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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목신의 오후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9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20201230 스테판 말라르메.
어제 한 해 마무리 독서목록 다 정리했는데 오늘 두 권을 더 읽어 버렸다(…) 읽던 책들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던 거야… 머쓱하며 독후감 올림 ㅋㅋㅋ 162권과 함께 했습니다!(이러고 다음 독후감에 숫자 또 올라감 ㅋㅋㅋ아니 심지어 몇 권 빼 먹은 걸 뒤늦게 알아서 이제는 읽은 책 숫자조차 정확하지 않다…)
서재의 달인 이런 거 처음 되어 보는데 귀여운 스누피 다이어리와 달력이 세트로 도착했다. 부지런히 찾아오셔서 좋아요 꾹꾹 눌러주시고 좋은 말씀 건네주신 이웃님들 덕분에 알라딘에게 연말 선물 받았네요. 감사합니다. 히히.
위스망스의 ‘거꾸로’에서 말라르메를 하도 칭송해서 그의 시집을 읽어보자 싶었다. 도서관에도 없길래 이북 두 권 중에 고민하다 민음사에서 나온 ‘목신의 오후’를 샀다. 그러고나서 도서관 신간에 사지 않았던 ‘시집’이 들어와서 음, 잘 골랐군, 했다.
1800년대 후반에 화요회라는 모임에 온갖 작가, 화가 다 모여 친하게 지내고 서로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다. 위스망스가 말라르메 짱, 해주니까 말라르메도 ’거꾸로’의 등장인물 데제생트를 위한 시를 쓴다.(이 시집에 실려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고등학교 때 음악감상 시간에 (감상 시험 치러야 해서) 열심히 들었었는데 그 노래가 말라르메의 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한 곡 듣고 가시죠.
드뷔시-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https://youtu.be/s8fR-jtMw2I
시집 안에 프랑스어 원문이 모두 실려 있지만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는 무용했다. 그래서 그런가 서정적인 언어들이 확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뒤에 실린 산문 시 세 편 ‘미래의 현상’ ‘유추의 악마’ ‘파이프’는 제목부터 딱 내 취향이었다. 위스망스가 짱짱 하는 것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세기말의 음습한 느낌.
이 시집이랑 도서관의 ‘시집’을 한 번씩 더 읽어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밑줄 긋기
-슬픈 병원에 지쳐서,
텅 빈 벽에 싫증 난 큰 십자가를 향해
커튼에서 진부한 백색으로 피어오르는
역겨운 향냄새에 지쳐서,
빈사의 환자는 슬그머니 늙은 등을 다시 일으켜,
몸을 이끌어 다가가
수척한 얼굴의 흰 털과 뼈를,
곱고 맑은 광선이 쨍쨍 내리쪼이는 창에 댄다.
썩은 몸을 덥히려는 것이 아니라
돌 위에 내리는 햇빛을 보려 함이다.
(‘창’ 중)
-몰락하여 종말을 고하는 세계 위에, 창백한 하늘이 아마도 구름 떼와 함께 떠나려는 모양이다: 햇살과 물에 잠긴 지평선 근처의 잠자는 강 속에서 석양의 낡은 자줏빛 누더기들이 빛을 잃는다. 나무들은 권태로워 하고, (길의 먼지보다는 시간의 먼지에 덮여) 허옇게 변한 잎사귀들 아래로 ‘과거의 사물들을 보여 주는 자’의 천막집들이 솟아오른다: 숱한 가등(街燈)이 황혼을 기다리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병과 수세기의 죄악에 정복당한 불행한 군중, 이 땅과 함께 멸망할 가련한 과일들을 뱃속에 잉태한 허약한 공모자들 옆 인간들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절규 같은 절망감과 함께 물속으로 빠져드는 저기 태양에게 애원하고 있는 모든 눈들의 불길한 침묵 속에서 들어 보라, 이 단순한 감언이설을: “그 어떤 간판도 내면적인 광경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지 못한다. 이제는 그 내면적 광경의 슬픈 그림자를 그려 줄 능력이 있는 화가가 없으니 말이다. 내 여기 지나간 시대의 한 여자를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지고한 과학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고스란히 보존한 상태로) 데려왔다. 무슨 광기랄까, 원초적이고 천진한 광증이랄까. 황금빛 황홀이랄까! 무엇이랄까! 그녀의 머리털이 이름 붙인 그 무엇이 그녀의 핏빛으로 벌거벗은 입술로 밝혀진 얼굴 주위로 옷감인 양 우아하게 펼쳐진다. 무용한 의상 대신 이 여자에게는 몸이 있다. 두 눈은 귀한 보석 같지만 그녀의 행복한 살에서 솟아나는 이 시선만은 못하다: 마치 영원한 젖이 가득 찬 듯 젖꼭지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두 개의 유방에서부터 최초의 바다의 소금을 머금은 듯한 반드러운 두 다리까지.” 대머리에다가 침울하고 끔찍한 것으로 가득 찬 그들의 가난한 아내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남편들은 걸음을 재촉한다: 아내들 역시 우울한 기분으로 호기심에서 구경을 하고 싶어 한다.
이미 저주받은 어느 시대의 유물인 이 고상한 피조물 여인을 모두들 다 구경하고 나면, 몇몇은 이해할 힘이 없어서 무관심하지만 다른 몇몇은 애석한 마음 금치 못하며 단념한 눈물로 눈꺼풀이 축축해져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시대의 시인들은 꺼져 버린 그들 두 눈에 새로 불이 켜지는 것만 같아, 한순간 분간키 어려운 영광에 머리가 취하여 그들의 램프 불빛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리듬에 사로잡힌 채, 미(美)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잊고.
(‘미래의 현상’ 전문)
-처음 한 모금을 빨아들이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한 채 감동하여 내가 써야 할 대작의 책들은 까맣게 잊고, 이제 되돌아오는 지난 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
(‘파이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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