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5 김영하. 이탈리아에 가 본 건, 내 범선을 타고 제노바와 그 일대를 누비던 온라인 대항해시대 속에서였다. 시칠리아 섬은 그 게임 속 시라쿠사 항구만 열려있었다. 시답잖은 교역품만 팔아 퀘스트 할 때만 빼고 좀처럼 들르지 않던 섬.게임 한 지도 오래, 비행기를 타고 딛은 땅을 떠났다 온 지도 오래. 여행기를 그렇게 즐기지는 않지만 김영하가 쓴 에세이라길래 펼쳤다. 여행기는 어느 정도 금가루 꽃가루 뿌리고 색칠해서 뻥을 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먼저 가 본 자가 권능을 가지고 갬성 터뜨리며 뉴욕헤럴드트리뷴 하고 외칠 듯한 분위기를 잘 못 견디는데. 이 책은 꽤 좋았다. 기차와 배와 스쿠터와 버스를 타고 평생 가볼지 어쩔지 모를 섬을 작가의 눈과 기억과 사진을 빌어 둘러보았다. 바다가 있고 산이 있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나는 파스타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어쩜 이탈리아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삼시세끼 파스타만 먹으래도 괜찮아. 뜨거운 햇볕 쬐며 낯선 거리를 헤매고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분통을 터뜨리겠지만. 그럴 꿈이라도 꿀 수 있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