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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나 하는 철학
사드 지음, 정해수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평점 :
-20210118 사드.
(산뜻한 월요일부터 불편함과 불쾌함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분께서는 이 리뷰를 점프하셔도 좋습니다. 괜찮아요. 이해해요. 저도 이걸 왜 읽었니 나새끼야 싶거든요.)
알라딘에는 bl물이나 성애소설 같은 장르만 전문으로 리뷰하는 분들도 계셔서 이게 뭐라고, 싶지만 막상 쓰고 나면 별다른 센 내용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사드라면 원전을 읽는 이든 원전의 내용을 인용하는 글을 보는 이든 각오가 필요하지 싶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나 도서에 청소년 관람불가, 19세 이상 관람가 같은 사전 심의를 거친 딱지를 붙이는 짓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졌다. 과연 유해성이라는 걸 누가 판단하고 증명할 수 있는지, 그걸 법으로 막는 것이 가능한지 또한 옳은 건지 내내 의문이었다. 사실 비디오 가게에서 빨간 딱지 빌리려다 까인 게 불만이어서 그랬을 수도(…)
그런 마음은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을 본 뒤 더욱 굳어졌다. 감독 마이클 무어는 콜롬바인의 두 남자 청소년이 케이마트에서 산 총알과 총을 들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난사하고 마지막에는 자신들을 죽이고 끝난 참혹한 사건을 카메라에 담았다. 언론은 소년들 방에서 발견된 마릴린 맨슨, 람슈타인 같은 음반을 지목하며 이게 문제네, 했고 마이클 무어는 응 아니야, 아무데서나 총 살 수 있고 무기로 먹고 살며 수시로 전쟁을 벌이고 흑인에게 총을 쏘는 이 나라가 문제야, 했다. 감독은 마릴린 맨슨 인터뷰도 영화에 담았는데, 십대부터 맨슨을 좋아했던 나는 신나서 그 부분에 집중했다. 외향만 무시무시하게 치장하고 가사만 센 척할 뿐, 무대 아래 맨슨은 멀쩡하게, 똑똑하게 말을 엄청 잘 해서 재미있었다.
그때부터는 아니지만, 하여간 가장 무섭고 끔찍하다는 영화는 다 찾아보고 다닌 때가 있었다. 아마도 십 년 전쯤이었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걸 극장에서 두 번 보고 집에서 또 다운 받아 보고, 그때 살로, 소돔 120일도 보았다. 그저 사람의 상상력이란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그 상상력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하는 흥미로 보았다. 아주 우울한 시절이긴 했는데 우울이 먼저이고 무서운 영화는 다음이었다. 그때 본 영화 중 ‘세르비안 필름’이야말로 손꼽히게 끔찍하고 강렬한 영화였다. 그런데도 늘 결론은 현실보다 끔찍한 픽션은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만다. (뉴스를 보면 아시겠죠…)
사드를 처음 읽은 건 2013년이다. 우연히 ‘소돔 120일’이란 책이 19세 미만 관람불가 딱지가 붙은 채로, 출판 금지였던 게 아주 오랜만에 풀려나왔다, 하는 보도를 접하고 전에 본 영화의 원작은 어땠을까 싶어(영화 본 뒤 원작 소설 보는 걸 좋아한다) 사 보았다. 그땐 알라딘을 안 할 때라 페북이랑 일기장에 감상을 남겨 놨네...https://m.blog.naver.com/natf/221297784892
왠지 고도의 책 홍보에 낚인 것 같고, 책의 유해성을 논하려면 이 책 읽은 나를 장기 추적 관찰하라고 써 놓았는데, 아직 아무도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똥을 먹거나 강제추행(?)같은 건 하지 않았으니 여러분, 책이나 영화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뭘 읽거나 본다고 사람 안 바뀐대요. 다만 이상한 인간이 이상한 걸 읽고 못된 짓을 해서 인과관계를 혼동할 수는 있겠지만…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은 두 번째 읽은 사드책이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고 어떤 중고책 판매자가 책 9권을 3만원도 안 되게 팔아서 어쩌다보니 갖춘 책인데 갑자기 생각나서 연말부터 읽다가 새해 맞이로 다 보았다.(...잔혹한 연초여…) 이새끼는 이렇게 추잡하고 시간 빼앗을 책을 벽돌처럼 써 놨어… 두 권 다 비슷한 감상이다. ㅋㅋㅋㅋ
사드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 한다. 책이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아까 한 말이랑 모순되긴 한데, 사드의 책에 담긴 주장들 자체가 앞에서 한 말이랑 마구 모순되고 상충된다. 읽다보면 이 사람은 정말 철저하게 기존의 가치와 통념과 도덕을 전복하고 뭉개고 싶은 것인가, 아님 역설적 표현으로 철저하게 자기 생각과 반대로 표현한 것인가, 하다가 살면서 겪은 굴곡이나 가정사나 투옥 경험이나 기이한 성벽 같은 걸 보면 그냥 애초에 미친놈이라 자기가 한 짓 때문에 불운하게 살다간 놈인가 싶기도 했다.
계몽주의 시대에 니들이 말하는 자유 평등이 반대자들 대량학살하고 감옥 가두는 거냐, 좆까, 하는 거나 아직 기독교의 영향이 많이 남은 세상에 신 좋아하네, 기독교 좆까, 설사 그것이 강한 풍자의 목적일지라도 저렇게 대놓고 패륜, 절도, 간음, 동성애, 살인까지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절대 금기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왜 장려되어야 하는지 구구절절 논증할 수 있는 그 미친 패기는 무엇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수많은 책이 익명 출간되고 오랜 기간 금서가 되었고 그 덕에 늘 도망다니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로 고난을 겪다 죽는 거 보면 굳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니 사드여…
“속지 말자. 그 종족 번식이라는 것은 결코 자연법칙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미 설명한 바와도 같이 그저 허용된 것일 뿐이야. 그리고 또 인류가 멸종 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한들 자연의 입장에서 무슨 대수란 말이냐! 만일 그러한 불행이 발생하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고 믿는 우리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자연은 얼마나 비웃겠는가! 인류가 멸종한다 해도 자연은 자신의 영역에서 인류가 사라진 것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이미 여러 종의 동물이 멸종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얼핏 읽으면 만화 ‘기생수’에서 오른쪽이나 그 동족 기생생물이 인간 뼈때리는 내용 같기도 하고, 극단적 생태주의자의 강한 호소 같기도 하지만...속지 말자. 닥치고 항문 섹스가 짱이다! 하는 맥락에서 등장한 말이다(…)
이 소설의 막장 끝판 음란왕 돌망세(엉덩이 전문)는 온갖 음란 행위를 코칭하면서 중간중간 저렇게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의 썰을 풀며 아직 성경험이 없던 외제니를 교육한답시고 이런저런 이상한 짓을 한다… 옆에서 열심히 거드는 생탕주 부인-미라벨 공자 남매(근친상간 전문)와 하인 오귀스탱(“아! 지기미! 입이 끝내주네...아기씨 입은 증말 생생혀! 울 정원에 핀 장미 송이에 코를 대는 것 같아유.”등등 이 미친 이상한 사투리 번역 ㅋㅋㅋ 그리고 같이 즐기던 귀족놈들은 전부 오귀스탱에게 이놈저놈 하대하고 자기들끼리 어려운 이야기 할 때는 이놈아 나가서 기다리다 부르면 들어와, 막 이지랄….ㅋㅋㅋ평등주의 어디갔냐 이 계몽주의 시대 놈들아...), 겨우 하루 동안 일곱 개의 대화 형태로 두 여성에 세 남성이 온갖 성행위 펼치며 이게 짱이지, 사랑, 동정, 선행, 도덕, 신앙 이런 게 다 거짓이고 이게 진짜야, 하는 대화 형식의 소설이다. 돌망세가 말로 자 다들 요렇게 저렇게 이렇게 자세 취하시고, 준비 됐으면 시작, 하면서 다섯이서 기차놀이(…) 여러 번... 물고 때리고 흘리고 난리를 부리다 외제니를 찾으러 온 외제니 엄마를 막장 범죄 피해 희생양으로 삼고 야 좋다, 저녁먹자, 하고 끝난다.
…
저러는 와중에 돌망세는 자꾸 진지하게 뭐 있어보이는 논조를 펼치는 게 웃겼다. 제일 긴 다섯 번 째 대화편에는 아예 대화가 아닌 소책자 형태의 논설을 끼워 넣어서 돌망세가 내내 하던 개소리를 한 번 더 강조해 놓았다. 분명 개소리인데 어떤 건 또 가끔 맞는 소리로 들려서 아 내가 이제 이 책을 읽고 드디어 이상해지는 것인가, 아닌가 이건 사드가 고도의 전략으로 개소리 중 맞는 말을 설파하는 것인가 내내 헷갈렸다. 맨 뒤 해설을 보면 이건 나만 헷갈린 게 아니라 그간 사드를 연구한 수많은 사람들이 겪은 혼란인 것 같았다.
그러니 굳이 심심하시면 읽는다는 거 말리지 않구요...우리 뭐 읽는다고 이상한 사람 되는 그런 쪼렙 독서가들 아니잖아요… 물론 읽으라고 대놓고 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알아서 판단하세요…
새삼 나는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 옹호가로구나 싶다. 이런 창작물조차 나름의 의미가 있지 싶다. 물론 이러다가도 내 구미에 안 맞으면 막 씹겠지ㅋㅋ씹는 것과는 별개로 당신의 개소리를 환영합니다 왜냐 내가 씹기 위해서 입니다… 그치만 이건 어떻게 씹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성의 성적 자유를 옹호하는 듯 하다가 그 논리가 여자는 모든 남자의 쾌락을 위한 존재이고 그러니 남자를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최대한 많은 여성 남성 불문하고 즐겨야하고, 자기 쾌락과 자유를 위해 남을 희생하는 게 뭐 어때 고통 주는 게 뭐 잘못이야 그게 자연이야, 이런 미친 소리 하는 거 보면 이거 진짜 진심이냐 어떻게 사람 새끼가 사람 껍데기 쓰고 이런 말을 하냐 설마 이것도 뭔 풍자와 비꼼이 아닐까 제발 그랬으면 안 그러면 내가 그동안 이 책 읽은 게 개헛짓거리한 거잖아… 그런 혼돈의 카오스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