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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채털리부인의 연인 2 ㅣ 펭귄클래식 34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321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성애가 일으키는 불합리와 부조리를 일찍 깨닫고, 그것이 사라진 세상을 꿈꾸며 자기 삶에서나마 사랑과 섹스를 걷어내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경이를 느끼며 존중을 표한다. 그건 커다란 관점으로 보자면 인류애조차 넘어서는 숭고한 지구애이자 자기 희생이다. 지구와 그 위를 사는 대부분의 생물체 입장에서는 그렇게 인간이 생식과 번영에 도움될 만한 하등의 행동을 삼가고 서서히 쪼그라들다 절멸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슬픈 소식을 알려드리자면, 그런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고매한 정신을 가진 인류 일부는 그들의 조상이 내내 붙잡고 온 유전자 상속의 의지를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의 짧은 생애를 끝으로 단종될 예정입니다. 반면에 끝없이 이성을 욕망하고 저들끼리 엉겨붙는 비천한 무리들은 그런 비천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세상에 자꾸 쏟아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분간 그런 인간들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그런 비천함은 인류 종이 이만큼 버글거리며 지구를 끝없이 파먹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로렌스는 소설로만 말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이책 말미에 붙은 그의 산문(?)은 사족 같았다. 섹스가 짱!인데 이 시대 인간들은 제대로 된 섹스도 사랑도 몰라! 하고 딱딱거리는 게 뭔가 이 소설은 외설이 아니고 나름의 철학이 담긴 고매한 나의 주장입니다, 하고 애써 항변하는 것처럼 들려서 모냥 빠졌다. 안 그래도 됩니다. 할 만큼 (야하게 잘) 하셨고 이제 편히 쉬십시오 ㅋㅋㅋㅋ
콘스탄스는 채털리 부인을 때려치우고 자기가 바라는 삶을 위해 멜로즈에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 멜로즈의 편지로 그들의 바람이 담긴 미래만 확인하고 해피엔딩인지 배드엔딩인지 매조지 없이 소설은 끝이 난다. 그렇지만 이미 이 소설이 채털리 부인- 으로 시작되는 제목으로 굳어진 채 백 년을 읽혔으니 로렌스 새끼는 잔인하다. 콘스탄스의 사랑, 코니의 연인, 도 아니고 여전히 이 소설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다. 그렇게 보면 결혼하고도 성을 바꾸지 않는 우리나라는 좀 낫나, 싶지만 결혼 제도가 두 사람을 살아 있는 내내 는 물론 죽은 이후까지도 얽매여 놓는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랑이 식으나, 식지 않으나, 더는 섹스를 하든가, 말든가, 너희는 (오늘 날에는 죽음이 아닌) 법원이 갈라놓을 때까지 하나요, 그러니 자유로울 생각을 말라.
인간은 무엇이 되고 싶었길래 그토록 많은 제약과 굴레로 자신을, 서로를 얽매는 제도와 관습과 규범과 추문에 대한 혐오와 죄명과 악덕의 이름들을 만들어 왔는지 모르겠다. 멜로즈 말대로 양철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어떤 열정에도 욕망에도 초연한, 그래서 고통 받지 않고 내내 등신(나무, 돌, 흙, 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말합쥬)처럼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이길 바랐을까? 그게 불가능한 걸 아는 사람은 그냥 바로 지금 여기에서 최대한 누리며 행복하기로 합니다. 그저 죄인이 되고 악인이 되겠습니다. 코니와 멜로즈가 인류 사는 곳곳마다 어느 시대마다 서로 얽으며 함께 있길 간절히 원해 왔다는 사실을 수많은 서사 속에서 거듭 읽으며 우리 인류 파이팅, 하고 응원이나 하겠습니다. 이상 속이 좁아 인류애와 이성애 이상 나아가지 못한 진화가 덜 된 구시대 인류종이 미래의 지구 생명체들에게 미리 사과 인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