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그 말에 케이도 자루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시큼한 냄새야. 뭔가 쉬고 있는 것 같아.
냄새가 심하지는 않아. 고속버스에서 밴 것인지도 모르겠어. 버스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커다란 통을 화물칸에 넣는 걸 봤어. 그
통에서 김치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어쩌면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는 동안 녹슨 쇠 냄새 같은 게 자루에 밴 것일 수도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다 보면 무엇이든
조금씩 어떤 냄새를 풍기기 마련이었다.
- 관광버스를 타실래요? p. 103
편혜영, <저녁의 구애>
대개가 같은 문체와 비슷한 분위기의 글이다. 소재를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낸다는 것도 공통적인데 하나 같이 명확하지 않은 사물이나
상황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끄집어내고 있다. 뭐가 들어있는지 모를 자루, 따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통조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차가 고장나는 것,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타인에게 길을 묻는 상황 등. 주변에 늘 있어왔던
것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상이지만 작가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도마에 올린다.
솔직히 취향은 아니었다. 의식하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공포라는 건 소름 돋는 것처럼 기분 나쁜 구석이 있다. 현대인의 삶이 불확실하고
피상적이라고들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의심의 소재로 삼는 방식이 내키지 않는다. 개인적인 불유쾌와 불안함의 경험이 문학으로 포장된
느낌이다. 시종일관 답답하게 하고 불안함을 덮어놓고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와 '어떡할 건데?'가 튀어나오게 만드는 소설.