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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간만세 ㅣ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평점 :
-20210918 오한기.
계절이 지나가는 서가에는
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서가 속의 또래 작가를 다 헤일 듯합니다.
나는 별 하나에 젊은 작가 한 명씩 불러봅니다. 초등학교 같은 학년을 다녔을 아이들의 이름과, 최은영, 정세랑, 김사과, 이런 한국 소녀들이었던 이름과, 오한기, 김봉곤, 강화길, 박상영, 백수린, 장류진, 이런 한두 살 많거나 어린 소설가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아 재미없네. 연휴가 시작되고 빌린 책도 산 책도 읽을 책은 많고, 풀 수학문제도 많지만, 내내 딴짓을 하다가 카트린M의 성생활을 일 년 만엔가 다시 펼쳐 읽다가 단란한 가족이 모인 명절에 대놓고 읽긴 그런가… 하다가도 제법 여러 쪽 읽고 덮었다. 빌린 전자책이 순 비문학이구나, 하고 전자도서관을 뒤적이다가 충동으로 김사과의 ‘풀이 눕는다’를 빌렸다. 제목부터 왜 김수영이야…쌈마이야…했는데 스물대여섯의 김사과가 쓴 소설은 강렬하지만 오글오글오글오글했다. 그러다가 친구랑 수다를 떠는데 ‘나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하고 조잘거리다가 어, 이거 누가 한 말인데, 어디서 읽은 건데, 바틀비 비슷한데 다른 건데…하다가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에 나오는 걸 알아냈다. 영화도 소설도 죽이지. 결국 나란 인간의 재료는 대부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후반에 접한 문물이 거의 다 였다. 이후는 그냥 뼈대에 살붙이기, 페인트 바르기, 껍질에 색입히기, 스티커 붙이기. 아무튼 김사과야 아니 방실 작가님 어려서 이런 걸 쓰셨는데 저는 그때 뭐를 했지…이말년 시리즈랑 정열맨을 보고 있었네요.
김사과도 재미있지만 자꾸 각주로 우리 어릴 때 듣던 센 노래들 달아 놓는 건 너무 오글조글하니까 조금 쉬자, 하고 더 순한 맛을 찾았다. 장바구니에 오한기의 ‘인간만세’ 전자책이 담겨 있는데 알라딘이 룰렛 돌리니까 천원을 줬다. 이건 게시 아닌가. (오타 봐라 계시야 계시바…)적립금을 탈탈 털면 내 소중한 월급을 털지 않고도 나무에게 미안하게 종이를 낭비하지 않고도 작가의 주머니에 얼마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나. 괜히 뭐라도 사고 싶은 핑계를 누가 묻지도 않는데 대어가며 (그렇지만 전자책은 마음에 안 들어도 팔지도 못한다? 괜찮겠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스물여섯 살의 김사과는 저런 걸, 서른여섯 살의 오한기는 이런 걸 썼구나. 이제 서른일곱 살인가… 서른여덟 내가 읽어 보겠습니다…
오오, 전자책 내가 설정한 글씨 크기 기준 160페이지 남짓인데, 뒤에 30쪽 가량이 평론이어서 나는 평론을 읽지 않고 버리니까 무려 130쪽 밖에 안 되니 순식간에 읽은 책 한 권을 추가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이득인가. (얇다.)
첫머리 읽는데 자꾸만 어, 이거 어디서 읽은 거 같아 내가 미리보기를 봤었나 읽었었나 아닌가 뒤에가 좀 다른 거 같은데, 하는데 알고보니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라는 소설 모음집에 실었던 ‘상담’이란 소설 전문이었다. 거기서 읽은 건 백수린이 쓴 언제나 멜랑콜리, 아니고 ‘언제나 해피엔딩’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다시 읽어도 오한기 소설은 새로웠다. 그냥 늘 진진이 나오고 소설가가 나오고 토끼머리랑 비슷한 권력자가 나온다는 거. 진진 말고 또 있는데. 아, 그리고 정지돈이 소설에서 오한기가 결혼했다고 해서 그거 허구인 줄 알았는데 방금 인터뷰 같은 걸 훑어보니 와이프 어쩌고 하는 거 보니 진짜였네…나의 편견을 사죄합니다…
예전에 디씨인사이드인가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 거의 모든 게시판에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준영이다’ 하는 댓글과 ‘사람은 똥이야! 똥이라고! 히히! 오줌발사!’하는 댓글을 꾸준하게 다는 인간들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자꾸 똥 똥 거리니까 저 댓글을 오한기가 달았거나 아니면 오한기도 저 댓글을 봤거나 저 댓글을 단 사람과 오한기가 비슷한 인간관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똥은 생분해성이라도 있어 친환경적이지만 인간은 분해되려 해도 오래 걸리고 번거롭잖아…심지어 뼈는 잘 썩지도 않아서 억지로 태우고 갈아야 해…
진지하지 않은 소설이지만, 진지하지 않은 걸 쓰기 위해서 진지했을 걸 생각하니 숙연했고, 재미있었다. 이전에 읽었던 가정법이나 사랑하는 토끼머리에게 보다는 순한 맛이었는데 사실 이전 두 권도 이제는 별로 기억 나지 않는다. 그냥 휘리릭 보기에 좋았다. 빌려 읽거나 내 돈 덜 주고 사면 더 읽는 기쁨이 크겠다. 도서관에서 빌리면 소설에 나오는 온갖 이상한 작자들의 손길이 닿았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 부분은 감안하시고… 사서나 상주작가나 고충이 크다. 은퇴한 화학 교수가 제일 속 편해 보이지만 재수없다. 쥐똥만한 권력 휘두르는 관장은 밉살스럽다. 어디서나 무슨무슨 장 붙은 새끼들이 늘 환장하게 젠장맞을 짓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