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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평점 :
-20210228 김금희.
장기하와 얼굴들-괜찮아요
https://youtu.be/1ptPHjQi5v4
브로콜리너마저-괜찮지 않은 일
https://youtu.be/bf-BI0KIqKI
김금희 소설집을 처음 읽은 건 2019년이고, 이 책은 2018년 10월에 나왔다. 그러니까 아직 내가 김금희를 알기 전 쓰여진(사실 2017년에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문상’을 처음 읽고도 잊어버렸지만) 이 소설은 내가 읽어주길 몇 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고 말하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독자인가. ㅎㅎㅎ 어쨌거나 이 책을 읽은 덕에 이제 어디가서 김금희 전작했어, 하고 팬부심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는 손보미, 백수린을 먼저 보았다. 이것 말고도 단편소설이라 불리는 원고지 70-100매 사이 분량보다 더 짧은 소설을 묶은 책들을 몇 권 더 보았는데, 그때마다 아쉬움을 느껴 형식의 한계인가, 아니면 내 취향은 엽편, 초단편, 꽁트, 그런 장르와 맞지 않는가, 했다. 그런데 이 짧은 소설집을 읽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김금희는 어떤 분량이든 그 안에서 할 말을 다 하는 완성된 이야기를 구사했다. 초단편도, 단편도, 장편도. 그래서 김금희는 다 좋다. 짧은 페이지에 꾹꾹 눌러 담긴 열아홉 개의 이야기에서,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었다.
2월이 끝나가고 분명 곧 새 봄인데도 나는 어쩌지, 하면서 요며칠 왠지 불안하고 우울했다. 맥주도 마셔보고 신경안정제도 몰래 먹어보고 커피도 잔뜩 마시고 긴 독후감도 주절주절 쓰고 작년 일기도 뒤져보고 눈물도 찔끔 쏟던 내가 잠시 다른 걱정 다 잊고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 다행이었다. 히히 이제 괜찮다.
유독 괜찮아요, 하는 사람이 많은 책이었다. 사실 안 괜찮아 보이는데도 자꾸만 괜찮다고 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나도 괜찮다고 말해보고 싶었다.
+밑줄 긋기
-“잘은 모르지만 나빠지지는 않으려고.”
“그래, 나빠지면 안 되지. 그거면 되지.”(‘아이리시 고양이’중, 134)
-그러다 비가 와서 차창이 돋아난 물방울로 가득 찬 날에 나는 영건이에게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하게 될 것 같아? 하고 물었다. 누군가에게 불쑥 사랑에 대해 묻는 건 누구나 아는대로 일정한 탐색용이었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영건이는 불쑥 나는 아무래도 어딘가 상한 사람들만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나는 ‘상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어려움이나 고난의 상태가 의외라서 뭐라고? 되물었다.
“마음이나 몸에 큰 상처가 있는 그런 사람.”
“왜?”
“그냥 그런 느낌이야, 그럴 것 같은.”
“하기는 현대인은 다 실존의 불안 같은 게 있으니까, 다들 아픈 거나 마찬가지지.”
나는 어떻게든 영건이의 그 말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무거움을 덜어내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영건이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말 그대로 상해 있기도 해. 그래서 이런 노래가 필요하고.”
영건이는 내 귀에 보아의 <NO.1>을 들려주더니 자기는 곧 입대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영건이가 온다’ 중, 124-125)
-주현이 말하던 순간에 상준의 내부에 있던 무언가 흔들렸는데 그건 슬픔과 분노 같은 형질이었다. 주현은 아직 고통이 생생한 듯 그 폭력을 상세히 말하지 못했는데도 상준은 이미 그 장면을 본 듯한 느낌이었고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 억울해졌다. 동시에 무기력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는. 아이는 어른들의 싸움이 금세 잦아들기를 고요히 기다릴 뿐. 상준은 그런 아이가 된 기분이었고 앞에서 울먹이고 있는 주현도 이제 한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처럼 보였다. 둘은 서울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부암동의 높은 언덕에 있고 어른들은 슬픔만을 주었으며 그들은 함께 있다. 상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슬퍼서 울었고 그런 상준을 놀라서 바라보던 주현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선술집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을 때 서로의 몸을 당겨 따뜻하게 안았다.(’오직 그 소년과 소녀만이’ 중, 1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