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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평점 :
-20200723 홍승은.
책표지를 감싼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지나가던 직장동료들이 무슨 책 봐요? 뭐 봐? 하고 물어봤다. 불온서적입니다... 뭔데? 뭔데? 불온한 데다 야한 책입니다. 더 친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니까 뭐야 우린 이미 절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하길래 절교당할까 봐 이러는 거에요. 봐주세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냈다.
나중에 또 물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폴리아모리, 다자연애에 관한 에세이였어요. 여성과 남성 간의 일대일 독점 관계라는 통념의 사랑에서 벗어나 사랑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 이야기에요.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하면 뭐야, 너 이런 데 관심 있었어? 너도 그러고 싶니? 하고 물어올 것 같아서 불온하고 야한 책이라고 둘러댔습니다만.
이 책은 불온하지도 야하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쓰리썸이 판타지이지만 이 책이 나올 때까지는 아직까지 실행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포일러)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남들은 남자라고 자꾸 고정하고 지시하지만 논바이너리 퀴어로 자기 성을 특정하지 않은 사람 하나, 셋이서 폴리아모리로 자기 성정체성 일부를 발견하고 그런 발견을 실제 삶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이야기입니다.
책의 첫부분을 읽을 때는 약간 뭉클했다. 굉장히 비슷한 인물과 상황에 관해 이러한 삶을 잠시 꿈꾸었으나 결국 좌절하고 다 망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이들의 삶에 대해 듣는 건, 뭐랄까 인터스텔라 같았다. 나는 해일이 덮쳐오는 행성을 택해 물에 잠겨 익사하고 끝났는데. 이들은 가르강튀아를 거쳐 세 번째 행성에서 (아직까지는) 살아남아 오순도순하고 있는 평행 우주의 어떤 가능성이었다.
폴리아모리는 성소수자의 한 가지로 읽히고, 이들은 커밍아웃하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진행형, 이라는 말이 생생하지만 어차피 모든 사랑은 연애는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끝나는 건데, 나중에 어쩌려고, 하는 누군가의 말들은 조금 우습기도 하다.
감동과 충격은 딱 앞부분까지이고, 남은 부분은 현실과, 편견과의 싸움의 서사이다. 다른 삶에 관대하지 못한 이들은 왜 이리 많은지. 관대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혐오를 굳이 표출해 남의 삶을 평가하고 바꾸려드는 모습은,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무얼까 싶었다.
작가는 나름대로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을 쓰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런 생활’로 퉁칠 삶이 아니도록 섬세하고 세세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글쓰기 자체가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겪었을 혼란과 힘든 시간이 마구 이입이 되는데(난 왜...), 그런 거 다 잘 버티고 조정하고 우리는 안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이것조차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내 삶을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증명해야 하는 사람의 안간힘. 왜 증명해야 하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면 그런 안간힘조차 필요 없을텐데.
중간에 나온 인터뷰 부분은, 악플러들이 심했지만 우주의 대응하는 어조가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시작은 악플러들이 먼저 했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태도가 논리적인 걸 가장하는 감정적인 모습이라 (악플 단 사람들에 대해 단정하는 농담 같은 어조) 오히려 안타까웠다. 저자에게는 그런 모습도 나름 힘이 되고 든든할 것 같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이런 대응이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하긴, 어차피 설득될리도 없는, 변할 가망성이 없는 돌 던지는 놈들에게 좋게 말한다고 해서 가닿지도 않을 것 같다. 그냥 똑같이 욕이나 해주고 기분 나쁘게 해주는 게 유일한 타격일까. 으으 모르겠다. 인터뷰 부분은 읽을 수록 괜히 슬펐다.
아니,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빵 터졌다. 우주라는 사람 재치가 맘에 들어서 앞에서 너 왜 그래...하는 마음이 쑥 들어갔다 ㅋㅋㅋㅋ그리고 셋이 엄청 다정해 보여서 좋은 장면.
(못생긴 애들끼리 모였다는 악플에 대한 대응 장면)
-우주: 제 와꾸가 빻은 걸 어떻게 하겠어요. 미감의 차이인데.(웃음) 이건 뭐, 제가 판단하긴 그러니까 승은 씨가 변호해 줄 문제인 것 같아요. 와꾸에 대한 지적은 겸허히 수긍합니다. 와꾸가 빻을 수도 있죠 뭐.
-승은: 나는 우주랑 지민, 외모 보고 처음에 관심 가졌는데? 지금도 그런데?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우주 지민: 위험한 발언일 수 있습니다.
-지민: 그런 신화와도 연결된 것 같아요. 일대일 연애를 하면, 거기서 모든 게 충족된다는. 상대는 내 모든 욕구를 충족하는 존재로 그려지고요. 사실 우리는 연애 관계 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의존을 하고 만족감을 얻잖아요. 그런데 애인이 둘이 되는 순간, 두 애인이 다 부족하고 모자라서 양으로 채운다는 식의 비난은 명백하게 일대일 관계에 대한 신화다.
발췌는 이것만 하고 안 할란다 ㅋㅋㅋ
책 후반부에 승은의 불화가 심했던 어릴 적 가족 이야기와 다시 재혼한 엄마 아빠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만 봐도 아, 너희는 정말, 블랙홀을 맴도는 세 번째 행성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불운과 불행과 불화가 화해로 변화로 나아가는 관계는 매우 드물고 그런 상황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싶어서 슬펐다.
아무튼, 온갖 더러운 감정과 비난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 제목과 저자를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는 감동하고 먹먹하고 그런 거 잘 모르는 사람인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점.
누군가 나와 어떤 관계이든 그 사람을 소유하고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것. (연인 뿐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동료, 다 마찬가지)
항상 나의 소중한 사람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려고 애써야 한다.
우리는 끊임 없이 변화하고 관계 또한 영원하다는 환상을 버려야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가 살았습니다가 되더라도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관계는 흐르고 그래서 함께 하는 지금이 더 소중하니까. 잘 하자.
유독 이별노래를 많이 틀어주는 카페에서 어떤 가사가 귀에 잡혔다. 난 너를 지울 수 있을까. 우린 남이 될 수 있을까. 잘 하지 못하고 못했던 나는 we loved, 하는 노래에 또 찔찔거렸다.
BOL4, 20 Years Of Age(볼빨간사춘기, 스무살) _ We Loved(남이 될 수 있을까)
https://youtu.be/Z1pGxkXyD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