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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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엉엉 울었다.

  "걱정 마세요. 죽여 버릴 거니까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네 아빠를 죽이겠다고?"

  "예, 죽일 거예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상상력 한번 대단하다, 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측은한 마음은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 넌 나도 죽이겠다고 했잖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그 다음엔 반대로 죽였어요. 내 마음에 당신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그렇게 죽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뽀르뚜가, 당신은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예요. 저한테 딱지랑 음료수랑 케이크랑 구슬 같은 것들을 사 줘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J.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기억나는 동심의 세계는 점점 축소되고, 그렇다면 상상력이라도 풍부해져야 할 텐데 그 빈곤함은 감추려해도 벌거벗은 것처럼 노골적이다. 이 글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바스콘셀로스는 자신의 오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게 한다. 무엇보다 그 신비롭고 비밀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이렇듯 생생한 글로 담아낸 그는 기억력이 대단했던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역시 상상력이 풍부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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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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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여름이 앞질러 온 것이다. 나는 수영장 옆으로 침대를 옮겨 내놓았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주 늦은 시간까지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너무 더워서, 수영장 밖에 이삼 분만 나와 있어도 끔찍스럽게 잔잔한 바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었던 물은 이내 땀이 되어 버렸다. 새벽에 나는 축음기 소리에 잠을 깼다. 하지만 내 물건들을 찾으러 박물관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난 계곡을 통해 빠져나왔다. 지금 나는 섬의 남쪽 저지대에 있다. 수초들이 무성하고, 모기들이 나를 괴롭힌다. 바닷물, 아니 더러운 물이 내 허리춤까지 차 올라와 있고, 게다가 나는 내가 그렇게 성급히 도망칠 필요가 없었음을 깨닫고 있다. 난 그 사람들이 나를 체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계속 내 운명을 따르고 있다. 난 먹을 것 하나 없이 이 섬에서 가장 좁고 인간이 살기에 가장 나쁜 곳에 처박혀 있다. 이곳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닷물에 잠기는 늪지대이다.

- p. 17~18 (처음)

 

 

  나는 라바울에서 내렸다. 양탄자 상인의 명함을 가지고 나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교계 사람 하나를 찾아갔다. 희미하게 비추는 금속성의 달빛과 생선 통조림 공장의 악취 속에서 그는 내게 마지막 주의 사항을 들려주고는 훔친 배 한 척을 주었다. 난 미친 듯이 노를 저어 이 섬에 왔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침반 읽는 법도 몰랐고, 방향 감각도 잃어버렸으며, 모자도 없었고, 병들어 있었고, 또 종종 헛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배는 섬의 동쪽 모래밭에 좌초했다. 물속에 섬을 에워싼 산호 암초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난 그 끔찍한 경험을 되새기면서 내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하루 이상 배 안에서 머물렀다.

- p. 24

 

 

  이 사람들 중 한 명이, 여자 하나가 매일 저녁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검은 머리카락 위에 밝은 스카프를 두르고,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피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리쬐던 햇볕에 그을린 탓인지 구릿빛을 띠고 있다. 그녀의 눈과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가슴은 내가 혐오하는 그림들에 나오는 어느 집시 여인이나 스페인 여인의 것들처럼 보인다.

- p. 34

 

 

  그녀는 매일 저녁 석양을 바라본다. 나는 숨어서 그녀를 바라본다. 어제 그리고 다시 오늘도 난 내 밤과 낮 동안 내가 이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다. 집시처럼 관능적이고 너무나 큰 색색의 스카프를 두른 여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도 난 그녀가 잠시라도 나를 바라보고 한 번만이라도 나와 이야기를 했다면, 그런 단순한 행동에서조차 나는 한 남자가 친구나 친척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흥분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 반신반의할 뿐인지도 모른다.

- p. 35

 

 

  나는 보름 동안이나 계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했다. 그리고 지칠 줄도 모르고 각각의 내 행동을 연습했다. 또한 포스틴이 말하는 것, 그녀의 질문과 대답을 연구했고 종종 적당한 말을 요령껏 삽입했다. 그래서 마치 포스틴이 내게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내가 항상 그녀를 따라다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움직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통은 내가 그녀보다 앞서 걷는다. 난 일반적으로 우리가 헤어질 수 없는 친구이며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말조차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주길 원한다.

- p. 161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모렐의 발명>

 

 

  사형을 피해 무인도로 도망온 사내. 그곳에서 반복되는 영원한 일주일.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다.

 

  허구적인 이야기에 오히려 사실적인 묘사를 사용했다. 신비스러운 광경과 이상한 현상들 속에서 주인공이 모험을 하듯 돌아다니는 것이 추리소설의 느낌도 난다. 일기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야기가 품고 있는 어떤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어떻게 된거지?' 하는 의심이 이야기를 중반까지 끌고 갔는데 끝부분에서는... 그냥 멍해졌다.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사랑이었다. 모렐의 발명도 인형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무기력한 짝사랑을 운명으로 바꿔놓으려는 것도 결국은 헛된 사랑을 향한 헛된 헌신.

 

  수많은 연습과 실수와 하찮은 궁리조차 모두 의미있는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주제.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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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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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루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그 말에 케이도 자루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시큼한 냄새야. 뭔가 쉬고 있는 것 같아.

  냄새가 심하지는 않아. 고속버스에서 밴 것인지도 모르겠어. 버스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커다란 통을 화물칸에 넣는 걸 봤어. 그 통에서 김치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어쩌면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는 동안 녹슨 쇠 냄새 같은 게 자루에 밴 것일 수도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다 보면 무엇이든 조금씩 어떤 냄새를 풍기기 마련이었다.

- 관광버스를 타실래요? p. 103

 

편혜영, <저녁의 구애> 

 

 

  대개가 같은 문체와 비슷한 분위기의 글이다. 소재를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낸다는 것도 공통적인데 하나 같이 명확하지 않은 사물이나 상황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끄집어내고 있다. 뭐가 들어있는지 모를 자루, 따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통조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차가 고장나는 것,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타인에게 길을 묻는 상황 등. 주변에 늘 있어왔던 것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상이지만 작가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도마에 올린다. 

 

  솔직히 취향은 아니었다. 의식하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공포라는 건 소름 돋는 것처럼 기분 나쁜 구석이 있다. 현대인의 삶이 불확실하고 피상적이라고들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의심의 소재로 삼는 방식이 내키지 않는다. 개인적인 불유쾌와 불안함의 경험이 문학으로 포장된 느낌이다. 시종일관 답답하게 하고 불안함을 덮어놓고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와 '어떡할 건데?'가 튀어나오게 만드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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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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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은교, 네게 첫 편지를 쓴다. 지금은 부치지 않을 편지를. 그래도 편지, 하고 발음하고 나니까 사탕을 물었을 때처럼 혀끝이 달콤하다. 사실은 네게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그동안에도 참 많았었어. 그렇지만, 나는 어두컴컴하고 너는 시리게 푸르다. 어찌 그걸 부정하랴. 젊은 날에 만났다면, 그리하여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터부도 없었다면 너를 만난 후, 나는 아마 시를 더이상 쓰지 않았을 것이다. 네게 편지를 쓰면 되니까.

- p. 90

 

 

달이었다. 이제 막 해가 졌는데도, 달이 휘영청 밝았다. 보름날인가보았다. 달빛은 은교의 이마처럼 희고 소나무 그늘은 은교의 눈썹처럼 검푸르렀다.

-p. 133

 

 

  "연애가 주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 쥐는 것이다."

- p. 200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 p. 250~251

 

박범신, <은교>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했던 책.

 

  '어떻게 썼을까' 하는 관점으로 소설을 보기 시작하니 어느순간 평가의 기준처럼 돼버린 것이 한 가지 생겼다. 그건 작가가 '어떻게 드러나느냐'이다. 시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가장 선호하는 쪽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작가가 작중 인물 중 어느 한 명의 탈을 쓰고 말하듯이 느껴지는 것은 최하다. 작가의 생각에서 분신처럼 튀어나온 인물이란 있을 수 있으나 그게 말을 하고, 주도적으로 어떤 생각을 펼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징그럽다.

 

  이적요에서 작가가 너무 드러난다. 물론 실제 작가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적요가 아닌 인물들은 개연성이 부족했다. 하나의 모티프를 위해 이적요 주변에서 움직이는 인형이었다. 오로지 은교를 위한, 은교의 소설이기를 기대했던 것이 그렇게 어긋났다. '롤리타'와 비슷한 듯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아포리즘과 시가 섞인 글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을 쓰기 위해 이적요 · 서지우 · 은교가 나왔구나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밸런스로 놓고 보자면 이야기보다는 글이 앞선달까.

 

  아쉽다. 욕망의 불씨는 발화되지 않았는데 갈망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다. 그저 찰나의 빛이다. 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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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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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오.

  나는 지금 그를 만나러 간다.

  내 마음의 시생대,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왕. 세월이 흘러가도 추억은 남듯이 그가 통치하던 땅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땅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일월의 빛과 그늘에 눌리고 밟혀서 묵은 책 속의 검은 활자처럼 단단하고 납작하게 고정되어 있다.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사오가 죽은 것이다. 마침내, 드디어, 이윽고 때가 되어 그의 육체에도 안식이 찾아들었다.

- p. 9

 

 

  육이오가 터졌을 때 동네 사람들은 마사오의 아버지가 기마 경찰 일 개 분대와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마을 앞을 지나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때가 마사오의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이 가장 커졌을 때였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꼼짝할 수 있었던 것은 눈알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사오의 아버지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납작하게 엎드린 동네를 한 번 훑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뿐, 나 여기 있다고 공포를 쏜다든가 동네를 향해 침을 뱉고 눈을 부라린다거나 하다못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거나 하는 행동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그게 그가 동네 사람들의 눈에 띈 마지막 모습이었다.

- p. 17

 

 

  그는 악취가 나는 도시 뒷골목에서 먹고살아보겠다고 바둥거리고 있는 나를 위문한답시고 소주 됫병과 쥐포 열 마리를 위문품으로 가져왔다. 위문하는 사람답게 흰 와이셔츠에 값비싼 양복을 입었다. 그 양복을 사입을 돈은 있고 내 위문품을 사느라 돈을 다 써서 우산 하나 살 돈도 없었는지, 장대비를 흠뻑 맞으며 왔다. 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위문하는 사람답게 새벽 2시가 넘어서 방문했다. 위문을 하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대문을 넘어와서 지하방에서 곤히 자는 사람을 깨웠다. 그의 주먹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나는 그가 이미 취한 것을 알았다.

- p. 310

 

성석제, <왕을 찾아서>

 

 

  소문과 입담을 위한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은 어린시절 왕으로 여기던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를 추억하며 유년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반부까지는 익숙한 구성과 진행방식에 작가의 입담이 더해져 술술 익히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입담과 소문과 말 들의 변주를 늘어놓으며 마무리짓는 건 오히려 지루했다. 클라이막스가 없는 장편이고 익살과 재치만 유감없이 드러내기 위해 작정하고 쓴 글이었다.

 

  재밌는 글이 아니면 싫다고 한들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만 다른 걸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좋고,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과장된 서술도 좋다. 사람들은 풍자라고 하지만 와닿지 않는 풍자인 그런 무엇도 괜찮았지만. 가장 핵심이 돼야 할 스토리가 엉성하다. 장원두가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박재천의 계획에 말려들고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다른 모든 과거를 얼렁뚱땅 넘어가고 재치있게 풀어놓더라도 현실의 이야기만은 개연성있게 이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주된 이야기마저 넉살 좋게 넘어가려 하니 다 엉켜버린다. 이런식으로밖에는 안 되는 거였을까. 너무 흐지부지한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이 소설로 보따리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모든 소문과 이야기로 실컷 넉살을 부리고 싶었겠지만.

 

  글로만 보자면 매끄럽다. 다듬어진 글이라기보단 말에 가까운 글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다.

 

  소설이 다루는 세태 혹은 시대와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범죄와의 전쟁>, 소설 초반 장원두의 유년시절을 통해 떠올렸던 건 만화 <20세기 소년>.

 

  이번에도 개인의 취향이다. 만담 같은 장편 소설은 별 생각없이 읽기에 좋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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