화이팅 감사합니다 ㅎㅎㅎ 열심히 안 하는 친구들보다 젊은데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더 무섭죠 ㅋㅋ생각보다 많구요...그 친구들 최소 2-3년에서 길게 4-5년 달리는 거 보면 몇달 깨작거린 제가 너무 징징대지 말아야겠습니다. 매진 정진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ㅎㅎ

scott 2022-06-28 2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돌이가 하루에 여섯, 여덟시간 동안 수학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는 건...
시험 성적에서 벗어난
진정으로 열반이님이 열정을 받힐 수 있는 대상을 만났다는 것!

알라딘 드립백 커피 맛 보다 열반인님의 추억이 담긴 후르츠 바스켓 맛!

뒤늦게 타오르는 수학의 열정
응원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2-06-29 11:41   좋아요 2 | URL
늘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한 스콧님 ㅎㅎㅎ수학은 뭔가 애정보다 애증의 대상이에요 ㅎㅎ얘를 안 뽀개버리면 내가 뽀개지겠다 하고 그냥 붙들고만 있네요. 그 시간이 아직 잘 풀려서 신난다 까지 못 가서 절반 이상이 으으으 자괴감 하는 기간이라 더 힘든 거 같구.... 블랙슈가랑 얘랑 보다가 샀는데 후르츠바스켓 오늘도 먹었는데 맛있네요 ㅎㅎ

새파랑 2022-06-29 0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좋아하는 열반인님은 뼛속까지 문과인이 맞습니다만 이제 수학 달인이 눈앞인거 같아요~!! 수능때 모르시면 2번으로 찍으시길^^

반유행열반인 2022-06-29 11:42   좋아요 2 | URL
그쵸 수학 하면서 제 우당탕탕 사고 과정 논리 없음 보면 뼈문과에요 ㅋㅋㅋ저는 4번으로 찍는데 다음 모의고사는 새파랑님 말씀대로 2로 찍고 경과 보겠습니다. ㅎㅎㅎㅎ감사합니다.

Yeagene 2022-06-29 1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ㅎㅎ
오랜만에 소식 주셔서 넘나 감사합니다.글잖아도 며칠 전 열반인님 생각했었는데 ㅎㅎ
수학은 계속 안늘다가 갑자기 쭉 는다고 예전에 제 수학쌤이 그러셨어요.로그 그래프처럼ㅎㅎ
전 그렇게 늘어본 적 없지만 열반인님은 꼭 그렇게 느실 거에요!
날씨 더운데 건강 챙기면서 공부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2-06-29 19:47   좋아요 1 | URL
가만 보면 성장을 느낄 새 없이 살았는데 그게 요행이기도 하고 운이 좋았구나, 하며 겸손과 인내를 배우는 요즘이에요 ㅎㅎ
이과 출신 예진님 말씀 믿고 계속 열심히 할게요. 늘 궁금히 여겨주시고 인사 건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예진님!!!

syo 2022-06-29 1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시간 투자하면 반드시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나름 수학 40점에서 시작해 인서울 공대 찍은 사람입니다 제가! 으하하하. 라떼는 말이죠......

반유행열반인 2022-06-29 19:49   좋아요 1 | URL
역시나 이과 출신 syo님 말씀
믿고 계속 열심히 할게요. (윗 댓글 복붙 같은 건 기분 탓입니다 그냥 똑같이 일일이
적었을 뿐입니다 ㅋㅋㅋㅋㅋ) 배운 사람 이과 사람 라떼 syo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